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소풍날,카메라에이미사용한필름을 다시 넣고 찍어 사진을 죄다 망쳐버린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릴 만큼 아깝다.누구 하나 숫기 있는애가 없었지만 다들 최선을 다해 눈이 시릴 만큼온갖 이쁜 척은 다 하고 찍어댔는데 사진을 한 장도 손에 쥐지 못했던우리는아쉬움에서 오래도록 헤어 나오지 못했었다.
딸이 지금 딱 그때 내 나이다.같이 외출을 하면 뭔 놈의 음식사진을 그리 찍어 쌌는지 배가 고파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데도 참고 기다려줘야 한다.그 고통은 적잖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좋은 풍경이나 소위 말하는 인스타감성을 만나면 내게 휴대폰을 들이밀고 연기를 하듯 표정을 짓고 폼을 잡고 서있다. 내 딸이지만 봐주기가 힘들다. 이해가 안 가는 건 딸이 원하는 건 인물위주의 사진이 아니라는 거다. 정면을 보고 찍는 게 사진의 정석이라고 믿고 있는 내겐 생경하기만 하다.주로 뒷모습, 옆모습, 고개 숙인 모습, 또는인물을 면봉만큼 작게찍어달라고 요구를 한다. 연타로 몇백 장을 찍어주고 나면 한다는 소리가
"어휴, 건질 거 하나도 없네."
겨우 몇 장을 건져 보정을 또 열심히 해댄다. 옆에 있던 10살짜리 아들이 보다 못해 던진 한마디가어찌나 내 마음인지 큰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누나, 그렇게 보정을 할 거면 그냥 합성을 해. 연예인 몸에 누나 얼굴을 입히면 되잖아."
딸은 귀신에 홀린 듯 사진에 뒤집어 씐 것 같다. 좋은 풍경을 눈에 담지 못하고 몸으로 느끼지 못한 채 하루종일 휴대폰 사진에 묻혀있다.하지만 반으로 갈라진 내 마음의 반대편에선 그 나이를 원하는 만큼 찍을 수 있고 남길 수 있다는 걸 미치게 부러워하고 있다.
오늘은 아들과 오붓하게 외식을 할 일이 있었다.
시럽이 반질반질 뿌려진 프렌치토스트에딸기와 블루베리의 조화가 담고 싶을 만큼 예뻤지만 아들과 나는 접시가 테이블에 부딪히자마자 포크를 들이밀어 모양을 흩어놓았다.
"누나 없으니까 사진 찍는 사람 없어서 바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그치?"
나온 음식을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다니. 이제야 음식이 입으로 잘 들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