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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효(孝)’의 의미

삶은 의미다 - 91

by 오석연

‘효(孝)’‘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일’을 뜻한다.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효’는 ‘자녀가 부모 등(친족에 해당하는 존속)을 성실하게 부양하고 이에 수반되는 봉사를 하는 것’, ‘효를 실천하는 것’을 ‘효행’으로 정의하고 있다. 孝(효도 효)는 耂(늙을 로)와 子(아들 자)가 합쳐진 글자로 아들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양에서 ‘효도(孝道)’, ‘맏자식’ 등의 뜻이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효도는 전혀 이익이 되는 일이 없고, 손해 보는 일밖에 안 된다.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봉양하는 모습은 어느 동물 세계에서도 볼 수 없는 행동양식이다. 자연계의 모든 동물에서는 엄청난 모성애가 발휘되지만, 효도는 발견되지 않는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행동양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간 특유의 효라는 행동양식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를 구성해서 살면서 생긴 관습으로 보인다. 육체적으로 능력이 없는 고령자라도 살아오면서 쌓인 지식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고, 노인으로부터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은 후세대들이 더 발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와 같은 복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기의 부모는 자신이 봉양하는 부양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효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시대와 문화권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도덕이다. 동양의 경우 유교의 효는 다른 여러 개념 중에서도 매우 중요시하며, 특히 충효(忠孝)의 사상으로 대변되면서 가장 기본적이 가치가 ‘효’였다. 서양에서도 효가 중요시되는 것은 비슷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아예 십계명으로 효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십계명의 앞부분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율법이고 뒷부분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율법인데, 뒷부분 율법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라는 효에 대한 계율이다. 이처럼 효는 그야말로 인류의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효도하라고 강조하는 가르침은 수없이 많아도, 자식을 사랑하라고 하는 가르침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자연계의 현상으로 보았던 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리라. 생태계의 모든 동물은 어미가 새끼를 낳고 먹여 사랑으로 기르지만, 새끼가 어미를 먹여 봉양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법륜 스님은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의무이고,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택이다. 선택인 효는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돌보지 않고 버리면 죄가 되지만,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면 칭찬받을 일,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효에 대하여 답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짧아 자식이 경제력을 잃을 때쯤엔 부모가 사망하여 부양 의무를 덜 수 있었던 때는 부모의 봉양이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직장 은퇴 후에도 상당 기간을 생존하게 된 현재 상황에서 노령 인구의 보호 문제는 중요한 이슈다. 가정의 부모 봉양과 국가의 노인 보호 정책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할 시점이다. 출산율 하락에 따른 젊은 층의 인구 감소로 인한 부양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효 사상에만 기대는 국가의 노인 정책에 한계가 있고 반감을 갖게 만든다.

효도는 부모 세대나 타인에 의해 강요될 것이 아니라 자식 스스로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효도를 받으려면 부모의 조건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고 보살피는 가장 자연스러운 부모의 의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효가 뒤따라오는 법이며, 효만큼 자식에 대한 애정과 교육도 무척 중요하다. 요즘 자식을 돌보지 않고 학대, 방치하는 부모의 모습이 자주 등장해 보기 민망하다. 자식은 노후 보험이 아니다. 무조건 효도를 강요하고, 효도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손가락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나 기본적인 도덕 개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부모를 봉양하면서 산다. 가정환경이 다르고 각자의 사정이 다르니 남의 일에 과하게 참견하는 것도 오지랖일 뿐이다.

효도는 결과는 부모를 위해서 하는 행위이지만,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좀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자식이 자기 편하기 위해 하는 면도 많다. 우리는 명절에 대이동을 하면서 많이 겪어보지 않았는가. 엄청난 교통체증도 마다하고 고향으로 달려가 부모님 얼굴 한번 보고 오면 부모님이야 당연히 반가워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 마음이 포근해지고 가벼워지는 느낌.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돌아와 흐뭇해할 수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내 능력 밖의 할 수 없는 것까지 해주지만, 자식은 부모에게는 내 능력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만족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부모의 자식 사랑은 극성스러울 정도다. 성인이 된 자식도 힘들어하면 은행에 빛을 내서라도 도와주고, 그것도 안 되면 집을 팔아서 도와준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 부모 뺨치는 자식 사랑 동물이 꿀벌 여왕벌이란다. 꿀벌 여왕벌은 공주 벌들이 나가서 짝짓기에 성공하고 돌아와 새 꿀벌 집단을 이끌 준비가 되면, 있던 집을 딸에게 물려주고 일벌의 절반을 데리고 집을 나간다. 이것이 분봉이다. 새 여왕벌은 엄마가 쓰던 집을 물려받고, 경험 많은 엄마 벌은 새살림을 차리는 걸로 진화했다. 너무도 합리적인 방법 아닌가? 하지만 인간의 엄마들은 나이도 많고 힘도 없으며 돈도 없다. 알맹이를 내준 껍데기가 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을까.

부모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대부분 나이 든 사람이 자식보다 손주가 더 귀엽다고 말한다. 사실 내 경우도 그 마음에 지극히 동의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식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지만, 손주는 책임질 사람이 중간에 따로 있다. 손주는 그냥 귀엽다 예쁘다 즐기기만 하면 되는 존재다.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식과 손주 중 누가 더 소중하냐?’고 물으면 답이 달라질 것이다. 자식은 내 유전자의 절반, 손주는 반의반을 갖고 있으니 유전적으로 자식이 훨씬 소중한 것이다. 손주가 더 이쁘고 좋다고 하는 건 자기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귀여운 것이 아닐까. 절대 자식보다 손주가 더 소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부모들에게 최고로 자식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1순위가 ‘현금’이란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물질주의를 대변하는 반농담 섞인 답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식들이 제 앞가림하면서 잘 사는 것이 최고의 효도일 것이다. 성인이 된 자식은 부모의 짐이 되지 않을 것이 가장 큰 효도고, 나이 든 부모는 자식의 짐이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자식 사랑이 아닌지. 더불어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그냥 자주 보고 싶은 거. 자식도 손주도 보고 돌아서면 시원섭섭하지만, 또 보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의 자식과 손주들이여~! 자주자주 찾아뵙기를~!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부모님의 사랑을 어찌 말로 다 형용할 수 있을까. 지금을 볼 수 없는 주름진 얼굴과 손이 눈앞에 어른거릴 때마다 살아생전 그 깊은 뜻을 헤아려드리지 못한 철없는 지난날이 눈물겹고 후회스러울 뿐이다.

요즘 부모를 봉양하거나 효도하는 일이 형제와 부부 갈등의 큰 원인이라 한다. 그래도 형제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요양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많은 노인이 요양원의 차가운 침대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은 불편한 사실이다. 또한 요즘 젊은 부부들의 부모 봉양에 대한 갈등은 ‘효도는 셀프다.’라는 말을 하면서 각자 자기 부모에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니 좀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송강 정철의 훈민가(제1수 부의모자(父義母慈)와 제4수 자효(子孝))로 마무리한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으랴

하늘 같은 은덕을 어찌 다 갚사올고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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