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낼 거잖아.

by 라라


얼마간 텐션이 훅 떨어졌다.


원래의 나라면 해야 할 목록들이 있고

그것을 하나씩 해내가야 하는 사람인데

며칠동안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운동도 안 했고, 식단관리도 안 했고,

아침일기도 안 썼고, 정리도 안 했다.

평소보다 몸이 안 좋았다고 느끼는 것은

마음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몸이 안 좋았다.

허리도 아팠고 뭘 먹으면 소화도 안 됐다.

앉았다가 일어나면 어지러웠다.


그런 내가 며칠동안 한 일이라곤

칩거상태에서 계속해서 책 읽기.

간간히 아이들 돌보기.

어쩔 수 없는 집안일해내기.

집안일도 하기 싫어 최소한으로만.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마음의 에너지이다.

마음에 에너지가 차오르지 않는데

굳이 해야 할 목록들을

체크체크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갑자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졌다, 모든 게.


언뜻 보면 미친 사람 같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목숨 걸었다.

촘촘하게 살아내려 나를 가만두지 못했다.

안달복달했다.


그런데 갑자기

운동하는 것이나 식단관리하는 것이나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 뭐가 되려고?


지쳤던 걸까.

전에는 의미가 있다 생각되었는데

갑자기 의미가 없게 느껴지니

사람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내 그림자가 고개를 든다.

밝은 것만 옳다고 믿었나.

긍정적인 것만 옳다고 믿었나.

활기차야만 한다고 믿었나?


굳이 굳이 외면했던 내 그림자들.

그렇게 꽁꽁 감추려 외면해도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내 어둠들이 있었다.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 것.

이젠 외면하지 않고 안아줘야겠다.

쓰다듬어주어야겠다.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에너지가 없을 때는 좀 쉬어가도 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장에도 갈 거고

일도 할 거고 다음 주에 있을 폭풍 업무도

힘내서 잘 해낼 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 정리도 조금씩 할 거고 설거지도 하고 아이들 밥도 차리고 숙제도 봐줄 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내면의 상처들을 보듬어 줄 거고 나와 이야기할 거고 글도 쓸 거잖아.


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심히 살 거잖아.


너무 숨 가쁘게 살지 않아도 돼. 충분하다. 정말.

꼭 목표를 달성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닌데

나는 목표를 달성해야만 의미가 있는 삶처럼

살아온 것도 같다.

하나씩 해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그 찰나들이 소중한 건데.

해야 할 목록들을 충족시키고

내가 세운 잣대에 도달하도록

얼마나 닦달을 한 것이냐.


난 왜 이렇게 스스로를 괴롭힌 걸까.

그래서 갑자기 내가 힘들만치의 운동도

하지 말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내 목에 목줄을 걸어

끌고 가는 꼴로 살지 말자.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전부터 하고 있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들을 굳이 굳이 외면하며

살았던 것 인지도 모르겠고.


털어놓으니 그래도 좀 후련하네, 친구.

머리가 정리되는 기분이다.

어둠을 한번 감싸줬으니

또... 힘을 내서 오늘 하루도 잘 살아야지.


나는 언제나 나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