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고를 내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목격하다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교회 소모임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10시가 다 되어가니, 길에 사람이 더 뜸해지기 전에 귀가하고 싶었다. 


집으로 가려면 왕복 10차선 도로를 지나야 했다. 먼저 신호등이 없는 작은 길을 건넌 다음 섬같이 생긴 인도에서 초록불을 기다려 다시 큰길을 건너야 했다. 그날도 먼저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 모임 내내 넣어뒀던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열었다. 방금 전 모임에서 함께했던 한 집사님께서 단톡방에 뭔가를 보내오셨다. 횡단보도 앞, 뭔지 궁금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카톡창을 들여다봤다. 좋은 QT문구를 보내셨네, 읽어봐야겠다. 먼저 하트를 누르고...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났고 나는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바로 앞, 내가 막 건너려다 걸음을 멈춘 그 작은 횡단보도에 차 한 대가 멈추어 서 있었다. 그 앞엔 고등학생이나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바닥에 쓰러졌다가 바로 몸을 털며 일어서고 있었다. 그러더니 떨어진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 가방 등을 주섬주섬 줍고 몸을 한번 털고는 아무렇지 않게 이어폰을 고쳐 끼고 큰길을 건너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어머 어떡해, 괜찮으세요??"

나의 외침은 도로의 소음 속으로 묻혀버렸다. 당황함과 민망함을 견디기 어려운지 그는 타이밍 맞춰 초록불이 들어온 큰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쿵 하는 크고 선명한 소리와 차에 받혀 넘어진 사람을 바로 앞에서 처음 목격한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내가 놀라 서있는 사이 운전자가 내렸다.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은 여자는 차에서 내려 엉거주춤 서서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고, 곁에 선 목격자인 나와 그 학생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바로 뒤차의 아주머니는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붙잡으셔야죠!"라고 운전자를 향해 소리쳤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사고 운전자의 차 앞을 지나 학생을 향해 종종걸음을 치며 외쳤다. 

"저기요, 가시면 안 돼요!" 

하지만 이어폰 속 음악 볼륨이 높은 탓인지, 무안함이 큰 탓인지 모를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성큼성큼 길을 건너 홀연히 사라져 버렸고, 신호는 이내 붉게 바뀌며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늦은 시간인 데다 위아래 검은색으로 입은 그 학생은 곧 인파에 섞였고,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금세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나는 그 학생을 쫓는 동시에 계속 운전자 여자를 지켜봤는데, 차에서 내린 여자는 제자리에 서서 그 학생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뒤차들이 모두 줄지어 기다려주며 붙잡으셔야 한다고 말해주는 데도, 그대로 서서 짧은 치마를 가리려는 듯 외투 지퍼를 잠그는 데 여념이 없었다. 너무 놀라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뒤에 얌전히 서서 기다려주는 서너 대의 차와 사라져 가는 학생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다시 차에 올라탔고, 10차선 도로 속으로 휑하니 사라졌다. 



간다고? 이대로 그냥 가버린다고?


너무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고는 났고, 피가 나거나 외관상 부러져 보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분명 쿵 하고 살짝 앞으로 나가떨어졌는데. 그 학생 내일이면 반드시 엄청 아플 게 뻔한데 달려가 붙잡지 않다니. 그 운전자가 너무 괘씸하고 황당해서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이렇게 놀라서 몸이 덜덜 떨리는데 저 사람은 오죽할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겠다 싶기도 하고 차라리 나라도 정신 차리고 불이 바뀌든 말든 뛰어가서 그 학생을 데리고 왔어야 하나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럴 때 크든 작든 사고를 냈으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상대가 원치 않을 경우 자신의 연락처라도 일단 건네줘야만 한다고 알고 있던 나는 그 운전자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뒤차들이 빵빵거리기라도 했다면 조급함에 더 어쩔 줄 몰랐겠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오히려 뒤차 운전자와 내가 '붙잡으셔야 한다'라고 몇 번을 외쳐 알려주었건만... 


더 이상 운전자와 학생 모두 보이지 않고 차들이 쌩쌩 지나기 시작했다. 혼자 남은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집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운전자는, 이후에 차를 빼서 한갓진 곳으로 가 경찰에 자진 신고를 했을 수도 있다. 놀라 망설이는 사이 피해자가 사라졌다고. 그랬길 바랐다. 또는 뒤차 아주머니가 번호판을 보았으니 신고를 하셨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황없는 상황에 그 차의 번호판도 보지 못하고 그 학생을 잡지도 못한 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밤늦게까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가 많이 아프지 않기를, 차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으니 심하게 다친 건 아니기를. 그리고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그렇게 도망가듯 자리를 뜨지 말고 운전자에게 명함이라도 받아가기를 기도했다.




다음 날 아침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에게 비슷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이런 경우 너희가 다친 학생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죄송합니다! 하고 가야 하나?"라고 대답하는 큰 아이. "뭐라고? 네가 다친 건데 뭐가 죄송해? 무단횡단도 아니고 횡단보도인데." 그러자 아이는 "아아, 119를 불러달라고 해야 하나?"라며 웃었다. 


휴, 답답한 마음에 아이들을 붙잡고 처음부터 다시 교육을 시켰다. 이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안되지만, 혹시라도 비슷한 일이 있으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거의 성인에 가까워 보이던 그 형아도 놀라서 자리를 떠 버린 걸 보고 나니, 어른들이 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더 많구나 싶었다. 무섭고 위험한 도로에서 아이들을 지켜줄 것, 평소에도 이런 상황을 꾸준히 알려주고 교육할 것. 사람이 당황을 하면 알고 있던 것도 잘 행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내가 카톡을 보느라 횡단보도를 늦게 건넌 게 어떻게 보면 천운이었다고 잠시나마 생각한 것만으로도 그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 큰 사고가 아님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웃기기도 하지만, 그저 그가 후유증 없이 빠르게 회복했기를. 다시 한번 기도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