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작은 노를 젓는 아이

by 라라

제21 장. 작은 노를 젓는 아이


“누나! 크… 큰일 나븟네! 아… 아버지가…”


부엌에서 점심을 차리고 있는데 울상이 된 동석이가 숨넘어갈 듯 뛰어 들어왔다.


“뭔 일인디 그라고 뛰어오냐?”


“아… 아버지가 또… 똥통에 빠져브렀어!”


그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측간으로 뛰어갔다. 동석이에게 부축을 받아 측간에 갔던 아버지가 그곳에 빠져 못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위태롭게 두 팔만 발판에 걸치고 있었다.


“야! 너는 아부지를 잘 봤어야제!”


결국 동석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부지가 이럴 줄은 몰랐제… 어찌케 계속 보고 있단가…”


동석이의 큰 눈망울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정순이는 아버지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들어 올려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힘이 빠진 아버지를 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동석이도 힘을 보태겠다고 함께 잡아당겼다. 두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썼지만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결국 덕철이 아저씨를 불러서야 아버지를 꺼낼 수 있었다.


“아저씨, 참말로 고맙네요.”


인심 많은 아저씨에게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났다.


“이웃 간에 서로 돕고 사는 거제. 뭔 그런 소리를 한다냐? 정순이 니가 고생이 많다이.”


아저씨가 돌아가시자 정순이는 다시 바빠졌다. 빠른 손놀림으로 아버지에게서 오물투성이가 된 옷을 벗겨 마당 수돗가에 던져놓고는 연탄 풍로에 솥을 올렸다. 그 다음 덥힌 물을 고무 다라에 받아 온도를 맞췄다.


“아부지는 조심 좀 하제는! 뭣 한다고 거기에 빠져서 이라고 나를 힘들게 하요!”


조심한다고 될 일이었을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아버지를 씻기는 게 너무 화가 나 저도 모르게 면박을 주고 말았다. 아버지를 씻기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곧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 정순이의 날 선 말에 뭐라고 대꾸 한마디를 못 하고 앉아 있는 아버지의 등이 슬펐다.


닦아 주는 대로 몸을 맡긴 마른 등으로 뼈가 다 드러났다. 기골이 장대하고 기품 있던 아버지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술이나 실컷 마시고 노래나 부르던 그때의 아버지마저 그리웠다.


해 질 녘에나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하루도 고됐다. 하지만 정순이의 하루도 그 고됨과 다름이 없었다. 순하디순한 아이가 결국엔 하소연을 토해냈다.


“엄니, 나 진짜 아부지 때문에 못 살겄소. 언제까지 내가 이라고 살아야 된다요? 오늘은 측간에 빠지셨소.”


한탄은 곧 눈물로 변했다. 정순이가 지고 있는 짐은 열여섯 아이가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웠다. 그러나 여섯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다른 수도 없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별 의미 없는 넋두리뿐이었다.


“느그 아부진디 어쩔 것이냐… 저 인간은 차라리 그때 디져블제는 뭣 한다고 기언치 살아서 느그들을 이라고 성가시게 한다냐…”


중풍에 걸린 아버지는 왼쪽으로 마비가 왔고 얼굴은 뒤틀어졌다. 용하다고 소문난 고려당 침쟁이도 수 차례 다녀갔다. 사위가 챙겨주는 한약도 꼬박꼬박 달여 먹었다. 자라며 잉어며 장어며 개고기까지 기력 회복에 좋다는 것들도 없는 살림에 부지런히 사다 끓여 먹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다리 힘은 더 떨어졌고 기력은 쇠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정순이에게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고 참으로 길었다.

처음엔 의사의 말을 열심히 따르던 아버지였다. 조금이라도 나아 보겠다고 굼뜬 걸음으로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송골송골 땀을 흘렸다. 하지만 별 차도가 없어서였을까. 점차 그 눈에서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다시 술을 찾았다.


“저순아… 마거리… 한 자마… 사다 주라…”


“와따, 아부지는 왜 그라요? 술 자시믄 안 된다고 하는 말 못 들으셨소?”


정순이는 그때마다 아버지를 타일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의 술에 대한 갈망은 깊어졌고 집착은 심해졌다. 이 갈증은 아버지를 더욱 신경질적으로 만들었다.


“수… 술…! 사가고 오라마다!”


사탕을 빼앗긴 세 살짜리 아이처럼 술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날이 잦아졌다. 힘도 들어가지 않은 손으로 놋그릇이며 목침이며 닿는 대로 잡아 던져 댔다. 그럴 때면 정순이도 하는 수 없이 점빵에서 술을 사 왔다.


“정순아, 너 지금 뭐 사 가냐?”


술을 사 오다가 만난 콩새 할머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정순이의 손에 들린 주전자를 보고 물었다.


“술이어라. 아부지가 딱 한 잔만… 자시고 싶다 하셔서…”


“오메메― 큰일 날 소리 하구만! 술 때문에 저리된 양반이… 그러다가 골로 가야! 애징가니 사다 드려야!”


콩새 할머니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처음엔 한잔으로 시작한 그 술이 날이 지날수록 더 많이 필요했다. 그걸 찾는 날도 잦아졌다.


“아부지, 인자 진짜 마지막이요! 술 자시믄 안 된다고 콩새 할머니도 그라시고 침쟁이 할아버지도 그러시더구만… 앞으로는 나는 절대로 안 사다 줄란께 그리 아쇼.”


그 술을 받고는 잠깐 눈을 빛내던 아버지에게 정순이는 늘 마지막 술을 사드렸다.


