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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분노(憤怒)’의 의미

삶은 의미다 - 93

by 오석연

‘분노(憤怒)’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거나 위협을 당하는 등 여러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모든 동물의 원초적인 흔한 감정이며, 때로 심하고 강렬한 경우는 통제하기 힘들다. 화 또는 성이라고도 하며 짜증, 스트레스. 트라우마 등과 관련이 있다. 憤(분할 분)은 뜻을 나타내는 心(마음 심)과 음을 나타내는 賁(클 분)이 합쳐진 한자로, ‘분(憤)하다’, ‘분노(憤怒)하다’, ‘성내다’ 등을 뜻한다. 怒(성낼 노)는 뜻을 나타내는 心(마음 심)과 음을 나타내는 奴(종 노)가 합쳐진 한자로 ‘성내다’, ‘분노(憤怒)’, ‘꾸짖다’ 등을 나타낸다.

분노의 원인은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치고 있으니 상대의 위험을 제거하고 싶은 데서 발생한다.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포와 분노는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다. 공포와 달리, 분노는 적극적인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분노와 공포는 일단 나한테 위험과 해로움이 오고 있다는 부분은 같다. 그러나 ‘내가 저걸 이길 수 있어 보이면’ 분노로 표출되고, ‘내가 저걸 이길 수 없어 보이면’ 공포로 표출된다는 부분이 결정적인 차이다.


동서양이나 각종 종교에서도 분노를 나쁜 행동으로 꼽기는 하지만,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양식이기에 마음을 잘 다스려 줄이거나 참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누구나 완전하게 만족한 삶을 살 수 없기에, 늘 마음속 한구석에 어느 정도의 불만이 포함된 분노가 있다. 또한 인간 사회가 완전히 이상적인 곳도 아니고, 인간관계에서도 수많은 갈등을 품고 살 수밖에 없다. 다만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 봐야 해결될 가능성이 없고, 감추는 것보다 실익이 없으므로 대부분 마음속에 감추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분노는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태가 감정이 격앙되는 것이다. 목소리가 커지고 흥분하여 두통이 오고 혈압이 오르게 된다. 드라마에서 화를 내다가 뒷머리를 잡고 쓰러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좀 더 심하면 과격한 신체 행위로 표출된다. 책상이나 벽을 주먹으로 치거나 물건을 부수고 집어 던지는 행위, 자해 등이다. 극단적인 자살, 분노의 대상에 대한 복수로 살인, 또는 폭행, 절도 같은 중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세력들이 가장 즐겨 쓰는 형태는 사회 부조리에 대하여 저항하는 형태이다. 바꾸고자 하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상을 바꾸고자 혁명을 일으키는 경우다. 회사 윗사람에게 당하고 아랫사람에게 같은 방법으로 분풀이하는 것은 보상심리다. 특히 군대에서 상관에게 당한 부당한 행동을 부하에게 똑같은 행동으로 되갚는 화풀이는 다반사였다.

살아오면서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특히 사회적으로 위축된 소수자 계층일수록 차별과 부당한 처우는 심하고, 이들은 분노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잃을 것이 없을 정도로 안 좋은 상황으로 몰리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되고 중범죄로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살인 등 강력범죄 중 60%는 분노 범죄라 한다. 개인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범죄로 인하여 삶을 늪에 빠뜨리고, 사회․국가적으로는 많은 중범죄의 원인이 되는 국민의 분노 관리가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살아라. 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라며 참지 말고 표출하라는 근거 없는 조언을 가장 많이 한다. 이것은 ‘이에는 이’ 식의 화는 화로 풀라는 말인데, 근거도 없고 습관화될 가능성이 높아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된다. 한편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는 ‘승화(sublimation)’라는 방어기제를 활용한 방법은 권장할 만하다. 화가 날 때 운동이나 취미 활동에 심취함으로써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분노를 조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분노를 일으키는 기억을 잊어버리려는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걱정거리나 분노의 원인 등을 빨리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떠올라 밤을 지새우는 경우를 경험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리바운드 효과이다. 차라리 빨리 잊어야 한다는 생각도, 또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면 더 빨리 잊어버릴 수 있다. 그게 잘 안 돼서 문제지만. ‘그럴 만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그 생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라는 말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이 화가 날 때,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하소연해보는 거다. 말만 하는 것으로 화의 반은 풀린다고 한다. 친구나 동료 등과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해 보고, 그것이 어려우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다. 가슴에 담아놓아 화병으로 키우지 말고 풀어내는 것이 답이다.

