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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적멸보궁 앞에서

by 어변성룡



책에서나 봄직한 목조 건물, 그것도 중층의 다포형식의 팔각지붕. 각황전 터 사방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으니 오직 각황전 하나만 본다해도 구례까지의 걸음이 전혀 아깝지 않을 곳이었다. 절터가 웅장했으므로, 대웅전의 위엄이 더 크게 보일 법도 하나, 각황전이 가진 세월을 맞은 목조 건물의 외양에 압도되어 절터 곳곳을 다 본 후에야 대웅전 앞마당에 다다랐으니... 부처님의 은덕도 어떤 외피를 입고 있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음인가.


각황전 앞마당에 떡 하니 서 있는 석등은 '신문왕 때'라는 말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이미 숭고미를 담뿍 머금고 있는 듯해서. 통일신라라, 그 많은 세월을 견디고 섰는 석등이니 감히 국보라고만 이름하는 것이 바른 대우인가 싶은 맘이 이는 것. 그만만 해도 입이 벌어질 것이언만, 삼성각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면 화강암으로 만든 탑이 서 있다. 암수 두 쌍으로 이루어진 사자의 엄호를 받고서 합장하고 있는 연기조사의 어머니가 서 있는 탑이니 연기조사의 효성이 부처님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었음을 비유하기 위함인가. 모친께서 맞은 편 석등을 향해 합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향해 73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의 넓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합장을 하며 서게 하는 구조. 진심으로 바라면 닿을 듯이 맑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두 탑을 향해 고개 숙이는 것이다.


#寂滅寶宮

온갖 번뇌와 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전....

연기조사의 어머니가 가진 마음도 그러했는가 보다.


홍매화 나무가 가지만 앙상하게 뻗어 있었는데, 3월에, 혹은 4월에 홍매화가 필무렵 다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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