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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사냥

(3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날 아침은 유독 날이 좋았다. 해가 쨍하니 맑게 땅을 비추고, 미세먼지도 거의 없는, 쾌청한 가을이었다. 한여름의 열기가 사그라든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언제 그렇게 더웠냐는 듯 잠자리들은 높은 하늘을 유유히 비행했다. 날씨에 있어서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간사하다는 인간이라는 동물, 그러니까 '사람'들 역시 가을을 만끽했다. 한두 달 후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면 여름엔 겨울이 좋다던 사람들도 곧 겨울보단 역시 여름이 좋다고 떠들어댈 터였다. 은서는 그렇게나 나약한 '사람'이란 존재를 참 좋아했다. 나약하기에 강해지고 싶어 하고, 그 어떤 동물보다 약하고 생존능력 없는 상태로 태어나지만 부모와 온 동네의 돌봄, 마침내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모든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 안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집단생활을 하는 종들이 꽤 되지만 사람은 본능을 넘어서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그래서 우린 늑대와 달라, 호숫가를 거닐며 은서는 중얼거렸다.

상쾌한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니 10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평소와 같이 컴퓨터를 켰다. 전원을 켜고, 예전만큼 부팅이 오래 걸리지 않지만 습관처럼 부엌으로 가 커피를 한잔 내려 천천히 방으로 돌아왔다. 안방 침대 옆 창가에 바짝 붙여 놓은 작은 책상은 은서의 아지트였다. 작지만 소중한 그녀만의 공간. 마치 오래전 회사에 다닐 때 늘 같은 곳에 '내 자리'가 있던 것처럼 은서는 이 자리를 참 좋아했다. 부엌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는 자신의 모습이 더 만족스러웠다. 아이들과 남편을 모두 내보내고 난 뒤의 집은 참 조용했다. 고요한 가운데 글을 쓰고 있으면 윗집의 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하루 종일 집에 계시는 윗집 할아버지의 재채기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아파트가 오래돼서 그럴 거야 싶다가도 신축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가 뉴스에 나올 때면 '다세대 주택'이라면 예외 없이 어쩔 수 없는 고충이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랫집도 늘 이렇게 조용히 산다면 우리가 시끄럽긴 하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생도 아니고 이제 말귀를 다 알아듣는 초등학생들이라 뛰어놀거나 부러 쿵쾅거리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자꾸 시끄럽다고 하니 아이 키우는 게 죄인가 반발심도 많았고 무엇보다 아랫집 여자의 말투가 많이 거슬렸었다. 공손히 사과를 하니 만만히 봤는지 점점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시끄럽다 연락을 해왔고, 참다못한 은서 역시 그럴 거면 스터티 카페에 가시던가 도서관에 가시라고 응수를 했었다. 미안하려 하다가도 한 치의 양보 없는 아랫집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런데 요즘 조용히 앉아 글을 쓰다 보니 윗집인지 옆 라인인지 아랫집 소리인지 모를 참 다양한 소리를 듣게 됐고, 아랫집이 넣는 민원의 원인 제공자는 오로지 우리 집 만은 아니라는 확신에 다다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파트 소음은 사방으로 퍼져갈 수 있으니 모두가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오늘의 글감은 층간소음으로 작성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은서는 익숙한 자세로 컴퓨터 앞에 앉아 기지개를 쭉 켜고 목과 어깨, 팔 스트레칭을 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 키보드에 손을 올린 후 천천히, 조금은 빠른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부터 워낙 시달렸고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분야여서 그런가, 서두부터 은서는 할 말이 많았고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갔다. 

