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너무 쓴 단맛
천관 보살이라는 그 무당이 정말 용한 걸까?
연순이는 두 달이 넘도록 달거리를 하지 않고 있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구역질이었다. 밥을 뜸 들이는 냄새에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 연순이는 급히 부엌 뒤 수돗가로 뛰어갔다.
“오메메, 그 보살님이 확실히 용하긴 한갑서야. 드디어 애기가 들어섰구마이!”
시어머니의 입꼬리는 찢어질 듯 올라갔다. 며느리가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벌벌 하며 쉬라 했다. 연순이의 불안했던 마음은 달거리가 없자 점차 사그라들었다.
‘정말 아기가 온걸까?’
희망이라는게 조심스럽게 피어올랐다. 속으로 가장 좋아했던 이는 아마도 종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연순이를 꽁꽁 묶어 두고 싶던 그. 일하고 돌아오는 그의 두 손엔 사과며, 귤이며 제철 과일이 한 아름씩 들려있었다.
들뜬 기대 속에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넘기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불어오는 바람이 유난히도 서늘했다.
그때 왈칵, 아래를 적셔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곧 화장실에 간 연순은 비릿하고 축축한 속옷을 보고 말았다. 그것을 마주한 순간, 어쩌면 잊을 수 있겠다 싶었던 죄책감이 다시 올라왔다. 끝을 모르고 마음이 저 깊숙이 가라앉았다.
속옷을 갈아입고 수돗가에 앉아 그것을 빨았다. 대야 안의 투명한 물이 빨갛게 물들었다. 연순이는 그것을 주무르면서 마음에 품었던 기대도 함께 씻어내려 했다. 그때, 마당을 지나가던 시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았다.
“오메, 연순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시어머니의 눈길은 곧 붉게 물든 대야로 옮겨 갔다.
“근디… 시방 뭐 하는 것이여?”
그 눈길은 다시 연순이가 주무르고 있던 속옷으로 옮겨갔다. 순식간에 온 얼굴에 싸늘함이 번졌다. 연순이는 뭐라 대꾸도 못 하고 가만히 속옷만 주물렀다. 시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이고! 내 팔자에 손주 구경은 언제 해 볼 것이냐!”
“…….”
“니는 또 뭣 한다고 입덧을 그렇게 했다냐, 잉? 하이고―”
뜻 모를 죄책감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애기가 하나 있다’는 점쟁이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바라는 대로 믿고 싶었고 그러면서 잠시 설렜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열불 나서 죽겄네이. 에잇.”
한껏 소락대기를 내지른 시어머니는 성이 나서 대문을 차고 나가버렸다. 희망도 기대도 남지 않은 마당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연순이는 마루 끝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지금까지 쉬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연순이. 삶이 어쩜 이리도 차가울까, 서러웠다. 눈물은 마르기도 전에 또다시 솟구쳤다.
그 모습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골목 끝, 담장 너머의 찬하였다.
연순이는 태풍을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는 여린 풀꽃이었다. 더는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 달려가 그 비를 막아줘야 했다. 눈물을 닦아 줘야 했다. 충동을 이기지 못한 그는 결국 뛰어 들어갔다.
“울지 말아요…”
찬하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이끌린 그는 연순의 두 볼을 감쌌다. 그리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당신이 불행하면, 나는… 정말 살 수 없어.”
온 힘을 다해 뱉어낸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말에 연순이는 더 서러워졌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찬하가 그간 가둬두었던 그리움을 흔들었다.
결국 터져버린 갈망에 휩싸인 그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지우듯 떨리는 입술로 연순이의 얼굴을 더듬었다. 얼굴 위를 조심스레 맴돌던 입술이 곧 그녀의 입술로 가닿았다. 그 순간 그는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져 버렸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밀려 들어온 그에게 망설이던 연순이도 곧 같은 격정에 사로잡혀 버렸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일시에 사라졌다.
마음속 새겨두었던 그들만의 선이 무너졌다.
억눌러왔던 그리움과 갈망이 그들의 숨결 위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그녀는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며느리도 아니었다.
서로의 입술이 얽혀 있던 그 순간,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간절했고, 가장 슬펐다.
그 순간만큼은 꿈이기를, 그래서 마음껏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절망일까, 희망일까. 끝내야 할 것을 결국엔 시작해 버린 입맞춤.
사랑일까, 파멸일까. 구별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마구 밀어 넣어버린 마음.
“우리… 도망쳐요. 벗어나요, 여기에서. 잘할게.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어…”
붉어진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 그의 눈빛에는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절박함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입술로 발음된 ‘도망치자’는 그 말은 너무 달콤했다. 그 말은 연순이는 단꿈에서 깨어나게 했다.
때로는 너무 단 것이 오히려 썼다. ‘도망치자’는 그 말은 연순이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만큼 너무 유혹적이었다. 오히려 자기 자리를 자각하게 했다. 잠시 머물렀던 달콤함이 꿈이라면 어서 깨어나야 했다. 그 꿈에 더 머물렀다간 더는 돌아갈 곳도 없어질 것이기에.
‘잠깐, 그리웠던 거야…’
그곳이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걸, 그와의 미래를 꿈꾸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안 돼요, 찬하 씨. 이제 이러지 마세요. 더는, 안 돼요.”
