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고양이와 터키의 미소, 카쉬 마을

터키 남부 여행 셋째 날

by 모니카

안탈리아에서 카쉬(Kaş)로 렌터카를 타고 이동해, 저녁이 거의 다 되어 도착했다. 카쉬는 작은 해안가 마을로, 지중해로 나가는 보트 투어가 많아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다. 여러모로 카쉬까지는 안탈리아나 다른 도시들에서 오는 버스편도 있어서, 안탈리아 여행에 함께 들르거나 파묵칼레 같은 서부 지역에서 남부로 넘어올 때 경유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의 첫인상은 일단 굉장히 예뻤다. 진분홍의 부겐빌레아가 지중해답게 많이 심겨 있고, 파랗고 맑은 하늘과 흰빛의 돌산이 마을을 딱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카쉬에는 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사실 카쉬뿐만 아니라 터키에는 고양이가 참 많다. 그리스에는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그리스에도 고양이가 많다고 하니 동지중해 쪽의 특징인가 싶다. 실은 두바이에도 한국과 홍콩에 비하면 꽤 많은 편인데, 이게 한국이나 홍콩의 길고양이 같은 느낌이 아니라 마을 전체에서 잘 케어받는 ‘거주민’ 같은 느낌이다. 물론 터키만큼 많진 않다. 터키는 카쉬, 안탈리아 모두에 굉장히 많았는데 특히 카쉬는 작은 마을이다 보니 그게 더 강하게 와닿았다.


지중해나 두바이는 날씨가 따뜻해 겨울에도 밖에서 고양이들이 잘 지낼 수 있고, 또 (그리스는 이슬람 국가는 아니지만) 이슬람교에서는 개를 안 좋게 보고 고양이를 상서로운 동물로 보기 때문에, 밥만 잘 챙겨주면 제법 거주민처럼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주민들은 모두 고양이 밥을 따로 챙겨줬다.


사람만큼이나 많았던 고양이들. 두바이에서 이미 고양이에 익숙해진 아이는 수첩을 꺼내 “고양이 30마리 찾기, 40마리 찾기”를 하며 한 마리씩 체크했다. 고양이들은 실질적인 권리를 행사하고 주민회의도 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가득했다. 간혹 커다란 들개들도 있었는데, 보통은 모두 낮이고 저녁이고 길 한 복판에서 늘어져라 잠을 자고 있었다.




다음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발췌한, 개와 고양이에 관한 내용이다. 소설 속에서 ‘개’로 분장한 인물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허락하신다면, 나는 이 설교자 선생의 마지막 발언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순례를 마친 회교도들, 사원의 성직자, 목회자들이 우리 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내 생각에 이 문제는 평화를 사랑하는 너그러운 예언자 무함마드가 당신 옷자락 위에서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오자락을 자른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언자께서 고양이에게 베푼 이 섬세한 배려를 우리 개들은 받지 못했다는 것과 삼척동자도 다 아는 고양이 놈들과 우리 사이의 오랜 불화를 근거로, 어리석은 인간들은 무함마드가 개를 싫어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악의적인 해석 때문에 우리는 신성한 사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
게 되었고, 몇백 년간 사원 뜰에서 관리인한테 빗자루나 몽둥이로 얻어맞는 푸대접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개에 대한 이러한 적의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왜 개를 불결하다고 합니까? 여러분 집에 개가 들어오면 왜 집 안팎을 샅샅이 닦아 내고 옷을 빠시는지요? 어째서 우리를 만진 사람을 불결하게 여기고, 개의 젖은 털에 옷자락이 살짝 스쳤다고 해서 그 옷을 신경질적인 여자처럼 일곱 번이나 빨아 댑니까? 개가 냄비를 핥으면 그 냄비를 아예 버리거나 주석을 입혀야 한다는 말은 주석 세공업자가 퍼뜨린 거짓말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아니라면, 고양이가 그랬든지요."

이 소설은 15세기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오르한 파묵의 고증이 매우 탄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터키와 이슬람 사회에서 고양이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박물관에서 본 그림들 속에도 고양이가 자주 등장했는데, 이를 보아도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사람들은 고양이와 더불어 살아왔던 것 같다.



이날, 느즈막히 도착한 카쉬 마을에서는 짧지만 인상 깊은 두 명의 아저씨를 만났다. 한 명은 다음날 탈 '메이스 익스프레스’라는 배를 예약하러 갔다가 만난 여행사 아저씨였다. 무뚝뚝한 표정이던 아저씨는 아이를 보며 갑자기 웃더니, 아이 이름이 터키 이름 같다고 했다. 터키 남자 이름 중에 Taygun(타이군)이 있다고.