‘차라리 저 술을 먹고 아버지가 얼른 죽어버렸으면.’


그 생각까지 해버리고 나면 정순이는 자신이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만든 이 집을 나가고 싶었다. 그때, 그 설날에 아버지의 말대로 공장에 들어갔더라면, 식모살이를 나갔더라면 더 나았을까. 이제 와 답도 없는 생각에 잠길 때면 끝을 모르고 가라앉는 배가 된 기분이었다.


희망이란 게 보였다면 더 나았을까? 갈수록 희미해지는 그것처럼 아버지의 다리는 힘을 잃어갔다. 찬바람이 들기 시작하면서는 마당 건너편에 있는 측간까지 걷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래서 정순이는 아버지가 누워 계신 방 한쪽에 요강과 함께 신문지를 깔아 두었다.


기력이 좋은 날의 아버지는 그 위에 일을 보았다. 하지만 그마저의 기력도 안 되는 날에는 이불에 다 싸버렸다. 그러면 정순이는 그것을 걷어 큰 고무대야에 넣어 발로 꾹꾹 밟았다. 먹는 것도 별로 없는데 늘 나오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잘 지워지지도 않는 오물 묻은 이불을 밟고 밟아, 빨아 말렸다.


동석이 애기때부터 수없이 똥 기저귀를 갈고 빨았던 정순이었지만 아버지의 그것은 달랐다.


독했고,

역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여러 번 삼켰다. 하지만 해내야 했다. 자취를 감춰버린 희망 앞에서 정순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루를 꼬박 채워 버티는 것이었다.


“엄니, 나 인제 야학에 다녀올께라.”


동생들 저녁밥까지 챙겨주고 집을 나섰다. 하루 종일 집에 묶여 힘든 날들을 버티던 열여섯의 정순이에게 야학에 가는 시간은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었다. 살겠다 싶은 시간이었다. 선생님과 언니의 소문 때문에 야학을 못 나가던 그 얼마간은 정말이지 너무나 우울했다.


“누나, 왜 야학을 안 가는 거여?”


갑자기 늘어난 누나의 짜증과 잔소리를 받아내던 남동생들이 영문을 모르면서도 차라리 누나가 야학을 갔으면 할 정도였다. 매일 저녁 미자가 찾아와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둘러대던 정순이는 찬하 선생님이 그만두고서야 마음 놓고 야학에 나갈 수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소문도 사그라들었고 그를 따르던 어린 소녀들도 몇몇 떨어져 나가 눈치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정순이에게 미자가 때때로 가르쳐 주긴 했었지만 그것이 일정하게 유지되기가 어려웠다. 학교를 그만두던 그때와 비교해서 실력이 크게 늘지 않았고 그마저도 잊어버린 게 더 많았다. 야학에서는 받침이 있는 한글 쓰기부터 시작했다. 늘 소리 나는 대로 받아적던 정순이는 사물의 이름을 좀 더 정확하게 쓸 수 있게 됐다. 꼬박꼬박 야학에 나가 공부 하니 간단한 편지와 일기도 쓸 수 있게 됐다. 처음으로 동석이에게 편지를 써 자랑했던 일은 배움에 대한 설렘으로 일렁이게 했다.


간단한 셈은 엄마의 장사를 도우며 자연스레 체득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기호를 가지고 셈을 해 본 경험은 적어 처음엔 이것을 연결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나 녹슬기엔 정순이는 아직 어렸다. 선생님이 설명해 준 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던지 같이 다니는 아저씨, 할머니, 언니들과 비교하면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정순이가 셈을 잘하는구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선생님이 칭찬했다. 가방끈이 너무나도 짧았기에 어디에서든 주눅 들 수밖에 없던 아이. 언니처럼 예쁘지도 않고 아는 것도 없었던 일자무식 정순이. 막냇동생을 키우고 남동생들 밥 해주다가 이제는 중풍 걸린 아버지 병수발을 하느라 열여섯 인생의 절반을 보내버렸다.


아무리 짧은 생이라 쳐도 자신을 위한 것이 단 한 줌도 되지 않았다. 야학에서는 어린아이가 고생이 많다는 측은한 말이 아닌 나이에 맞는 칭찬을 받아볼 수 있었다. 처음 들어본 그 말은 정순이를 두둥실 떠오르게 했다. 그래서 야학이 좋았다. 진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게 그렇게나 행복했다.


“정순이는 열심히 하니 이렇게만 꾸준히 하면 검정고시 준비해도 되겠다.”


멋모르고 왔다 갔다 했던 야학에서 국민학교 정도 만이라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검정고시’ 이야기를 꺼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순이의 삶이 배라면 그 순간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사공이 되어 노를 젓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순이는 끝없이 펼쳐진 암흑 속에서도 작지만, 분명한 빛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찬하 선생님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웃는 얼굴 뒤에 감춰진 그 쓸쓸한 눈빛이 떠올랐다. 말 한마디 없이도 수만 가지 말을 건네는 그 눈빛이 왜지 마음에 걸렸다.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곧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처럼 불안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측은했다면 그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곧이어 언니가 떠올랐다. 얼마 전 언니네 집에 갔을 때 보았던 그 독한 시어머니는 언니를 살갑게 대했다. 부엌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아끼던 모습이 왠지 소름 끼쳤다. 언니가 시집가서 그렇게 대접받던 때가 있었던가 싶으면서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떫은맛이 도는 게 영 불편했다.


그렇게 정순이에게로 들어온 서늘한 바람 한 점이 계속 마음을 어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