분노 속에는 근본적으로 걱정, 두려움, 불안, 안타까움 등이 들어있다. 화를 전혀 내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최상이겠으나, 세상을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너무 자주 화를 내게 되면 그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 군대나 사회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화를 내는 하극상이 되면 자리에서 쫓겨날 각오를 해야 한다. 반대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자주 화를 내면 ‘화내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나빠져 하급자들이 따르지 않게 된다. 특히 화를 낼 정확한 상대를 찾지 못하다든지, 상대의 주변 사람들까지 애꿎게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있어 화를 낼 때도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 화를 내면 ‘이상한 사람,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사람, 피해야 할 사람, 우습고 하찮은 사람’으로 취급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곁에 있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무언의 사회적 압박을 강하게 받는 것이다.

분노는 감당하기 어려운 힘에 핍박받을 때 고통받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비굴하게 굴복하기만 했던 권력에 이판사판으로 덤벼들 용기를 주기도 한다, 백성들이 권력의 불의에 저항하여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대표적이다. 만약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혁명의 주역들이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면 새로운 세상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불의를 봤을 때 부당하다고 외칠 수 있는 것도 결국 분노 덕분이다. 분노가 사회를 개혁하고 발전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또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학생이나 자식의 잘못된 행동에 화를 내며 훈육하는 것은 미움이 아니고 사랑이 뒷받침되어 바르게 가르치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분노다. 이렇게 분노에는 사랑과 자비가 포함될 때도 있다.

근래 분노로 인한 범죄 등의 뉴스를 자주 접할 수 있고, 주변에서도 화내는 일을 심심찮게 보는 것은 세계가 한 지붕같이 가까워진 시대에 살면서 예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일들을 더 많이 접하면서 화내는 사람이 증가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사실 화를 내야 정상이고, 안 내면 이상한 거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화내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올지도 모를 치명적인 위험에 대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 미리 화내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뭔가를 얻게 되고, 화내지 않는 사람을 얻지 못한다. 다만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자주 화를 내면 장기적으로 결정적 순간이 오면 배제당하거나 따돌림당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쉽게 말해 화를 내면 단기적으로는 유리하고, 장기적으로는 불리하다는 말이다.

화를 내는 사람을 잘 관찰해보면 지위가 높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등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화를 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화를 내는 구조다. 화를 내는 행위 자체가 혈압을 상승시키고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데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화낼 이유가 없다. 다만 윗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소위 말하는 ‘갑질’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화가 나면 좀 화도 내고 살아야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화내고 싶어도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약자의 위치에 선 사람,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 대민 업무 담당자 등이 대표적이다. 지구촌 어느 나라에도 없는 ‘화병’이란 병이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이젠 쓸데없는 갑질을 하는 사람이 고발되고 사회적 징벌이 내려지고 있어 다행이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진화적으로 보면 화를 내는 건 잘 정제된 적응 현상이다. 화를 절대로 내지 않는 건 결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화내는 이야기를 하면서 운전자 얘기를 뺄 수가 없다. 평소에 아무리 착하고 순한 사람이라 해도 운전대만 잡으면 거칠게 욕을 하며 화는 내는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운전하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리 행동한단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운전하는 일이 목숨을 내놓고 하는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고에 대비한 자신을 지키는 행위로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저절로 화가 나고 쌍욕이 나오는 것이다. 하여튼 운전대를 잡고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정말 순한 사람이라 판단해도 될 듯.

동물과 사람의 화내는 차이는 정도에 있는 것 같다. 동물을 극히 생명이 위험하거나 생존을 위한 자신의 밥그릇이나 영역을 빼앗길 위험이 있을 때 으르렁거리며 화내지만, 인간은 별로 화낼 일도 아닌 사소한 것으로도 화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동물은 적당한 자기방어적 측면에서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사람은 자기방어보다 미리 앞날을 대비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쓸데없는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공격적 측면이라 하겠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늘 공평하지도,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올바르지도, 모든 사람이 바른말과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세상은 불공평하며 비상식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투성이다. 사랑이나 사람이나 세상이나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실망하고 분노하게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인 기대를 계속한다면, 어쩔 수 없이 엄청난 분노를 느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으며 때로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화낼 일 많은 세상에서 사는 우리 삶의 지혜다.


화를 잘못 내면 역으로 큰 화(禍)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적당한 상황에서 적당한 정도로 지혜롭게 화를 내며 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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