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도덕(道德)’의 의미
삶은 의미다 - 92
‘‘도덕(道德)’이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를 말한다. 강제력을 갖는 법률과 달리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서 작용하며, 인간 상호 관계를 규정한다. 제임스 레이첼스는 『도덕 철학의 기초』에서 도덕의 최소 개념을 ‘자신의 행위로 인해 영향받을 모든 사람의 이익을 똑같이 고려하면서 이성에 따라 행동하려는 노력, 즉 그렇게 하는 최상의 이유가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道(길 도)는 뜻을 나타내는 辵(쉬엄쉬엄갈 착)과 음을 나타내는 首(머리 수)가 합쳐진 한자로 ‘우두머리가 무리를 이끄는 모양새’를 말하며 ‘길’, ‘도로(道路)’를 뜻한다. 동양에서 ‘도(道)’는 ‘길’이란 의미에서 확대되어 ‘근본원칙’, ‘깨달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德(큰 덕)은 彳(조금걸을 척) 자와 直(곧을 직) 자가 합쳐진 형태로 ‘마음이 가리키는 바를 천천히 따라가는 것’을 나타내고 ‘덕(德)’을 뜻한다.
도덕(道德)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윤리(倫理)와의 차이점은, 도덕이 개인 내면에 관한 학문으로서 자기완성을 위한 규범이라면, 윤리는 올바른 인간관계에 대한 학문으로 인간관계에서 합당하게 행동한다는 의미가 있다. 서양에 ‘윤리적인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 알고, 도덕적인 사람은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한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도덕이 내면에서 우러나와 실천하고 노력하는 절대적인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윤리는 품성과 연관이 있고 도덕은 습관, 관습과 연관이 있다. 도덕은 규칙과도 혼동하기 쉬운데, 규칙은 단순히 정한 기준이지만 도덕은 그것이 바르고 옳다는 전제가 깔린 기준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면 윤리와 도덕은 왜 생겨났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되어 모여 살게 되었지만, 본능대로 살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인간은 본능에 맞서 도덕, 규칙, 법 등을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질서를 잡았다. 또한 수많은 사람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문화적 장치를 동원해 시기와 질투, 욕망 등을 관리할 필요도 있었다. 가장 강력하고 적극적 관리 도구가 법과 제도이고, 자발적이고 소극적인 관리 도구가 윤리와 도덕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윤리와 도덕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현실에서는 늘 윤리와 도덕에 맞춰서 살지만, 때로는 윤리와 도덕이 내 생각과 행동을 불편할 정도를 넘어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윤리․도덕을 부정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인간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에 우선을 두고 있는 것이지, 윤리나 도덕을 우선하고 절대화해서 최소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행동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도덕과 윤리도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있는 것이지 억압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법륜 스님은 ‘삶은 자기 선택이기 때문에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 윤리․도덕적인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윤리 도덕적인 평가를 내려야 할 때 네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내가 살려고 남을 해쳐서는 안 된다. 둘째, 내가 이익을 보기 위해 남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셋째, 내가 즐겁자고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넷째, 내가 말할 자유가 있다고 욕설하고 사기를 쳐서는 안 된다. 이 네 가지 기준을 떠나서는 가능하면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고, 나도 남으로부터 간섭받을 필요가 없으며 세상이 뭐라 하든, 자기 소신대로 살라 한다. 어떻게 사느냐는 자기 선택인데 자연의 질서에 따르면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학생이 공부를 안 한다, 수업 시간에 잔다, 아이가 방을 어지른다고 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는 깨우쳐줘야 한다. 어리석은 행동은 깨우쳐주고, 나쁜 행동은 야단쳐야 할 걸 혼돈해서는 안 된다고 법륜 스님은 힘주어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부모와 선생님들이 꼭 유의해야 할 사항이 공부만 잘하는 아이의 나쁜 행동을 봐주는 것이다. 사회적 도덕 윤리관이 형성되지 못한 공부 잘하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 공부한 것을 나쁜 곳으로 사용하기 쉽다.
비록 제도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곱게 잘 사신 어느 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세상이 혼란하고 힘든 것은 사람들이 못 배워서가 아니라 잘못 배워서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펴봐도 배우지 못해 학벌과 지식이 부족해서 갈등과 불화가 발생한 것은 아니라, 더 많이 배우고 영악해져서 발생한다는 역설이 맞을지도 모른다.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알아도 타인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 그리고 수많은 위정자의 잘못된 선택이 불행한 역사를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오늘도 사람이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을 버젓이 행하고 그것을 부당한 힘으로 누르고 교묘한 논리로 포장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는 분명 많이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잘못 배운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도덕한 행위이다. 사람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종교인으로서, 공직자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에서 크게 벗어난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에세이스트인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고 대답한다. 이는 살면서 알아야 할 것들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다. 몰라서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알면서도 하고 있으니 더 나쁜 것이 아닌가. 한나 아렌트도 ‘무지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무사유는 죄악이다.’라고 했다. 알지 못하면 배우면 되지만, 배웠으나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죄악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하긴 인간은 밝고 맑고 깨끗하고 도덕적인 것보다는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고, 금지된 것을 할 때 더 자극적이다. 따라서 누구나 금지된 것을 풀어 헤쳐 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느냐 아니면 의식 밑바닥에 숨겨 놓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라면 파장이 두렵고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에 더욱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 욕망을 소리 없이 감추고 산다. 하지만 욕망, 즉, 하고자 하는, 얻고자 하는 마음과 행위를 도덕과 윤리로 덮을 수 없다는 것이 인류의 딜레마다.
도덕과 윤리, 법과 규칙으로 금지 딱지를 붙여놓은 것들을 떼고 싶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고의든 실수든 특히 ‘나만 하고 싶은 것을~’ 숨어서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균형이 깨어진다. 우리는 법과 윤리, 도덕과 상식을 공정과 상식이라 이야기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적당한 감시와 제약이 따르고 불이익을 주어야 하는 이유다.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여러분도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합니다.』라는 성경의 마태복음 구절을 도덕의 황금률이라 한다. 황금률(黃金律)은 수많은 종교와 도덕, 철학에서 볼 수 있는 원칙의 하나로, 영어로는 ‘Golden Rule’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이다. 이 행위 규범은 그리스도교도가 이웃에게 해야 할 도리를 요약한 것으로,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 원칙을 말하고 있다. 비슷한 가르침을 공자의 논어에서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라고 말한다.
도덕은 상대의 고통을 깊이 헤아려 ‘고통을 줄이려는 능력’이다. 자기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고통을 주게 되는지 진정 이해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황금률이든 공자의 가르침이든 도덕은 한마디로 상대의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즐거운 일은 다른 사람도 하고 싶고, 내가 하기 싫고 고통스러운 일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덕의 황금률 사자성어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법과 도덕이라도 타인에게 적용하면 독약이 된다. ‘내가 먼저, 내가 더’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에게 적용할 때 개인과 사회의 명약이 되는 것이다. 법과 도덕은 내로남불이 아닌 솔선수범이 가장 앞서야 하는 덕목이다.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운 도덕, 가장 쉽지만 실천하기는 가장 어려운 도덕, 우리는 그 도덕의 옷을 입어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