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희 Aug 21. 2023

도깨비가 사는 마을

옛날 옛날 깊은 산골짜기에 부용이란 여인이 살고 있었어요. 부용이 사는 마을은 밤마다 도깨비가 기승을 부리는 무섭고 기이한 곳이었습니다.


해가 지고 마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놈들의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 도깨비들의 장난에 부용은 거의 매일밤을 시달려야 했습니다. 돼지들의 찢어질 듯 한 울음소리에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 날이 밝아 나가보면 우리 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웠고 잠자리에 누우면 방문 창호지에 부딪히며 뿌려지 모래 소리가 단잠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에는 오들오들 떨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문불출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했답니다. 저 모래를 언제 다 치우나 걱정은 태산같이 밀려오 은 길었습니다.


밤새 시달려 수척해진 얼굴로 비를 들고 문 앞으로 나가보면 아니 글쎄,  앞은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 거예요. 부용은 비를 집어던지며 오늘밤엔 절대 당하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어보지만 역시나 도깨비를 당할 재간은 없었습니다.


부용의 마을에서 읍내까지는 30십 리가 넘었습니다. 질그릇을 사러  먼 길을 떠났 어느 날, 오랜만에 간 장터에서 노리개며 가락지 구경에 빠졌던 부용은 그만 때를 놓치고 말았어요. 어스름이 짙게 깔리고 그때 비로소 집으로 향한 부용은 스산하고 아득한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갈길은 아직도 멀었는데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들었 설상가상으로 배까지 고팠습니다. 뒤적뒤적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야속하게도 주머니 안은 텅 비어 있었손에 잡히는 거라고는 피우다 남은 담배꽁초 한 개비였어요. 이거라도 워야겠다 싶어 성냥에 불을 붙이고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연기로 배를 채워보자는 양 담배 한 모금 깊숙이 빨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순간 부용의 머리는 핑 돌았고 그만 자리에서 철퍼덕 쓰러지고 말았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차디찬 흙바닥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휙 휙 '눈앞에서 도깨비불이 조롱하듯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이 여자야, 사람이 지혜가 있어야지. 지혜가 있어야지."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하며 불은 사방으로 흩어졌대요.




어릴 적 들었던 할머니의 도깨비 얘기는 신기하고 흥미로워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성인이 되어 아빠랑 켜켜이 쌓인 할머니의 고리짝 이야기를 하다가 도깨비얘기를 물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할머니가 헛것을 보고 들었다는 전제하에 물었는데 아빠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거 할머니가 꾸며내거나 헛것을 본 게 아니라는 아니라는 증거가 있어."

"증거가 있다고요? 그게 뭔데요?"

아빠의 눈에는 힘이 들어갔고 분위기는 진지해졌다. 마치 아주 요한 얘기를 하려는 듯.

"그게 뭔가 하면, 할머니는 지혜라는 말을 모르거든. 할머니가  얘길 하면서 묻더라. 지혜가 뭐냐고......"


천만 개의 도깨비불이 눈앞에 아른 아른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허상이란 말인가, 믿기지 않지만 믿어야 할 것 같은, 과학을 들이밀 수도 없고 앞뒤가 뒤틀리기도 했던 어릴 적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그래서 그렇게 혼이 쏙 빠질 만큼 재미졌던 건 아닐까?

 



이야기출처: 작가의 친할머니 박부용여사의 경험담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적이고 소심한 복수가 시작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