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장 하얗게 질린 밤
연순이에 대한 시어머니의 구박은 손자에 대한 집착이 커질수록 심해졌다. 시어머니는 날이면 날마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집에 퍼질러 있다고 성냈다. 집안일을 할 때면 그 옆에서 여자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냐고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았다. 밥을 먹을 땐 그녀의 그릇 앞에 있는 반찬들을 노골적으로 치워 버렸다.
다시 눈칫밥을 먹게 된 연순이에게 그것은 식모살이 기억과 겹쳤고 음식이 더 넘어가지 않았다. 식사 때 배불리 먹지 못하니 혼자 있을 때 허기가 찾아왔다. 그러면 시어머니 눈을 피해 부엌에서 감자며 고구마를 허겁지겁 주워 먹었다. 먹다 얹히기도 그 모습을 시어머니에게 들키기도 했다.
“저것은 애기씨가 붙었는지 알았는디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뭣을 저라고 먹어댄가 모르겄네이”
시어머니는 못마땅해하며 주절댔다. 아무리 세찬 태풍이 들이쳐도 뽑히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싶은 연순이었다. 그것은, 뜨거웠던 찬하를 털어내며 새겼던 강한 결심이었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남편의 부재가 잦았고 아들의 부재를 틈타고 시어머니의 구박은 더욱 심해졌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함께 도망칠 사람도 없는 연순이에게 시댁살이는 너무나 버겁고 힘들었다. 늘 커다란 어깨로 다가왔던 종복이마저 없으니 원망마저 올라왔다.
그때, 정순이마저 언니 집 방문이 뜸했다. 처음 결혼했을 적만 해도 언니 걱정에 하루가 멀다고 찾아갔었다. 하지만 만석이의 과외도 끝나 드나들 핑계 하나가 줄었기도 하거니와 아버지의 건강이 갈수록 나빠져 집을 비우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형부의 잦은 방문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언니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창석이가 다친 이후 종복이의 처가 방문이 잦았다. 이미 치료 시기가 지나버려 손쓸 수 없게 된 창석이를 종복이는 고쳐보려고 애를 썼다. 창석이는 다리 말고도 어깨며 발목이며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한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아온 종복이는 처남이 불구가 된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수소문해 찾아다녔다. 도시의 큰 병원과 용하다는 한의원, 침쟁이를 가리지 않았다. 뼈를 잘 맞춘다고 소문이 난 곳이면 목포며 광주 할 것 없이 창석이를 데리고 갔다. 그러면서도 처가 식구들에게는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다.
“절대 연순이 귀에는 들어가게 하지 말어잉.”
“뭐 땀시 그란다요?”
“우리 엄니 성격 알제? 그 귀에 들어가면 연순이를 더 잡아먹을 듯할 것이네. 근께 아무도 모르는 것이 낫어. 엄니가 들추면 연순이 그 착한 것이 다 말해블 것 아닌가? 그라믄 아주 난리가 날건 게… 절대 모르게 해야혀. 알았제?”
그들만의 비밀은 연순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더욱 단단하게 지켜졌다.
그날은 정순이가 잠시라도 집에서 벗어나볼 요량으로 장에 나왔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장에 나온 정순이에게 엄마는 언니에게 한번 들러보고 가라고 했다. 반찬거리를 사러 장에 나온 연순이의 안색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엄마였다. 사위가 좋아하는 고등어를 둘째딸 손에 들려주며 언니를 꼭 한번 보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시장바닥 사람들이 다 알만치 연순의 시집살이는 악명 높았다. 그래서 정순이도 그 집 대문을 들어설 때면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가다듬게 되었다. 그날도 담장 밖으로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니가 여편네 구실을 잘 못한께 종복이가 밖으로 나도는 것이 아니여? 종복이를 꽉 붙들어 매려면 자석을 낳아야 할 것이 아니냐고! 이잉?”
한바탕 소락대기를 질러댄 할멈은 대문을 박차고 나왔고 문밖에 있던 사돈처녀를 보고서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매섭게 지나갔다. 밖에서 듣기만 했을 뿐인데도 심장이 구겨질 듯 암담했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언니는 죄인 같은 얼굴로 마루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언니, 나 왔네…”
언니는 동생들 앞에서 늘 표정을 고쳐 짓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정순이 앞에서 오히려 더 펑펑 울어버렸다. 언니가 그렇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종복이와의 결혼식,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정순이는 얼른 언니에게 달려가 등을 토닥이며 쓸어주었다.
“… 언니이, 울지 마러…”
달래는 정순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런께 말이다.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니 앞에서 눈물이 다 나온다이.”
겨우 말을 뱉은 언니는 더 크게 울었다. 언니를 위로하던 정순이는 마치 형부가 딴 살림을 차린 것처럼 구박했던 시어머니의 말이 떠 올랐다.
“… 근디, 형부가 밖으로 나돈다는 말은 뭔 말이여?”
“그것이… 나도 모르겄어. 우리 집 아저씨가 진짜로 바람이 나브렀는가. 맨 일만 하던 사람이 자꾸만 온다간다 없이 사라져븐께… 아저씨가 진짜 바람 나믄 나는 어짠 다냐. 나는… 진짜로 어찌케 살아야 한다냐… 흐흐흑”
언니는 희망을 다 잃은 사람처럼 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형부와의 약속을 더는 지킬 수 없었다. 언니가 겪고 있는 절망이 너무 컸고 걱정됐다.
“… 언니, 형부 바람 안 났어. 그건 내가 장담하네.”