"... 예전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지요, 각박한 이웃 사이에 집에서조차 눈치 보고 소극적인 아이들이 많아지는 세상입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조금만 더 서로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봅니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뒤 후, 한숨을 내쉬었다. 퇴고는 거의 하지 않았다. 사실 혼자 좋아서 쓰는 것이지, 누군가 보길 엄청나게 기대하며 쓰는 것은 아니었다. 은서의 구독자수는 매체별로 3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운이 좋으면 가끔 에디터의 눈에 띄어 사이트 메인에 노출되는 정도였다. 이번에도 은서는 맞춤법 검사조차 하지 않고, 서둘러 발행 버튼을 눌렀다. 점심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45분. 그리 길게 쓰지 않은 것 같았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니. 역시 시간 때우는 데는 글쓰기 만한 게 없다고 가볍게 생각하며 은서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오랜만의 약속이었다. 자취 경력이 긴 지혁의 입맛과 살림 눈높이를 맞춰 보려고 버둥대느라 요즘은 돌밥의 연속이었다. 지혁의 어른스러움과 살림 솜씨,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결혼을 서두르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이성적으로도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이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고, 로맨틱한 면까지 갖춘 이 남자는 실로 완벽한 신랑감임에 틀림없었다. 틀림이 없었다... 그렇다, 틀림은 없었다. 문제는 너무나 완벽했다. 사계절은 만나보고 결혼을 하라고 했던가, 부부는 결혼을 서두른 것을 가장 후회했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서로를 선택할 것이 분명했지만, 한 번씩 격하게 싸울 때면 그때를 회상하며 서로를 공격했다. 지혁은 은서가 이 정도로 살림에 소질이 없을 줄은 몰랐다, 아이를 한 명 더 키우는 것 같아 힘이 든다고 했고 은서는 당신이 처음부터 높은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비난해서 나는 실력이 자랄 새도 없었다고 받아쳤다. 각자의 생각은 확고했고, 싸울 때마다 도돌이표의 연속이었다. 각자의 친구들은 본인 친구를 안쓰러워했다. 지혁의 친구들은 지혁에 공감했고 은서의 친구들은 은서를 딱하게 여겼다. 누가 더 잘하고 나쁘고가 없었다. 서로 많이 달랐고, 계속 함께 살기 위해선 하루빨리 다름을 인정하고 일부는 양보하고 일부는 노력해야 할 터였다. 자신의 쪽으로 맞춰오려는 노력은 헛될 뿐이었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 머지않았기에 가까운 브런치 카페에서 친구를 만났다. 동네에서 아이들 친구의 엄마로 처음 알게 되어 친해진 사이였다. 한동안 존대하며 지내다 보니 성향이 잘 맞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이도 같은 데다 좋아하는 것, 옷 입는 스타일마저 닮았다. 하지만 굉장히 다른 부분이 있었으니 유리는 주부로서의 자신의 삶에 온전히 적응하고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은서처럼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에는 취미가 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베이킹을 하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고, 주기적으로 꽃시장에 다녀와 집안을 향기롭게 하는 것을 즐겼다. 삼시 세 끼를 완벽히 준비했고 여가 시간에는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거나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모임에 참석하며 활력을 채웠다.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이라 여겼고, 커가는 아이를 보며 말 못 할 성취감을 느꼈다. 내가 애쓴 만큼 아이는 잘 자라는 거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아이가 넘어지면 자신도 함께 아픔을 느꼈다.

그렇게 다른 둘이었지만 말이 잘 통했다. 어쩌면 서로의 취향이 반대여서일 수도 있었다. 커플들도 대개 반대 성향의 이성에게 끌리듯,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상대의 일상과 관심사를 접하며 시선을 넓혔다.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분야라도 상대의 고민이라면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 남편에게도 말 못 할 여자들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결혼 전까지 친하던 '진짜 친구' 보다도 더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비슷한 점도 많았다. 둘 다 마음이 여려 눈물도 많았다. MBTI가 유행하기 전까지 혈액형으로 성격을 말할 때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사람은 스스로를 '트리플 A형'이라고 칭하곤 했었다. 많이 소심한 편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같은 듯 다른 그녀들은 오랜만에 우아하게 브런치를 함께하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최근 각자의 이슈는 뭔지, 얼마 전 등록한 아이 학원은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 아이의 반 선생님은 어떤지 등등 겉도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점차 속 깊은 대화로 넘어갔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애들에게 상처받은 이야기, 남편과 싸워서 일주일째 냉전 중이라는 이야기 -유리 역시 매번 먼저 사과하는 와이프였으나 큰맘 먹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중이라고 했다- 등 어디 가면 쉽게 꺼내기 어려운 속 얘기를 털어놓았다. 너무 시시콜콜해서, 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매일 부대끼며 사는 남편에게도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터놓고 나니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했다. 이래서 한 번씩 수다를 떨어줘야 한다니까, 은서는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어느새 아이들 하교 시간, 얼른 들어가서 간식 준비를 해야 했다. 들어가는 길에 장도 좀 봐야 해서, 은서는 화장실에 좀 갔다가 출발하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요즘 카페들은 화장실도 인테리어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며 은서는 얼른 볼일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 이제 가자. 아, 너는 화장실 안 가?

