삶은 의미다 - 72
‘의심(疑心)’이란 ‘특정 대상을 알지 못해서 믿지 못하고 이상히 여기는 상태’를 가리킨다. 의심이 좀 더 심한 상태를 불신(不信)이라 하고, 믿음과는 서로 반대의 뜻이다. 疑(의심할 의)는 한 사람(大, 큰 대)이 지팡이를 든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모습에서 ‘헷갈리다’라는 의미가 파생되어 ‘의심(疑心)하다’, ‘질의(質疑)하다’의 뜻이 되었다. 心(마음 심)은 사람의 심장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가장 기초가 되고 중요한 한자로 ‘마음’, ‘중심’, ‘심장’ 등을 뜻한다.
의심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위험성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의심이 심한 경우 피해망상이나 성격장애 같은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 배우자의 관계를 파괴하는 의처증이나 의부증,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의심은 이별의 최대 원인이기도 하다. 특히 의심은 제일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서서히 파괴한다. 의심을 이용해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전략이 흑색선전이다. 언론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활용해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 제기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큰 피해를 남긴다. 요즘 정치 뉴스들의 보면 진실이 얼만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의 요한복음에 나오는 세기의 의심이 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한 예수가 배반한 제자들에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로라, 하니라.’[요한복음 20장] 이때 의심 많은 도마는 예수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상처에 손을 넣는다. 카라바조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는 의심을 통한 믿음이 무엇인지 묻고 있고, 이 이야기에는 배반한 제자의 의심을 잠재우고 후회와 분노를 넘어 평화로 가는 예수의 가르침이 있다.
데카르트는 “믿고 싶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라고 했다. 의심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의심해야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어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인간보다 힘이 센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고, 맹독을 가진 동물이나 식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늘 타인을 의심하면서 인간관계를 시작한다. 타인이 하는 무수한 말에 대하여 옳은지 그른지 고민하고, 집을 나올 때는 타인을 의심하며 자물쇠로 단단히 잠그고 나오는 것이다. 의심이 없는 믿음은 광신이 되어 사이비 종교나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 모두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로 작용한다. 아이들이 생존에 취약한 것도 의심하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경험과 학습으로 생존을 위한 의심 기술을 습득한 성인은 자신을 보호하고 거짓 정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 드물다. 어린아이가 달콤한 한마디에 속아 유괴 등의 범죄에 취약한 이유다. 부모들은 늘 낯선 사람을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뇌가 퇴화하여 정보력이 부족하고 합리적 의심 능력이 떨어져 피싱, 사기 등에 쉽게 당하기도 한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모든 학문의 시작도 의심에서 시작되지만, 특히 철학과 과학은 의심의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질문 자체는 무엇인가를 알기 위한 호기심에서 시작되고, 그 호기심에는 의심이 숨겨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을 가르치고 설득했으며, 지식을 쌓는 교육에서도 스승과 제자 사이의 끝없는 질문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지식을 터득하고 새로운 학문의 체계를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들을 의심하여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과를 얻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역사에 대한 의심으로 우리를 현실로 끌어낸 마르크스, 신을 의심하면서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 인간의 의식을 의심함으로써 정신분석의 대학자가 된 프로이트, 타인을 의심하여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의 대표자 사르트르, 존재를 의심하여 인간 존재의 삶이 어떤 의미로 나타나는가에 대한 기초존재론을 확립한 하이데거, 언어를 의심함으로써 일상 언어학파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는 비트겐슈타인, 새로운 예술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며 예술을 의심한 베냐민, 과학을 의심하며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열린사회의 길로 가야 한다는 포퍼, 정치를 의심하여 적극적 시민의식의 필요성을 강조한 아렌트 등 대부분의 철학 거장들은 의심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신의 분야에서 세상을 이끌어 왔다.
의심은 무조건 나쁜 것처럼 말하지만, 적당한 의심은 인간 생존의 필요조건이고 신뢰를 두텁게 하는 역할도 한다. 적당하고 합리적인 의심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반대로 신뢰할 것밖에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라는 말이 있다. 생존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매사에 적당한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서 조심하라는 뜻이다. 녹록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는 말 중에는 의심하고 조심하라는 경구가 많이 있다. 또한 의심을 직업적으로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추리 소설가들은 의심을 풀어가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고, 탐정, 경찰, 법조인들은 늘 의심하는 것이 일과인 사람들이다.
의심이 끼치는 해악이 가장 큰 곳이 사랑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부부간에 서로 의심하는 의처증, 의부증은 결혼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정신질환으로 취급된다. 젊은이들도 정신없이 사랑에 빠지다 보면 사랑하는 상대의 참모습을 보기 어렵다. 상대의 사랑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 사랑에 마음을 한 번 빼앗겨 버리면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랑에는 진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더 사랑하고 누가 더 사랑받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질투와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적당한 의심과 질투는 사랑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기름이지만, 선을 넘어선 의심과 질투는 어렵게 이루어놓은 사랑의 금자탑을 무너뜨리는 촉매가 된다. 사랑은 언제나 한 줌의 의심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연인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의심 증세가 심하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랑의 마음이 변하고 사랑을 믿지 못하여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사랑에 대한 편견이 생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조차 의심하거나 화를 낸다. 특히 소유애에 빠진 사람들은 파트너에 집착하거나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파트너가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의심을 하며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기혼이든 미혼이든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파트너는 질환이라는 생각으로 정신과적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것도 인정하지 못하는 파트너는 과감하게 돌아서는 것이 자기 남은 인생을 위하여 차선이다.
사람은 의심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고 무언가를 아주 쉽게 믿는 속성이 있어 근본적으로 속기 쉽다. 사실 의심한다는 것은 귀찮은 여러 단계의 생각 과정을 거치지만, 믿는다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정직하고 진지하게 묻고 의심하면 믿음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고 압박하기 때문에 더욱 의심하기 어렵다. 한편 한번 의심이 시작되면 눈덩이와 같아 굴릴수록 커지는 잠재력이 있어 멈추기가 쉽지 않다. 어떤 의심이 자리 잡으면 몰아내기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어찌 되었든 타인을 의심하며 사는 것보다 믿으며 사는 것이 순리다. 믿는 도끼에 발들 찍힌다고 해서 도끼를 버리면 장작을 팰 수 없다. 도끼를 버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최소한 생존의 의심 레이다를 띄우고 속을지언정 믿으며 사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매일 경계하고 의심하는 나날을 보내게 되면 배신당할 일은 줄어들겠지만 외로워질 것이다. 속는 셈 치고 사람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편안하게 살 것인가? 늘 의심하고 경계하며 불안에 떨며 외롭게 지낼 것인가? 선택은 당신에게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믿음에 있다고 한다. 승자에게는 ‘확신’의 믿음이, 패자에게는 ‘의심’의 믿음이. 성공하려면 의심을 지운 자리에 확신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의심이 사라지고 믿음을 발견할 수 있도록 눈을 크게 뜨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출발점을 찾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의심의 창을 열고 믿음을 보면 성공의 지름길도 열린다.
적절한 의심으로 호기심의 질문을 던지며,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의 믿음을 잡고 성공의 삶으로 나아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