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석연 Jun 29. 2024

163. ‘거리(距離)’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63

거리(距離)’두 개의 물건이나 장소 따위가 공간적으로 떨어진 길이로 일반적으로 두 곳 사이의 떨어진 정도를 말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이동 거리’는 경로의 길이를, ‘직선거리’는 두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길이로 두 지점 사이의 최단 거리이다.

똑같은 길(道)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과 거꾸로 만나고 돌아오는 길,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 길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물리적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지만 마음의 거리는 하늘과 땅 차이다. 꽃관 머리에 쓰고/꽃술 저고리 걸치고… 허난설헌의 ‘님 만나러 가는 길’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심리적 거리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상대마다 서로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근접학’이란 학문에서 권력이나 친밀도에 따라 달라지는 개인 영역을 네 가지로 구분하면서 모든 상호작용에는 지켜야 하는 물리적 거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가까운 친밀한 거리45미만의 공간으로 부모·자식 간이나 연인, 부부 사이처럼 신체 접촉이 허용되는 친밀한 관계이다. 다음으로 45~120에 해당하는 개인적 거리는 친구나 직장 동료처럼 가까운 지인에게 허락되는 공간이고, 120~370에 해당하는 사회적 거리는 인터뷰나 공식적인 만남 같은 상황에서 공간이며, 마지막으로 370를 초과하는 공적인 거리는 무대 위의 공연자와 관객 사이에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공간이다. 특히 서양인의 경우 사적 공간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여 침범하는 경우 “Excuse me!” 혹은 “Sorry!”라고 말하며 서슴없이 양해를 구한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가장 당황스러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길거리에서 어깨 등의 신체를 부딪쳤을 때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지위나 권력이 높아질수록 공간은 넓어지고 거리는 멀어진다. 또한 회의 시 자리나 사무실 위치는 모두를 쉽게 굽어볼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래서 지위가 높은 사람의 자리가 모두를 볼 수 있는 직사각형이나 원탁 테이블의 좁은 쪽에 앉는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좁은 쪽 자리가 권력자의 자리가 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사무실은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다. 높은 위치가 굽어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도 꼭대기에 팬트하우스가 있고 가장 비싸다. 단순히 사무실 공간만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거리도 멀어진다. 또한 높은 사람 곁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아무나 곁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렇게 돈과 지위, 권력은 공간과 거리로 확인되기도 한다.

인간은 부드러운 살결을 탐하고 상대와 스킨십을 했을 때 극도의 쾌감을 느낀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포옹하고, 키스하고 등 잠시도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이유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워질까를 머릿속에 한가득 넣고 살아가는 것이 연인들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부모는 자식이 멀리 떨어져 가는 것은 힘들어하고, 사랑하는 사이도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 혹자는 사랑은 물리적 거리에 상관없는 감정이라 말하지만,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듯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랑은 거리감에 어색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금이 가는 것이다. 특히 상대의 어려움을 멀리서 바라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느끼는 무력감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계속 그 사랑 속에 머물 수 없다는 현실감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기 위한 위안의 말들이 있다. 비록 그대가 곁에 없어도 마음만은 항상 그대와 함께인 것을~’,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면 그대와 떨어져 있는 물리적인 거리가 무슨 상관?’, ‘그깟 보고 싶음쯤이야 무슨 대수라고 말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부부나 연인들은 사랑을 굳건히 믿는다. 하지만 그건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역설적인 말들이 아닌지.

우리나라엔 외국인들이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기러기 아빠가 살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를 공부시키기 위해 외국으로 배우자까지 함께 보내고 혼자 사는 대한민국의 아빠들이다. 전통 결혼식에서 사랑의 징표로 기러기 한 쌍을 사용하지만, 실제 기러기는 평생 일부일처 하는 사랑의 의리가 있는 새가 아니다. 오랜 시간 멀리 떨어져 있다가 자식과 부인을 바다 건너 잊어버리고 진짜 기러기가 되어 혼자 날아가는 홀로 아빠들이 다반사다. 사랑하는 부부가 물리적 거리를 도외시한 결과다.