‘Tay’는 ‘젊은 말(horse)’, ‘gun’은 ‘태양’을 뜻해서, 말하자면 ‘젊은 태양’, ‘역동적인 에너지’를 의미한다고 했다. 실제로 아이 이름의 철자와 발음이 비슷했고, 성향과도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 신기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그럼 저는요?” 하고 묻자, 아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오! Seçkin(세츠킨)!”이라고 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터키 여자 이름인데, 내 이름과 철자까지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뜻은 ‘뛰어난, 구별된, 고귀한’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뜻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세츠킨’이라니 — 마치 오르한 파묵의 소설 속 인물 이름처럼 들려서 마음에 쏙 들었다.


또 다른 아저씨는 우리가 들어갔던 레스토랑의 셰프였다. 이 레스토랑은 네이버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곳이었는데, 한국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 있어 이 날만 해도 우리를 포함해 다섯 테이블 정도가 모두 한국인이었다.

처음엔 남편이 “왜 굳이 한국인이 많은 곳으로 왔냐”고 했지만, 이내 셰프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


셰프 아저씨 입장에서도 한국인 손님들이 입소문으로 꾸준히 찾아주는 건 더없이 고마운 일일 테고, 그걸 잘 알고 있기에 한국 손님들에게 정말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었다. 남편은 원래 요리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묻기도 하고, 셰프 아저씨와 오래 대화를 나누며 정말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식사도 물론 무척 맛있었다. 홍합 요리를 특별히 부탁드렸는데, 마치 제육볶음 같은 칼칼한 소스로 만들어 주셨다. 오랜만에 얼큰하게 너무 잘 먹었다. 처음엔 ‘고추장을 넣은 걸까?’ 싶었는데,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터키에서도 chili paste(고추 페이스트)를 매우 잘 활용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고추장과 비슷한 매운맛이 나는 요리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러고 보면, 여행 내내 만난 터키의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은 남편과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며, 우리 가족을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특히 아이만 보면 얼굴에 장난기가 번지며, 마치 고양이에게 장난을 거는 듯 다가와 말을 걸고 귀여워해 주었다. 사실 이런 모습은 두바이에서도 종종 느낄 때가 있는데, 이 또한 중동과 이슬람 문화권의 공통적인 특징인 것 같다.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아이한테 인사를 걸고, 귀여워해 주는데, 그게 손님 환대의 일환이기도 하고, 워낙 가족 중심적인 사회라 그런 점도 있는 듯하다.


아이가 남자아이다 보니 더 편하게 다가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거나, 격려하듯 등을 두드리거나, 손 주먹 인사를 하기도 했다. “마이 프렌드!”라고 부르며 자주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이에 반해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은 그 표현이 좀 더 조용하고 내향적인 편이었다.


이슬람 문화권은 특히 ‘손님 환대(손님은 알라의 선물)’의 전통이 강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역할은 보통 가족 내 남자 연장자의 몫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남성들은 권위와 책임을 가진 동시에 특유의 자상함과 다정함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젊은 세대는 또 다르겠지만,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바깥일이나 외향적인 역할은 주로 남성들의 몫이고, 그런 면에서 터키의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은 그 ‘역할’을 참 잘 수행하는 듯 보였다.



카쉬 마을은 작고 예쁜 마을이었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이라 특유의 들뜬 분위기가 있었다. 터키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느끼기에는 안탈리아가 조금 더 나았다.


카쉬에서도 역시 사람들은 담배를 정말 많이 피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과 미세먼지 하나 없는 공기 속에서 왜 이렇게 담배를 피워대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 그것 또한 문화였다. 마치 ‘바다와 고양이와 담배의 마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지중해로 나가는 배를 타지 않는다면, 관광객들과 그들을 상대하는 기념품 가게들로 가득한 곳이라 오래 머물며 특별히 볼 것은 많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만큼 기억에 많이 남는 마을이었다. 쨍한 부겐빌레아와 파란 하늘, 흰 건물, 그리고 붐비는 항구의 풍경, 셀 수 없이 많은 고양이들 덕분에 마을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던 탓도 있었고.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만남들 — 그 모든 사람들을 만난건 모두 짧은 이틀간 머물렀던 카쉬에서였다. 위에 언급한 두 명의 아저씨뿐 아니라, 다음날 만났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카쉬 항구의 석양을 바라보며, 투보그(Tuborg) 맥주와 셰프 아저씨의 맛있는 터키 해산물 요리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식사 도중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자리를 떠나지 않아 한참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디선가 또 은은한 담배 냄새가 흘러왔다. 석양은 끝내주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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