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조용히 흔들리는 것들

by 라라

제24장 조용히 흔들리는 것들


읍내의 종합병원에 도착한 창석이는 바로 엑스레이를 찍고 치료를 받았다.

다리든 팔이든 뼈가 다치면 개가 눈 똥이 약이 되는 시절이었다. 병원에 가는 대신 개똥을 구해다가 끓여 한 사발씩 먹고는 나아야 했다. 하지만 그날 창석이는 매형 덕분에 병원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이거, 골절이네. 종아리뼈가 제대로 나가버렸어요.”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말했다.


“그라믄 수술해야 하는 거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종복이 말했다.


“뼈는 많이 어긋나진 않았으니 수술까진 안 해도 되겄고. 깁스를 단단히 하고 최소 두 달은 꼼짝도 말아야 해요.”


“두 달이나요?”


두 달 동안 일을 쉬어야 한다는 그 말이 창석이를 더욱 암담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안 쉬고 또 들쑤시고 돌아다니면 뼈가 삐딱하게 붙어요. 그러면 평생 절룩입니다.”


의사의 ‘절룩’이라는 말에 종복은 한평생을 절룩거렸던 자신의 한 많은 날이 스쳐 지나갔다. 처남이 절름발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잘 들었제? 다리 나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어이.”


“지도 장남인디… 뭐라도 해야제요.”


“자네!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고 싶은거여? 누나 눈에 눈물 나믄 가만 안 있는다고 했지? 인자 말 안 듣고 밖으로 또 나돌면 그 담부터는 좋게 말로는 안 할 거여. 알았는가?”


종복이는 험한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 아픈 발로 또다시 돈 벌겠다고 나설 아이의 치기를 억눌러야 했기 때문이다.


공사판은 험했고 거칠었다. 멀쩡한 어른도 일하다가 다치고 쓰러지는 곳이 노가다판이었다. 이제 막 국민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일하기엔 너무 일렀고, 벅찼다.


그곳을 버틴 처남에게는 그날 다친 곳 말고도 오랜 시간 방치된 상처 들이 많았다. 탈골이 되는 어깨, 제대로 굽혀지지 않는 팔꿈치, 또그닥 소리가 나는 발목. 병원 치료로도 다 나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처남의 망가진 몸을 바라보며 종복은 한숨을 삼켰다. 그는 다시는 이 아이를 그 판에 내몰지 않겠다고 비장하게 결심했다.

들일이 더욱 바빠졌는데 오늘도 종복이가 이른 아침부터 사라졌다.


“종복이는 오늘은 또 뭣 한다고 나갔다냐? 할 일이 지천인디… 그것이 어째 총각 때도 안 하던 짓을 하고 다닌다냐!”


할멈은 아침부터 복장이 터졌다. 절름발일지라도 아들이 나갈 때는 바람처럼 나갔기에 번번이 할멈은 그의 꼬리를 잡을 수 없었다. 한창 추수하는 시기의 노란 들판은 손 하나가 귀했다. 백 씨네가 관리해야 하는 논과 밭은 셀 수 없었고 다 늙은 영감 혼자서는 벅찼다.


“종복이를 언제까지 끼고 살라 그란가? 냅둬! 지 알아서 다 하겄제. 쯧쯧…”


백 씨 영감은 버럭버럭 성내는 할멈을 마뜩잖은 얼굴로 바라봤다.


“그라믄 그 많은 일을 누가 다 할 것이오? 자고로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쓴디, 이놈의 집구석에 먹여 살릴 자석이 있기를 해, 하나 있는 마누라가 자기 서방한테 귄 있게 하길 해. 근께 종복이 그놈도 집구석에 정을 못 붙이는 것 아니오!”


부아가 난 할멈이 연순이를 들먹거리며 질러댔다.


“아따, 할 것이 뭐가 있다고? 싸복싸복 걸어 나갔다가 구경이나 함시롱 앉아 있는 거제. 자네는 뭣을 그라고 사서 걱정인가?”


백 씨 영감은 큰소리로 맞받아치진 못하고 며느리를 향해 위로의 눈짓을 건넸다.

그런데 정말이지 요즘 종복이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의문스러웠다. 평소에도 온다간다 말이 없기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평소에 가는 곳은 집과 가게와 논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일도 다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돌았다. 그 이유를 연순이도 몰랐다. 그래서 영문도 모르고 시어머니의 화살받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연순이는 창석이가 다쳤던 그날 이후로 많은 생각을 했다. 눈 질끈 감고 자신을 던져버렸던 결혼과 맞바꾼 것은 가족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창석이가 학교 대신 공사장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은 그간을 버텨온 이유를 흔들리게 했다. 그동안 얼마나 친정에 무심했던가. 저 살기에 급급했던 것 같아 부끄럽고 괴로웠다.


연순은 그저 지옥을 걷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돌이킬 수 없는 결혼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찬하와의 달콤함 사이에서 엇갈린 운명만을 원망했다. 그 속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창석이가 피 흘리던 그 공사장에서 눈앞의 현실이 한 겹 벗겨져 보였다. 동생이 그동안 수없이 삼켰던 눈물을 생각하니 그동안 품은 모든 고민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연순이네는 먹고사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추운 날, 쩍쩍 갈라지는 손등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데도 고무대야 안의 얼음을 깨고서 그 물에 빨래와 설거지를 할 수밖에 없던 날들이 지나갔다. 그저 간장에 비벼 먹더라도 그날 모두가 함께 먹을 보리밥이 떨어지지 않고 있으면 다행이라 여겼다.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맞지 않고 지나가면 그저 좋았던 날을 살아왔다.