자식 곁에 딱 붙어 모든 것을 부모가 해주려 할 때도 부작용이 생긴다. 아이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며 언제든 도와줄 준비를 하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리에서 지켜보면 된다. 부모가 밀착될수록 자녀의 자립은 멀어진다. 제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실질적인 자립이다. 부모가 만들어 준 꽃가마에 타고 가는 것이 편하겠지만 진정한 자립이 아니라는 얘기다. 서로 상처 주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자신은 자신 속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지도 말고, 항상 스스로 초점을 맞추며 살아갈 수 있으면 행복한 삶이다.

사랑에서 물리적 거리를 무시한 말이 또 있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라는 말이다. 순전히 거짓말이다. 헤어지는 그럴듯한 핑계일 뿐이다. 사랑도 우정도 함께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앙꼬 없는 찐빵이 무슨 맛인가. 밀가루 맛으로 산다면 할 수 없고.

심리학 용어에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고슴도치들이 외로워 서로 몸을 바짝 붙이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프게 된다. 아픔에 서로 거리를 두면 외로움과 추위에 떨게 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지만 고슴도치들은 외로움과 아픔을 반복하면서, 그들만의 적당한 거리를 찾게 된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살면서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실망과 좌절은 한 사람은 너무 가까이 있으려고 하고, 한 사람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상대방과 잘 지내고 싶다면,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너무 멀리 가지도 않는 이상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랑하되 구속하지 말라’, ‘마음을 주되 묶어 두지 말라 등의 말을 사랑의 금언처럼 여기지만 지키기는 어렵다. 모두 바람이 통할 정도의 거리에서 춤추라는 말 아닌가.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거리가 얼마인지 모르는 게 사랑이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사랑하지만 구속하지 않는 거리란 과연 몇 미터쯤일까?. 참으로 어렵다.

인간은 누군가를 알게 되면 가까워지고 싶은 속성이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타인과의 제로 거리는 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생각 속에서의 제로 수치를 현실에 억지로 적용하려는 데서 갈등이 생기고 상처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만원 버스의 불편함이나 상자 속의 과일이 부딪쳐 상처 입는 것과 같다. 이러한 다양한 인간관계의 갈등과 혼란을 잠재우는 비법이 상대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은 거리(?)를 두는 것이 인간관계의 최고 비법이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공기가 통할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거리가 제로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되니까 더없이 좋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적이 되어 담장까지는 쌓지 않더라도 서로 보호받을 만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이좋다는 말에는 사이(일정한 거리, )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친구 사이, 부부 사이, 연인 사이 등 모든 사이가 ‘거리’다. 사이가 있어야 관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좋은 사이는 좋은 거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이 좋은 사이, 좋은 사이 좋은 거리~!

거리라는 위대한 지혜를 가지고 위대한 인간관계를 맺으시기를~!

     

------------------------------------------------------------------------

     

(어는 책인지 기억에 없지만) 이야기 하나 더~!

[ 우리가 화가 나면 큰 소리로 말하는 이유~?]

      

어떤 스승이 우리가 화가 나면 큰 소리로 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소리를 질러야만 멀어진 상대방에게 자기 말이 가닿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화가 많이 날수록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소리를 지를수록 상대방은 더 화가 나고, 그럴수록 둘의 가슴은 더 멀어질 뿐이다. 그래서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면 두 사람의 가슴은 아주 멀어져서 마침내는 서로에게 죽은 가슴이 된다. 죽은 가슴엔 아무리 소리쳐도 전달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사랑하면 부드럽게 속삭인다. 두 가슴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큰 소리로 외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지면 두 가슴의 거리가 사라져서 아무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두 영혼이 완전히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때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말없이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화를 낼 때와 사랑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논쟁할 때 서로의 가슴이 멀어지게 하지 말아야 한다. 화가 난다고 소리를 질러 서로의 가슴을 밀어내서는 안 된다. 계속 소리를 지르면 그 거리를 회복할 수 없게 되고, 마침내는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162. ‘인정(認定)’의 의미(인정중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