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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woo Oct 10. 2023

Q: 아이가 약물치료를 하지 않으려 해요.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욕심을 내시겠습니까?”

Q : 저희 아이는 2학기 시작하면서 단약을 했어요.이제 초등4학년 여자아이고 메디키넷 20먹고 있었어요.

아이가 약을 거부해서 어쩔 수 없이 끊었어요. 근데 다시 시작하기가 너무 힘드네요. 처리속도와 주의집중력 부족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느껴 검사하고 약 처방 받은건데…단약하면 ‘아이 스스로가 다르다는 걸 느끼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하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네요. 부작용이 없어져서 아이는 약을 먹을 때보다 지금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한시간분량 숙제를 밤 늦게까지 붙잡고 있음에도 아이는 괜찮다네요. 

안타까운데 강제로 다시 약을 시작할 수도 병원을 데려가지도 못하겠네요. 

사춘기가 오면 엄마가 정신병약 먹인 사람이라고 온갖 원망을 하는 경우를 봤기에 담당선생님도 내버려두라 하고 스스로 약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보자 하네요. 엄마입장에선 시간만 지체되니 답답하네요



kwoo: 

부모의 눈에는 약물치료를 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지금 아이의 모습이 만족스럽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매우 깁니다. 요즘 기대수명은 100세입니다. 대부분의 직업이 60대에 은퇴를 하는데, 40년을 더 살아야 하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는 특정 직업이나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역량 자체가 튼튼해지는 것이 더 경쟁력 있습니다. 시대의 트렌드나 시장 상황이 변하더라도 기본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에겐 적응이란 곧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길게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숲을 보기보단 나무에 매몰되는, 전체 맥락을 읽는 힘이 약한 ADHD인이라면 더 어렵습니다. 대체로 당장 앞에 보이는 것들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문제가 보이면, 그 문제에 매몰돼서 문제 속으로 풍덩 들어갑니다. 실제로는 작은 문제라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가 있으니, 인생 전체가 문제로 보입니다. 

당장 잘 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ADHD인이 불확실하고 막연한 미래를 단지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외에 없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그냥 주머니에 손 넣고 방임하는 게 아닙니다. 공감하고 응원하는 길입니다. 아이를 기다릴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것, 아이와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언제든지 약물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인 것. 기타 모든 좋은 것들을 인식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기다릴 수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써 크기 바라는지, 부모가 살아오며 설정한, 부모 삶의 기준을 적용한 사람이 되길 바라시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부모가 시키는, 바라는 모습대로 아이가 자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ADHD아동이 그럴까요? 혹시 아이에게 사춘기가 없는 경우, ‘우리 애는 사춘기가 없어. 내 말 잘들어.’하며 이를 좋아하면 안 됩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부모의 말을 순순히 따르던 이전과 다르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시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그 결정한 사항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귀속된다는 걸 배울 수 있게 응원해주세요. 약물치료를 하길 바라는 무리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져서 아이가 치료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약물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하게 만들면, 더욱 치료에서 멀어집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세요. 흐름을 보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고민만 보면, 오히려 아이가 잘 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조한 마음이 다시 든다면 이 말을 기억하세요.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욕심을 내시겠습니까?”



추가) 성인에 ADHD를 진단받으면, "내가 어릴 적에만 진단받았어도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을텐데!!"하고 아쉬어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단을 받았더라도 약물 치료하면서 열심히 살았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과거의 내가, 내 머리로 이해되지 않아도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순종적인 아이였는지 생각해봅시다. ADHD를 어린 시절에 진단받는 아이가 과연 그런 아이였을까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도 하기 어려운 ‘성실한 노력’을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에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은 너무 형편 좋은 가정입니다. 아이들은 부작용에 더 민감하고 실패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약물치료가 좋다며 강요하는 부모의 자세는 오히려 독이 되기 쉽습니다. 성인ADHD인이 볼 때, 어릴 때부터 약물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에도, 그걸 마다하는 아이를 보는 게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투영해서 생각하는 겁니다. ADHD인이 누군가와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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