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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신뢰(信賴)’의 의미

삶은 의미다 - 94

by 오석연

‘신뢰(信賴)’ ‘타인의 미래 행동이 자신에게 호의적이거나 또는 최소한 악의적이지는 않을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믿음’으로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굳게 믿고 의지함이다. 信(믿을 신)은 人(사람 인)과 言(말씀 언)이 합쳐진 한자로 원래 ‘편지’라는 뜻이었다. 편지는 중요한 내용이므로 ‘정보’란 뜻으로, 정보는 믿을 만한 사람한테 전달해야 하므로 ‘믿다’라는 뜻이 되었다. 賴(의뢰할 뢰)는 剌(어그러질 랄)과 貝(조개 패)가 합쳐진 한자로 ‘의뢰(依賴)하다’, ‘맡기다’를 뜻한다. 믿음을 의미하는 한자 ‘신(信)’에는 사람(人)은 자신이 한 말(言)을 지켜야 신뢰(信)를 얻을 수 있다는 깊고 오묘한 뜻이 담겨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뢰와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 ‘믿음’이 있는데, 대상의 상태나 행위가 꼭 그러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종교적 믿음은 초자연적인 절대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 두려워하고 경건하게 여기며 자비․사랑․의뢰심을 갖는 일이 신앙이다. 간단하게 종교를 굳게 믿는 마음이 신앙이다. 한편 사람이나 사물이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하지 아니하는 정도를 신용이라 하는데, 경제에서는 거래한 재화의 대가를 앞으로 치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능력을 말한다.

신뢰와 믿음은 비슷하여 구분하지 않고 쓰이고 있지만, 그 깊이가 깊어질 때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신뢰는 쌓는 과정을 통해 서로 성장하고 관계가 깊어지면서 인간적 성숙을 이룰 수 있지만, 믿음이 깊어지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비이성적 행동의 뿌리는 깊은 믿음에 있고, 멀쩡한 사람도 이상하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도 정상적인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중범죄를 저지르며 팬덤에 열광하는 이유다. 뉴스에 등장하는 확증편향에 빠져 바보같이 행동하는 수많은 지식인도 결국 믿음이 깊어서이다. 또한 믿음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지만 신뢰는 깨어지기 힘들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확증편향(確證偏向)’이란 ‘자신의 견해 또는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다른 말로 ‘자기중심적 왜곡(myside bias)’이라 부르기도 한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보편적 현상이다. 확증편향이 생기는 이유는 대부분의 인간 견해는 개인의 합리성보다 공동체의 집단사고에 의해 형성되고, 어떤 사람이 어떤 견해를 고수하는 것도 집단을 향한 충성심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종종 ‘인간은 진실을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확증편향의 부정적 측면이다.

확증편향이 가장 심함 집단이 정치인과 종교인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공정하던 사람도 정치라는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색안경만 쓰고 보고 말한다. 표를 얻기 위한 의도적 행위든, 진실로 믿음이 깊어서든 그것을 보고 듣는 국민은 짜증스럽고 불편할 뿐이다.

현대의 검색도구나 유튜브, SNS 등의 사용자에 맞춘 알고리즘이 확증편향을 심화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가. 알게 모르게 내가 좋아하고 자주 검색하는 것만 알아서 우선으로 배치해주고 보여주는 편리함 속에 나를 잡아놓기 위한 미끼와 확증편향의 무서운 허점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호기심이든 지식이든 취미든 게임이든 편식은 건강을 해치고 탈이 나기 마련이다.

신뢰는 미래의 기대와 위험을 함께하는 개념이다. 누군가를 기대하기 때문에 믿고 따라오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살면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어렵지만 무너지기는 쉽고, 한순간이다. 그렇다고 신뢰 없이 산다는 것은 사회에서 같이 살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이다. 주변에 사람이 머무르지 못하게 되고 어둡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 특히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신뢰가 생명이다. 인간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큰 덕목이자 밝은 인생을 살게 하는 빛이다. 팔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으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이다.

신뢰를 깨는 망치의 양면이 의심과 거짓말이다. 일상에서나 온라인상에서 밥 먹듯이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거짓말로 맺어진 관계가 영원히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오겠지만, 영원한 거짓말은 없다. 거짓말이 들통나는 순간 신뢰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직하고 바른 자세가 신뢰를 쌓고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며 비법이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조상으로부터 경험과 지식을 공부하고, 그 믿음으로 좀 더 편리한 생활을 해왔다. 그러면 인간은 왜 믿는 것인가? 당연히 생존을 위해서 의심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적당한 의심을 하며 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필요 조건이다. 사실 의심한다는 것은 여러 단계로 머리를 굴리지만, 믿는다는 것은 그냥 하는 것이라 훨씬 편하고 쉽다. 당연히 사람은 의심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고 무언가를 아주 쉽게 믿는 속성이 있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의심하며 살 수는 없다. 그리할 수도 없고, 그리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이미 경험했거나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지식을 활용하여 당연한 루틴으로 만들어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일상생활이 그런 믿음으로 편리하고 쉽게 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매우 중요한 일이 닥치면 곰곰이 생각하고 의심하며 돌다리도 두드리며 가는 것이다.

한편 믿음이 깊어지면 무서운 면이 도사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이비 종교 문제이고 정치의 팬덤 의식이다. 둘 다 일반인이 건드리기 민감한 주제이긴 하지만,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사이비 종교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자. 앞에서 말했지만, 인간은 뭔가를 쉽게 믿는 동물이다. 이런 믿기 쉽다는 인간의 속성을 매우 악랄하게 이용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사이비 교주들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하면 자신에게 빨려 들어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면서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몹시 나쁜 사람들이다. 상황을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타인의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행위인 가스라이팅이나 처음에는 신뢰·지배 관계를 형성한 후 정신적 지배를 하여 피해자를 길들이는 그루밍의 수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나쁜 짓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이다. 기독교나 불교를 막론하고 인간의 믿음을 이용하는 종교가 그 믿음을 악용하면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그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 불가사의다. 이렇게 일방적이고 비상식적인 믿음은 자신을 잃어버리게 하고, 건강하지 못한 믿음의 늪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게 한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해주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을 제공해주는 종교의 순기능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도에 임하는 종교인의 한없이 평화로운 모습을 보면, 종교의 힘, 믿음의 힘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지 않은가. 많은 종교인 중에서 모두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만 있을 수도 없고, 좋은 사람만 있기를 바라는 것도 불가능하며 그런 사회는 없다. 사이비 종교는 많은 종교 가운데 가끔 독버섯이 있는 것과 같다. 그 독버섯을 꼭 내가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참 종교인이 되는 첫걸음이다.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복종을 바탕으로 하는 비합리적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사고나 감정상의 경험에 근거한 합리적 믿음이 바탕이 된 신앙인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성실할 수 있고, 지금 기대하는 바와 같이 행동할 것이며 내세를 믿고 있는 미래에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다.

진정한 ‘신뢰’란 아무런 조건 없이 다른 사람을 믿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가진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믿는 것. 물질적 가치가 아닌 인간적 가치에 주목하는 믿음이 정수다. 상대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상대가 내가 믿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을 ‘거울 생각’이라 하는데, 수많은 실망과 갈등을 낳는 원인이 된다. 거울 생각의 함정에 빠져 관계를 그르치기보다, 바라는 마음을 비우고 인간적 믿음으로 무너지지 않을 든든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삶의 답이다.

의심의 창을 열고 진정한 믿음으로 알콩달콩한 관계를 이어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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