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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자존감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회복력 좋은 아이의 비결

먼저 이 글은 자랑글은 아니라는 말부터 꺼내본다. 혹여 제목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거나 콧방귀를 뀌셨다면 고이 접어 넣어두시길 추천드린다. 


자존감이 높은 건 좋은 건데 자랑이 아니라고? 어찌 보면 자랑일 수도 있겠다. 다만 어떠한 일을 통해서 굳이 굳이 해석해 얻어낸 결과이니,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다.




둘째가 영어학원 노트를 두고 갔다. 학교를 마치고 바로 학원으로 가기 때문에 숙제 노트와 프린트 파일을 챙겨가야 하는데. 식탁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것들을 보고 이따가 시간 맞춰 학원으로 가져다줘야지, 마음먹었다.


어느새 방과 후. 학원에 가서 오랜만에 선생님을 뵈었다. 원장님=선생님인 작은 학원. 


"안녕하세요 선생님, 요즘 아이는 좀 어떤가요? 진도는 잘 따라갈까요?"


웃으며 인사했다. 학부모로서 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과 함께.


"네 어머니, 연우가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대목에선 심호흡을 한 번 해야 한다. '선 칭찬, 후 지적'의 법칙에 맞춘 다정한 문장. 참 감사하지만 늘 떨리는 순간이다.


"학원에서 집중력이 좀 떨어져요. 금방 할 수도 있는 걸 오래 걸려 하기도 하고.. 단어 테스트도 요즘은 한 번에 통과를 잘 못하네요. 그래도 저희 학원이 제가 아이를 일대일로 가르칠 수 있으니, 연우가 저에게 참 잘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챙기고 있어요."


최근 학습 태도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부터 학원 선택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지는 롤러코스터 같은 선생님의 말씀에 네, 네 하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찔끔, 약간의 변명을 던져봤다.


"선생님 힘드시겠어요, 제가 좀 더 잘 다독여서 집중하도록 유도해 볼게요. 휴일에 집에서 오전에 공부를 하면 집중을 잘하는데, 평일에는 아침부터 학교에서 진을 다 빼고 와서 학원에선 집중력이 많이 흐트러지나 봐요. 그래도 신경 쓸게요."


말, 아니 변명하는 내내 내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집중하도록 유도해 볼게요. (어떻게?) 그래도 신경 쓸게요. (내가? 어떻게 신경 쓸 건데?)

 

하지만 선생님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방과 후라 영 놀고 싶은 건지, 자꾸 화장실 다녀온다고 들락날락 하고, 단어 시험 집중 안 해서 통과 못하고.. 한동안 잘하다가 요즘 다시 좀 힘드네요 어머니. 그럴 땐 제가 야단을 좀 칩니다."


"아, 그렇죠. 야단치셔야죠. 애가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지난달부턴 수학도 시작해서 집에서 저녁까지 숙제가 너무 많거든요.. 할 게 많으니 힘이 들어서 그러나.." (이어지는 구차한 변명)


"그래도 어머니, 가끔 그렇게 혼을 내서 시무룩하게 집에 가도 다음날 올 때는 또 밝게 웃으면서 들어와요. 회복력이 좋아요. 보통은 선생님이 자길 미워한다고 생각해서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거나 토라져 있거나 하거든요, 호호호. 연우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요. 자존감이 높아요 어머니."


"어머 정말요, 선생님 긍정적인 해석 감사해요, 호호홍. 제가 더 잘 챙길게요옹."


이럴 수가. 아이에 대한 속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대화가 이렇게 마무리되니 기분이 결국 좋아지다니. 그 짧은 순간에 두 가지로 생각이 압축되었다. 


첫째, 선생님의 대화 기술이 심상치 않다. 많은 부모를 대하다 보니 이런 어려운 얘기를 전할 땐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쌓였을 것이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하는 고도의 기술! 이 동네에서 20여 년 간 학원을 운영하신 데는 다 이만한 능력이 있어서일 것이다.


둘째, 연우는 정말 자존감이 높은 아이다. 정작 나는 내 새끼라서 높은지 낮은지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 남들이 보는 연우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는 긍정적인 아이이다. 선생님은 진실 그대로만 말씀하신 것이다.


