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소고기뭇국을 한솥 끓였다. 국이 실하면 반찬걱정이 한결 줄어든다. 한솥 끓여놓은 소고기뭇국 덕분에 맘이 든든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마라탕을 먹으러 나가자고 졸랐다. 뭇국 때문에 발이 안 떨어졌다. 외식을 하고 들어와서 신발을 벗자마자 주방으로 갔다. 구수하고 달달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가스레인지 위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소고기뭇국, 도깨비방망이만큼 크고 굵직한 무를 산 바람에 다른 때보다 국의 양이 많았던 게 화근이 될 줄이야. 저녁에 식구들 모두가 먹고 나면 적당히 양이 줄어 작은 냄비로 옮겨 담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면 냉장고에 넣어두기에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 내 계획은 어긋나고 양이 조금도 줄지 않은 국은 냉장고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스불을 올리고 한번 끓여두었다.
아침이 되었다. 또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식구들이 아침으로 빵을 달라고 하는 거였다. 역시 국은 줄어들지 못했고 또다시 가스불을 켜고 국을 한 번 더 끓였다. 아침을 거르는 게 습관이 된 나는 점심에는 국을 한 사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 친구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근처에 와 있는데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점심을 먹고 들어왔는데 국이 걱정이 되었다. 다른 방법 없이 한번 또 끓였다.
양이 조금도 줄지 않은 채로 저녁이 되었다. 필사적으로 뭇국을 한 사발씩 퍼서 식탁 위에 인원수대로 올려놓았다. 내 눈은 국대접에만 가 있는데 식구들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국그릇을 다 비우기만 하면 냅다 한 사발씩 더 줘야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국을 말끔히 비우는 이는 없었다.
먹은 티도 나지 않은 채 고요히 일렁이고 있는 소고기 뭇국, 희뿌연 국그릇에 끓이고 또 끓여 힘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무조각과 손으로 쭉쭉 찢어 넣은 양지가 칠렐레팔랄레 흐느적거리며 떠있다.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히 식탁을 떠나버린 식구들, 홀로 남아 먹다 남은, 식어버린 국속에 양지를 젓가락으로 건져 입에 넣었다.
이게 얼마짜린데
국이 아직도 솥 안에 가득한데 나는 또 내일 먹을 새로운 국을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일 민영엄마와의 점심약속을 취소하려 한다. 소고기뭇국 때문에 못 나간다고 하면 믿어주기나 할까?
* 사진출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