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느린 물건들의 나라
아침 알람에 쫓겨 일어나,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꾸역꾸역 신고 뛰쳐나왔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는 김밥 한 알을 목에 넣어 씹으며 달렸고,
회사 앞 엘리베이터에서는 닫힘 버튼만 미친 듯 두드렸다.
그날 하루도 숨이 헐레벌떡 넘어가듯 흘러갔다.
나는 얼른 집에 가서 쓰러지듯 쉬고 싶었다.
집 앞 엘리베이터,
풍선을 든 아이가 내 발 옆에 섰다. 우린 함께 탔다.
나는 12층을 눌렀다.
멍하니 바라보는 숫자들에 불빛이 하나 둘 들어왔다. 기어코 모든 층에 불이 붙었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 쉬익— 소리가 흘러나오며 천천히 쪼그라들고 있었다.
마치 내 뇌를 보는 거 같았다.
나는 짜증을 애써 참으며 물었다. 애쓰기 싫은데...
"꼬마야, 넌 몇 층 가니?"
"저 10층이요."
"근데 다른 층은 왜 다 누른 거야?"
풍선을 쥐어 터트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제가 누른 거 아닌데요."
아이는 말똥한 눈으로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럼, 누가 눌렀다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여기 타고 있는 사람들이 다 누른 거예요. 그렇죠, 아저씨?"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와 아이뿐이었다.
엘리베이터는 한 층 한 층 천천히 멈췄다.
아무도 내리지 않았지만, 바닥에는 누군가 내린 듯한 그림자가 흘렀다.
귀 뒤가 서늘해졌다. 등 뒤에서 누가 손을 툭 친 듯, 쳐다보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5층에서 내렸다.
어느새 반으로 쪼그라든 풍선을 든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아직 12층 아닌데요."
나는 계단을 택했다.
숨이 가쁘게 내쉬며, 위아래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위에서부터 또각또각 발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위로 오르고 있었다.
버튼 불빛들은 하나씩 꺼졌고, 느린 기계음이 천장까지 울려 퍼졌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땐,
시꺼먼 그림자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내 분실물처럼, 내가 흘리고 달아난 조각들이었다.
그때 위에서 느린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중얼거림이 울려왔다.
"너무 빨리 살면, 네 찌꺼기가 층마다 쌓이지.
나는 그저, 네가 놓치고 온 것들을 보여줄 뿐이야."
문은 닫히는 데만 또 오 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