인사를 하고 학원을 나와 집으로 걸어오며, 내 생각은 점점 두 번째를 향해 기울기 시작했고. 입꼬리는 이미 지구도 뚫을 기세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이를 무척 예뻐한다. 아이들이 정말 '아기'였을 시절엔 부모님이든 시부모님이든 심지어 남들 앞에서도 그 예뻐함을 숨기지 못했다. 옛날만 하더라도 어른들 앞에서 자식 귀엽다 귀엽다 하는 거 아니라는 말도 있었고 남들 앞에서 그랬다간 팔불출 소리를 면치 못했다지만 다 남의 얘기였다. 나에겐 그저 세상 가장 귀여운 내 새끼들, 내 피붙이였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교류를 시작하며 이런 '대놓고 팔불출적' 행동은 순식간에 교정이 되었지만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고 독립적인 행동이 많아지며 말대꾸도 퐁퐁 하지만 지금도 이런 밑바탕엔 변함이 없다. 변성기가 시작된 큰 아이의 덩치에 맞지 않는 애교에도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 것 보면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쭉 나였다. 육아에만 전념해야 하는 엄마이고 주부이던 시절에도 나는 나의 살 길을 찾았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집에만 있어야 할 땐 쇼핑몰에서 옷을 골랐고, 나갈 수 있어지자 운동을 등록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배우러 다녔다. 


결혼 10년 차까진 피 터지는 싸움을 하며 가정의 평화가 다져진다 했던가. 남다를 것 없는 우리 부부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나의 자존감을 다잡는 데 급급했다. 일곱 살 많은 남편에게 눌려 살지 않기 위해 바둥거리고, 못하는 살림을 어떻게든 잘 해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조금의 핀잔에도 금세 기가 꺾이고 의기소침해지는 나였다. 결국 10년 차를 훌쩍 넘긴 지금은 자존감 영역의 평정을 찾은 상태다. 남편은 점점 부드러워졌고 나는 점점 강해졌다. 호르몬의 문제인가 결혼 연차의 문제인가, 나의 내공이 쌓여서인가. 어찌 됐든 10년간 고민하던 나 자신과의 싸움은 어느 정도 평화를 찾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아이의 자존감 이야기를 듣다니. 이런 면에선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뇌리에 콕콕 박혔다. 아이들을 혼내고 나면 우리 집은 그 분위기가 오래가지 않는다. 가족이니까. 군기 빡, 잡고 나면 잠시 후엔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투닥투닥 웃으며 일상을 산다. 친정도 그런 분위기였다. 가족끼리 몇 시간을 또는 며칠을 말을 안 하고, 모른 체하고.. 그런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큰아이가 어릴 땐 내가 바보같이 모진 소리를 한 적도 있다. 아무리 혼을 내도 회복력이 좋은 아이. 단점은 그 문제 상황을 빠르게 개선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었다. 거기에 대고 "넌 자존심도 없어? 이렇게 혼이 났으면 기분 나빠서라도 제대로 해야지!"하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 내가 뱉고도 내가 놀랐던 모진 단어들.


하지만 둘째까지 낳고 키우며 마냥 누그러진 나의 마음에 선생님의 이런 말이 더해지니, 이젠 다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 큰 아이든 작은 아이든, 자존심이 없는 게 아니라 자존감이 높았던 거구나. 조금만 천천히 변화하길 기다리면 되는데, 내가 너무 몰아붙였구나. 오히려 한 다리 건넌 남의 눈에 아이의 장점이 더 잘 보이는구나, 하고 말이다.


선생님은 안 좋은 얘기를 너무 많이 하셨다 싶었는지, 자존감 얘기에 이어 어색하게도 아이의 외모 칭찬을 하시며 대화를 마무리 지으셨다. 역시, 칭찬은 누구든 춤추게 한다. 내 자식 칭찬인데도 역시 부모와 자식은 절반쯤은 동기화가 되어 있는 듯하다.

 

그저 사랑, 사랑. 사랑과 칭찬만이 모든 이의 행복을 만드는 것 같다. 오늘의 내 생각은 일단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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