“내가 당신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 당신도… 나 없이 못 살 거잖아. 제발…”
눈물을 흘리는 찬하는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 같았다. 그 눈물은 비수가 되어 연순이의 가슴을 찔렀다.
“아니에요, 이제, 그만…”
연순이는 애써 찬하를 밀어냈다. 힘겹게 지켜왔던 선을 허물어 버린 자신의 방심에 죄책감을 느꼈다. 결국엔 그가 원하는 답은 어느 것도 해줄 수 없었기에 그에게서 또 달아나야 했다. 집을 나온 연순이는 목적지를 잃은 채 달리고 또 달렸다. 찬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자신의 품 안에 잠깐 머물렀던 그녀의 온기를 되새겼다. 깨기엔 너무나 달았던 꿈이었다. 그래서 새기고 다시 또 새겼다.
그날, 정순이는 언니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엄마 장사를 도와드린다는 핑계로 장에 나왔다가 심부름을 하게 된 것이다.
“정순아, 오늘은 느그 언니한테 한번 가봐라.”
어딘가 모르게 말을 아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언니한테 줄 것이 있간디요? 그런 거면 만석이 갈 때 싸서 보내믄 되제…”
“영 께름칙 하단마다. 점례 아버지가 와서 한 말이… 아무래도 이상해야.”
점례, 언니와 선생님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던 아이. 그 이름을 듣자, 정순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아자씨가 뭐라고 합디요?”
마른침을 삼키며 되물었다.
“헛소리기야 하겄다만… 만석이 가르치는 그 선생 말이다. 점례 갸가 연순이랑 둘이 있는 것을 봤다더라고.”
엄마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아― 그 가시네가 또 헛소리를 했는갑구만. 그것이 선생님을 좋아해서 야학 따라댕기고 그랬어라. 언니랑 선생님이랑 뭔 일이 있겄소? 접때 야학 소개함시로 말 몇 번 해 본 것이 다제.”
정순이는 엄마의 걱정을 물리치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과외 때 보았던 언니와 선생님은 정말 아무 사이가 아닌 것 같기도, 그럴 거라 믿고 싶기도 했다.
“그… 그런거제? 그래도 어째 젊은 남자가 그 집에 드나드는 것도 쪼까 걸리고.”
엄마는 애써 안심하면서도 영 한구석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그 집에서 언니가 과외를 받는다요? 만석이가 받제! 뭔 시답잖은 소리를 하고 있소? 엄니도 참, 그런 거 보믄 영 노인네 같당께?”
“야튼간에 사돈댁에 개기도 좀 갖다 드리게 언니 집에 좀 가 봐라. 오늘 병어가 겁나 좋아야.”
엄마는 정순이 손에 병어와 조기 새끼들을 가득 담은 꾸러미를 들려주며 서둘러 내보냈다. 정순이는 그것을 품에 안고 장터를 지나 언니 집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들려오는 엿장수의 찰찰 대는 가위질 소리도 어쩐지 오늘따라 흥겹지 않았다. 언니 집이 가까워질수록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게 자꾸만 누가 쿡쿡 찔러대는 것 같았다.
‘설마… 진짜 그런 일이 있을 라고…’
고개를 저으며 대문을 향해 한발, 또 한발 다가갔다. 그러고는― 서로 엉켜있던 둘을 목격해 버리고 말았다. 격렬하게 입맞춤하던 두 사람을 본 순간 온몸이 얼어붙고 숨이 턱, 막혔다. 심장 소리가 쿵쿵, 울렸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손에 들고 있던 꾸러미를 놓칠 뻔했다.
오가는 시선들 속에서 감지했던 그 떨림을 부인했던 순간들이 지나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배신감과 실망감이 목구멍까지 뜨겁게 차올랐다. 언니가 선생님을 밀치는 것을 보고서야 담벼락 아래로 몸을 숨겼다. 곧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골목 끝으로 달아나는 언니의 뒷모습에 가슴이 찢기듯 아려왔다.
방금 정순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설렜던 선생님에 대한 실망과 믿고 따랐던 언니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왜 그들이 비련의 주인공 같아 보였을까. 왜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들었을까. 어쩌면 그날은 정순이가 처음으로 어른의 마음을 슬쩍 들여다본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제, 안 들어가고 뭐혀?”
골목 저편에서 들려온 형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다시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혹시라도 봤으면 어쩌지,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다. 정순이가 마치 자기가 나쁜 짓을 하기라도 한 듯 조심스럽게 형부 얼굴을 살펴봤다. 불행 중 다행일까. 그는 평온해 보였다. 정순이는 황급히 웃는 얼굴을 지어 보이며 꾸러미를 들고 일어섰다.
“아이구, 형부. 엄니 심부름 왔다가… 골목에 핀 꽃도 이쁘고 해서…”
정순이 목소리엔 억지로 짜낸 밝음이 묻어 있었다.
“집에 연순이 있을 것인디, 들어가세.”
아무것도 모르는 형부가 앞서 걸어갔다. 선생님은 아직도 그 마루 끝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정순이는 왜 두 남자가 동시에 안타까웠을까. 이유는 모르면서도 언니와 선생님의 비밀이 끝까지 지켜지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