지금 그녀의 집엔 훈기가 돌았다. 배불리 먹을 밥은 물론이고 온갖 반찬이 상 위에 가득했다. 철마다 나오는 과일은 아껴둘 필요가 없었다. 때때로 들꽃을 꺾어다가 바치는 남편이었고 또 그가 사다 나르는 화장품은 그득하게 쌓여 화장대 위엔 더 놓을 자리가 없었다.


그동안의 가슴앓이가 얼마나 사치였던가. 모든 감정이 부끄러웠다. 그 사치에 눈이 가려 여전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걱정인 친정 식구들을 바로 보지 못했다. 미안하고도 죄스러웠다. 더는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묶어 두어야 했다. 그렇게 연순은 지난 감정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멀지 않은 곳에서 찬하의 마음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저것은 다니라는 학교는 안 다니고, 어디서 처맞고 다니는 거여. 쯧쯧…”


찬하의 외할머니는 얼굴이며 몸이며 성한 데가 없이 들어온 손주를 보고 기함을 했다. 어릴 때는 부모 속 한번 썩인 적이 없던 손주 녀석이 그 좋은 대학교는 어찌 휴학하고 이곳에 눌러앉더니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다니… 딸을 닮은 건 아닐 테고 아마 사위를 닮았겠거니 했다.


찬하는 그날, 그 작업반장에게 두들겨 맞고 며칠을 앓았다. 사실 부어터진 입술보다 아픈 것은 마음이었다.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처참한 무력감이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가 속으로 얕잡아본 종복은 어른이었다. 연순이 하염없이 울고 있을 때 그 눈물을 멈추게 한 이는 그였다. 그것이 더욱더 찬하를 초라하게 했다.


비극적인 소문 한가운데에 놓여있던 연순이를 구할 수 있을 사람이 자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치기 어린 생각이었는지 직접 마주한 그녀의 현실에 찬하가 내민 손은 너무 가벼웠고, 너무 늦었다.


폭풍 속에서 그 비바람을 다 맞고 서 있는 들꽃이 연순이라고 생각했다. 찬하는 그 여린 들꽃의 우산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비바람을 일으키며 수없이 흔들리게 한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다는 현실을 마주하고선 그 참담함에 숨을 쉴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욕심은 그녀에게 해로웠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이기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수학 경시대회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만석이의 표정이 진지했다. 지난 몇 개월간 찬하 선생님과 공부한 만석이는 주는 대로 쏙쏙 받아들이는 스펀지였다. 이제 싸늘한 기운마저 감도는 날씨인데도 이들이 공부하는 방은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뜨거웠다. 수업을 마무리한 선생님이 머뭇거리다 만석이에게 말을 꺼냈다.


“만석아, 선생님이 이번 달까지만 네 공부를 봐 줄 수 있어.”


“왜요?”


“이제 곧 경시대회도 있으니까 그때쯤이면 마무리해도 괜찮을 거야. 선생님이 네가 보면 좋을 책이랑 공부에 필요한 것들 정리해서 누나에게 말해 놓을게.”


“선생님, 조금만 더 같이 공부하면 안 돼요?”


“꼭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만석이 너 마음 놓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는 거야. 당분간은 비밀이다, 알겠지?”


선생님과의 수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아쉬웠다. 하지만 선생님의 표정이 왠지 결연해 보이기도, 쓸쓸해 보이기도 해서 더 조르지 못했다. 그렇게 찬하는 연순의 삶에 일으켰던 파동을 수습하고 있었다.


연순 또한 자신의 삶을 다잡아야겠다, 마음먹었고 점차 냉정함을 찾아갔다. 찬하의 눈빛이 머무르는 일이 잦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고 그렇게 찾아든 평정은 뜨거웠던 지난날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런 마음이라면 한 남자의 아내로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을 때, 그 평온함 속에서도 자꾸만 연순이를 불안하게 했던 것은 종복이었다. 그는 여전히 일을 나가지 않고 자리를 비우는 날이 잦았다. 그의 부재가 잦아질수록 연순의 근심도 쌓여갔다.


‘혹시… 다른 여자가 생겼을까?’


젊은 날, 숱하게 바람을 피웠던 아버지. 그래서 남자 중 열에 아홉은 딴 여자를 품을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종복이었다. 장흥 바닥에서 종복의 일편단심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씩은 그것에 숨이 막히기도 했다. 다가오는 것마저 끔찍할 때도 있었다. 한 번씩은 다른 곳이 있다면 풀고 왔으면, 못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막상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게 이상했다. 늘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이라 당연했을까. 구름에 가려지니 섭섭하고 불안했다.


그의 외출은 불규칙했다. 며칠은 꼬박꼬박 들이며 가게로 나가 일했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한나절, 또 어떤 때는 종일 자취를 감추었다. 성실 빼면 시체라고 할 만치 그에게 노동은 몸에 밴 숨결이었다. 늘 그 노동을 위해선 거적때기만 입고 다녔던 그가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설 때면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를 믿었던 것은 변함없는 그의 손 때문이었다. 들에 나가면 들꽃을 꺾어 오던 종복이의 손은 이유 모를 외출 후에도 연순이를 위한 것이 늘 들려있었다. 어느 날은 예쁜 손거울이었고, 어느 날은 꽃무늬 치마였고, 어느 날은 따뜻한 풀빵이었다. 그것은 의심했던 마음을 다독이며 안심하게 했다.


하지만 종복이의 은밀한 외출이 노랗던 들판이 빈 들판이 될 때까지도 계속되자 안심했던 마음도 다시 의심에 휩싸이게 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답할 수 없는 물음은 연순의 가슴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되어 자꾸만 몸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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