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판도라 상자

by 라라


창백해진 얼굴로 방으로 들어온 백 씨 할멈은 밥 먹을 생각도 못 하고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었다.


‘… 엄니도 나 낳고 또 병신새끼 낳을까 봐 무서워서 더 아그를 안 낳은 거 아니오!…’


아들의 말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꽂혔다.


“…거, 그러니 연순이한테 작작 좀 하지 그렸어?”


어느새 집에 들어온 백 영감이 푸념이 담긴 자초지종을 듣고 마누라에게 핀잔을 놓았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절대 안 된다고 했소, 안 했소! 내가… 흐흐흑…”


할멈은 까마득한 젊은 날을 회상하고는 흐느껴 울었다. 그 나이가 되어서도 그녀의 상처는 그날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개고기를 잘 못 먹어 그랬나,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절었던 아이. 임신했을 때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생각만 하라는 옛 어른들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그녀가 대대로 농사꾼 집안이었던 백 씨네로 시집와서 임신하고 막달이 가까워지던 더운 여름이었다. 시아버지는 더운 날씨를 핑계로 누렁이를 잡아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새댁은 엄한 시부모님 눈을 피해 신랑에게 누렁이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먼 곳에서 시집와 기댈 데 없던 그녀에게 누렁이는 내 살 같은 가족이었다. 그 당부가 지켜질 거라고 믿었다면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만삭 새댁이 동네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저 멀리서 두려움에 떨며 울부짖는 개의 소리가 들렸다.


“깨갱깽깽! 깽갱깽깽!”


한참을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리마저 그쳤다. 불길한 예감은 왜 빗나가지 않을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부른 배를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한 마당의 나뭇가지에는 아침까지만 해도 밥을 줄 때 꼬리를 신나게 흔들던 누렁이가 축 늘어져 매달려있었다.


헥― 헥― 꼬리를 흔들던 순종적인 눈은 온데간데없고 초점 없는 그 눈이 자꾸만 죄를 물었다. 감지 못하고 주인을 바라보는 슬픈 눈. 그 눈은 점점 커지더니 끝내 그녀를 삼켜버렸다. 새댁은 쓰러졌고 때 이른 진통이 시작됐다. 아기도 엄마도 목숨은 건졌으나 장애를 가지고 아기가 태어났다.


누렁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은 누렁이를 너무 사랑해 버렸다는 후회가 되어 건강하지 못한 아기를 낳은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아기를 고치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용하다는 의원, 좋다는 약, 이름난 무당, 굿과 제사, 안 해본 짓이 없었다. 그러나 아기의 다리는 죽어버린 누렁이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백 씨 할멈의 한평생도 아들과 함께 절뚝거렸다.


아들의 장애는 자신의 부덕이었다. 장애를 물려주고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부족하게 낳았기에 하나라도 더 남겨주고자 했다. 남편 백 씨가 사업을 일굴 때 안 쓰고 모아 알토란 같은 재산으로 불린 것은 그 할멈이었다.


부족함 없이 키우고자 했던 것이 욕심이었을까. 내 아이만은 모르길 바랐던 쓴맛. 하지만 그것을 모르기엔 너무 큰 어른이 되어버린 종복이었다. 그날 종복이가 내뱉은 말은 할멈의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던 죄의 빗장을 열었다. 그 죄책감은 그녀가 아기를 낳았던 그날로 되돌아가게 했다.


“지도 남들 가진 거는 다 누려봐야제…”


다리 아픈 불쌍한 내 새끼가 어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꼬, 연민에 젖은 할멈. 절름발이로 살아온 짠한 내 새끼를 위해서는 며느리를 짜내서라도 남들이 가진 것쯤은 아들에게 얹어주고 싶었다.


한 편, 집에서 뛰쳐나온 종복이는 도저히 그 기분으로 회식 자리에 갈 수가 없었다. 혼자 술이나 마실 생각으로 읍내의 작은 막걸릿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고 보니 사돈댁, 광주 이모의 집이었다. 무슨 일인지 연순이는 하나뿐인 이모를 두고 데면데면했다.


“오메! 백 서방 아닌가? 어서 오소!”


광주 이모는 반갑게 조카사위를 맞았다. 종복은 인사하고 들어가 앉아 안주와 술을 시켰다. 아직 안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목이 탄 사람처럼 깍두기 하나를 두고 소주를 연거푸 마셨다. 광주 이모는 종복이에게 술과 안주를 가져다주며 그 옆에 앉았다. 평소 그의 장인과는 다르게 술을 안 마신다고 소문 난 조카사위가 무슨 일일까 싶어 찬찬히 살펴봤다.


“사위, 우리 연순이는 잘 있제?”


“예, 잘 있지요.”


종복이는 부엌에서 고개를 떨구며 울던 연순이를 생각하자 다시 가슴이 저릿했다.


“우리 연순이가 참말로 서방 하나는 진짜로 잘 얻었어.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옛말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단께!”


이모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띄며 말했다.


“제가 많이 모자라지라. 나 땜시 맘고생도 많고…”


종복이는 잔에 술을 한잔 가득 채우더니 들이마셨다.


“왜? 뭔 일이 있간디?”


광주 이모는 눈치를 살피며 살살 떠 보았다.


“애기가 안 생겨서라. 지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술이 몇 잔 들어가서 그랬는지 속이야기가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 말을 들은 광주 이모는 순간 입꼬리를 비틀었다.


“쯧쯧… 연순이 그것이 어릴 때 몸을 함부로 굴려서 그런거여…”


“그…그게, 무슨 말이단가요?”


아무렇게나 나온 그 말을 다시 확인했다.


“식모살이한 것을 자네도 알지 않은가? 연순이 그것이… 그때 몹쓸 일이 있었제. 애를 뗐다던가… 그때, 그것 막느라고 가운데서 얼마나 애먹었다고. 근디도 이모를 원수 보듯 하잖은가? 쯧쯧…”


광주 이모는 그간 곪고 있던 속내를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그 말을 들은 종복이는 창자 밑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연순이가… 그럴 리가 없소…”


“자네도 관수 잘혀!”


‘관수’라는 말을 듣자 지난 가을 저 깊은 곳에 처넣어 버렸던 점례 아버지에게로부터 들었던 ‘관수’라는 말이 튀어나와 겹쳐졌다. 종복이는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상을 뒤엎었다.


“이… 이것이 뭣 하는 짓이단가!”


종복이의 성난 기색에 놀란 광주 이모는 소리를 질렀다.


“연순이가! 그럴 리 없은께! 다시 한번 그런 말 지껄였다간 처 이모고 뭣이고! 이 집 당장에 문 닫을 줄 하슈!”


종복이는 지갑에서 있는 대로 돈을 꺼내 던져놓고는 거칠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광주로 일하러 갔다던 연순이가 갑자기 장흥에 내려와 가슴 떨렸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피가 비치지 않았던 첫날밤도 떠올랐다. 그러다가 잊고 있던 그 과외 선생까지 떠올라버렸다.


‘빌어먹을…’


비틀 거리며 걷는 그에게 지금까지 행복하기만 했던 연순이와의 날들이 갑자기 뒤틀린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그 막걸릿집에 다른 손님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종복이 외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그 정신에도 다행이었다.


아무도 몰라야 한다. 동네 사람들도, 어머니도, 연순이도 그리고 자신도. 목적지를 잃고서 걷는 내내 다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이 백 씨 집안 사람에게는 더 길었고, 더 추웠고, 더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