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희 Jun 10. 2023

고등학교동창 S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동창은 많지 않지만

S와는 꾸준히 안부를 물으며 가끔씩은 휴대폰이 후끈거릴 때까지 통화를 하곤 했다.


여느 아줌마들이 그렇듯 자식들 얘기로 꽃을 피운 게 S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 네 딸 벌써 고등학생이지? 걔가 초등학교 때부터 키가 굉장히 컸었잖아. 지금은 어때? 많이 컸겠다. 네가 172니까...... 장난 아니겠는걸."

" 야, 야, 말도 마. 기집애가 밤에 잠을 안 자고 그러더니 조금밖에 못 컸어."

"그래? 우리 딸도 새벽 2시나 돼야 자는데 그럼 걔도 키 크긴 그른 것 같다."

그렇게 딸내미들 키 얘기만 족히 1시간은 넘게 통화를 하 다른 잡다한 얘기들까지 해서 2시간을 꽉꽉 밟아 채운 것 같다. 점심 먹고 통화하기 시작해서 작은애 픽업시간 때문에 급히 끊었으니 더도 덜도 아닌 딱 떨어지는 2시간이었다. 끊고 나면 대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대화 내용 중에 남아 있는  몇 개 없는데도 S와 통화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 시간의 반을 뚝 잘라 삼켜버리는  같이 짧게 느껴지고 그만큼 부족하다.


그러고 나서 거의 1년 가까이 통화를 하지 못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아니었다. 굳이 짚어본다면 여유가 있을 땐 생각이 안 나고, 생각이 을 땐 여유가 없었던 그런 이유?


어느 티브이에서 볼살이 통통하고 상커플 없는 큰 눈에 웃는 모습까지 S와 꼭 닮은 연예인을 보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시간도 딱 좋았다. 저녁 다 먹고 쉬고 있을 때라서 두어 시간 통화할 생각으로 침대에 배를 깔고 편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연결음이 몇 번을 울리고 음성으로 넘어갈 때까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잠시뒤 전화대신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전화했었지? 미안해. 내 남편이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가서 지금은 통화할 기분이 아니네. 나중에 마음이 좀 나아지면 전화할게.'

가슴을 퍽! 하고 건장한 남자의 주먹으로 몇 대 맞은 것 같이 숨이 막혔다. 물어보고 싶은 말 수 십 개가 머리에 날아와 박혔지만 한숨부터 길게  쉰 후에 마음을 가다듬고 답장을 했다.

'S야 ,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무슨 말부터 꺼내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길게 얘기할 수 없겠지? 네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언제든지 연락해. 기다리고 있을게.'


그 후로 몇 개월이 지났고 S에게는 아직도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고 있다. 어렵게 S의 친척과 연락이 되어 아직 아무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S의 친구는 단 한 사람도 조문을 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함께 들었다. 그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은 듯하다.


대학 신입생이 된 S가 학교 선배랑 사귀게 되었다고 친구들 앞에 소개해 주던 날. 짧은 체크무늬 미니스커트에 머라이어캐리 파마를 하고 잔뜩 들떠있던 S의 모습, 그 옆에 수줍은 미소가 귀엽기까지 했던 선배의 표정이 눈앞에 선한데...... 결혼식 하던 날, 그 선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빛이 났던 모습, 그 옆에 누구보다도 환하고 아름다웠던 S의 모습이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오늘도 카톡에 쌓여있는 S와의 지난 얘기들만 몇 번씩 곱씹어 읽으며 끝내 통화버튼은 누르지 못하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분이 오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