울던 언니가 갑자기 그치더니 정순이를 쳐다봤다.
“그, 그것을 니가 어찌케 알어야?”
“형부… 창석이 고치러 다니는 거여.”
“뭐, 뭣이라고?”
“창석이가 그때 다쳤잖애. 그 어린 것이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든가… 병원에서 진찰 했는디 그동안 다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는갑서. 형부가 창석이는 절대 병신 안 만든다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더라고…”
언니를 속였던 것 같아 미안했다.
“근디, 왜 나한테는 말을 안 한것이여? 왜!”
언니에게서 원망이 터져 나왔다.
“아따, 왜 그랬겄는가? 언니 시엄씨 때문이제. 안 그래도 언니 잡아먹을라고 고양이 앞 쥐새끼 보듯 해싼것을 장흥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네. 창석이 데꼬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알면 언니를 가만 두겄는가? 근디… 언니가 이렇게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귀띔이라도 해줄 것을 그랬네.”
도대체 종복이란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 가늠할 수 없는 그의 깊이에 남편이 바람났을 거라고 의심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두고 한없이 흔들렸던 지난날이 죄스러웠다. 종복이가 바람이 난 게 아니라면 시어머니의 구박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감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순이가 저녁밥을 차리고 있을 때였다. 저녁에 시아버지와 남편은 로터리 클럽 모임이 있어서 참석하기로 했고 시어머니와 둘이 먹는 저녁이었다. 연순이는 엄마가 챙겨 보낸 생선꾸러미는 한쪽에 두고 부엌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샌가 마실을 다녀온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섰다.
“이것은 다 머시다냐?”
시어머니는 봉지 안의 고등어를 들어 보이며 매섭게 쏘아댔다.
“엄니가… 아저씨 고등어 좋아한담서 보냈어라.”
“종복이가 언제부터 고등어를 좋아했다고 이딴 싸디싼 개기를 보낸다냐? 느그 엄니는 니 시집보낼 때도 이불 한 채를 안해 보내드만… 시댁이 얼마나 우스우면 이런 싸디싼 생선을 묵으라고 보낸 다냐!”
소리치던 시어머니는 들어 보이던 봉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그 말은 비수가 되어 연순이의 가슴을 찔렀고 견딜 수 없이 서러워져 곧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아니어라. 아저씨가 저 처녀 때 우리 집 왔을 때도 고등어조림 맛나게 자시고… 제가 시집와서 해준 것을 맛나게 자셨는디…”
벌벌 떨면서 바닥에 떨어진 생선을 줍던 연순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니는 뭣을 잘했다고 또 질질 짜냐? 삼대독자 집에 들어와서 애 하나도 제대로 못 낳고 있는 것이! 니가 그라고 울어싼께 온 동네에 시어매가 며느리 잡아 묵는다고 소문이나 나는 것 아니여!”
시어머니는 악다구니를 쓰며 며느리에게 온갖 모욕과 원망을 퍼부었다.
그때, 종복이는 회식 가는 길에 두고 간 회원 명단 서류를 챙기러 집에 들렀던 참이었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이끌리듯 갔다가 연순이가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며느리를 못마땅해한다는 것을 느꼈으면서도 이렇게 당하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엄니… 지금… 뭣하시오?”
“니… 니가 지금 뭐… 뭔 일이냐? 오늘 로타리클럽 회식이라 안 했냐?”
당황한 할멈은 노했던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로타리클럽이고 뭣이고, 지금 연순이한테 뭣 하는 것이냔 말이오!”
종복이는 연순이가 한없이 당하고만 있었을 생각을 하니 아찔해져 눈이 뒤집어 질 것 같았다.
“뭣 이긴 뭣 이어야! 내가 그란께 이 결혼 맘에 안 든다고 했냐, 안 했냐? 없는 집구석에서 데리고 온 것도 맘에 안 든디 자석 새끼 하나도 못 낳은 것을 며느리로 모시고 있으니! 내가 속이 뒤집어지제 안 뒤집어지겄냐! 삼대독자 집안에 들어왔으면! 대를 이어야 할 것 아니여!”
할멈도 이미 다 밝혀진 마당에 지지 않고 연순이의 흠을 들추었다.
삼대독자? 그 말을 듣자 종복이에게 그간 저 가슴 밑바닥에 숨겨두었던 싸늘한 감정이 새어 나왔다.
“엄니… 삼대독자 말씀이오? 엄니도 나 낳고 같은 병신새끼 낳을까 무서웠던 것 아니오? 그래서 더 아그를 안 낳은 것 아니오! 삼대독자로 만든 것이 누군디 지금 삼대독자를 운운한다고라? 나는, 나 같은 병신 새끼 또 나올까 무섭소! 그게 무서워서 연순이 임신, 내가 안 시키요! 나는 나 같은 병신 안 낳을란께 삼대독자 대를 잇네 마네, 말도 꺼내지 마쇼!”
시어머니는 아들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을 듣고 망치로 얻어맞은 사람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주저앉았다. 그동안 오랫동안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던 진실을 오래전부터 종복이가 알고 있었다는 생각에 그 어미는 등줄기까지 서늘해질 만큼 두려워졌다.
종복이는 주저앉아 울고만 있는 연순이에 대한 죄책감과 어머니에게 쏟아버린 진실의 무게에 숨이 막힐 듯 답답해져, 대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솥에서는 밥이 다 되었다며 김이 피어오르고 된장국은 보글보글 끓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저녁상을 차리는 사람 없는 부엌엔 묵직한 적막만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