아직 앉아서 소지품 정리도 안 한 채 휴대폰에 얼굴을 박고 있는 유리에게 은서가 물었다.

- 잠깐만 은서야.. 이거 네 글 아니야?

고개를 든 유리의 낯빛이 창백했다.

- 왜..? 잠깐 볼게. 전화기 좀 줘 봐.

유리가 건넨 휴대폰에는 전 국민의 대부분이 사용하는 포털사이트의 뉴스 화면이 열려 있었고, 오전에 후루룩 작성하고 나온 자신의 글이 인용되어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은서의 아이디의 일부를 별표로 가리긴 했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내 글이 뉴스에 나왔다. 근데 왜.. 좋은 거 아닌가? 아닌가 보네. 유리의 표정이 왜 이리 좋지 않았는지는 기사를 조금 더 훑어본 뒤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유리가 보고 있던 건 신문 사회면에서 며칠에 한번 꼴로 등장하는 '층간소음'에 관한 기사였고, 요지는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개념 없는 윗집 엄마가 불쌍한 아랫집을 탓하며 반성은커녕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에 불만만 가득하다는, 이른바 '맘충'을 저격하는 내용이었다. 평소 층간소음에 시달리던 이른바 '아래층 사람들'은 득달같이 몰려들어 기사를 퍼 날랐고, 순식간에 온갖 SNS, 카페, 사이트와 찌라시 등으로 퍼져나갔다. 곧이어 은서의 글쓰기 플랫폼 계정은 물론 별스타그램, 나아가 사는 동네까지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쿵, 하고 은서의 가슴속에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 이게.. 진짜야?

은서는 떨리는 손으로 유리의 휴대전화를 건네준 뒤, 두 손을 맞잡았다. 그래야만 떨림을 조금이라도 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서 에이.. 잘못 본 거겠지, 중얼거리며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유리에게서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거니까. 유리는 친구 중 유일하게 은서의 계정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기사를 보자마자 한눈에 알고 말해준 거니까. 멍하니 일어나 카페 문을 열고 나오는데 유리가 뛰어서 따라 나왔다. 

- 어떻게 된 거야, 나 준비하고 나오느라 니 글 오늘은 못 읽고 나왔는데. 이렇게 썼을 리가 없잖아, 그렇지?

은서는 대답할 힘이 없었다. 글은 직접 읽어보면 유리도 곧 알 터였다. 은서는 글의 아주 일부를 가지고 난도질당했다. 이게 뉴스 판 '악마의 편집'인가. 예능도 아니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사실만을 쓰는 소명을 갖고 있는 기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말로만 듣던 억울한 상황에 휘말리고 보니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은서는 분명 글의 초반과 중반에 자신의 잘못과 아랫집의 고충에 대해 모두 충분히 설명을 해 두었었다. 물론 특별히 예민하기로 소문난 아랫집의 행태에 서운하고 억울한 점도 토로해 놓았지만, 그게 글쓰기의 묘미 아닌가. 나의 이야기를 솔직히 쓰는 것이 수필이라 배웠고 혹시나 글을 읽는 이들이 공감하고 가도록 층간소음 걱정 없는 편안한 세상에 대한 염원을 마지막에 조금 적어봤을 뿐이었다. 이웃 간에 정도 많고 믿음도 두터워 대문을 활짝 활짝 열고도 편안히 살고, 우리 아이는 몇 살이고 그쪽 아이는 몇 학년인지 서로 알고 관심 같던 예전과 같은 동네 분위기가 그리웠을 뿐이었다. 물론 은서 역시 삭막한 요즘 아파트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한 평범한 주민일 뿐이었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정겹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주기 시작한다면 본인도 충분히 일조할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잠시 기분에 취해 희망사항을 읊조려 본 건데... 딱 그 부분이, 기사에 그런 뉘앙스로 인용이 돼버린 것이었다. 극심한 층간소음에 시달리던 수만 명의 다세대 주택 거주자들에게 은서는, 마녀 사냥을 당한 것이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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