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 장 눈의 유산
정남진에도 겨울이 내려앉았다. 따뜻함이 익숙한 이곳 사람들에겐 겨울이 더 매서웠기에 눈을 좋아하는 것은 개와 아이들뿐이었다.
열여섯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는 정순이는 아이였을까, 어른이었을까?
눈 구경 하는 것이 쉽지 않은 동네에서 정순이는 하얀 솜 같은 그것을 보는 게 참 좋으면서도 얼음장을 깨야 할 때는 싫었다. 매해 겨울마다 견디었던 설거지, 빨래였다면 더 나았을까?
이불을 빠는 일은 날이 추워질수록 더 힘들었다.
그래서 정순이는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부지, 제발 조심 하시란께요. 진짜 징해 죽겄소!”
안방, 아버지가 누워있는 자리에 천가지와 신문지를 깔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정순이는 없는 살림도 반질반질하게 닦고 또 닦았던 깔끔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드러눕고 나자 그 살림을 정갈하게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오물이 묻은 이불을 빨고 나면 한나절이 지나기도 했거니와 집안을 쓸고 또 닦아도 깊게 배인 퀴퀴한 냄새는 닦이지 않았다. 학교 가는 동생들 옷에서 그 냄새가 날까 무서워 얼음장 같은 물에 손을 담그고 빨고 또 빨았는데도 소용없었다.
그날 정순이는 아이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오랜만의 폭설이었다. 사르락 사르락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날이었다. 발로 밟으면 푹푹 들어가는 눈으로 온 세상천지가 하얀 나라가 되자 아이들은 신났다. 콧물을 찔찔 흘려대던 동석이도 나가서 놀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럴 때 가장 만만한 사람은 늘 누나였다.
“누나, 나랑 같이 나가서 눈놀이 하자!”
누런 콧물을 들이켜도 그 잘생김을 숨길 수 없는 동석이가 정순이의 옷깃을 잡아끌며 말했다. 마당에 쌓여있는 하얀 눈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정순이는 동석이의 그 말에 꿈에서 빠져나온 듯했다.
‘아버지 아침에 식사도 봐 드렸고… 잠깐 나갔다 오는 것은 괜찮겠지?’
막둥이의 핑계를 대서라도 집을 나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얀 눈을 보고 더이상 근심 걱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그 눈과 함께 아이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부지, 동석이랑 잠깐만 나갔다 올께라.”
이제는 힘겨운 눈빛 외엔 별다른 대답이 없을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묻는 정순이는 동석이와 함께 밖을 나왔다. 대문을 넘어서 집 밖으로 나왔을 뿐인데도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골목엔 동석이 또래의 어린아이들이 나와 놀고 있었다.
농사철이 끝났으니 할 일도 없겠다, 아이들의 눈놀이를 구경하는 어른들도 몇 있었다. 정순이처럼 학교에 다니지 않는 큰 아이들도 보였다. 놀거리만 있으면 누구든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그 시절, 눈 하나만으로도 웃음소리가 온 동네의 골목 골목을 가득 채웠다.
언덕배기에선 아이들이 어른들 몰래 구해온 비료 포대로 썰매를 만들었다. 포대 안에 지푸라기를 넣어 폭신한 방석처럼 만든 다음 그 위에 앉아 쭈르르르 내려갔다. 속도가 붙을수록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누군가는 깡통을 찌그려 발에 묶고는 스케이트를 만들었다. 얼어붙은 논 위를 미끄러지듯 타는 게 여간 재미있었다.
손이 빨개지는지도 모르고 눈을 모아 큰 탑을 만들었고 누가 더 크게 눈덩이를 굴리나 시합도 했다. 어느덧 모인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편을 짜더니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놀다 보니 손도 빨개지고 코도 빨개지고 볼도 빨개졌는데 뱃가죽이 아플 만큼 웃을 수도 있었다.
놀 때는 시간이 왜 그렇게 빠르게 흐를까. 함께 놀던 아이들이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밥 먹으러 하나둘 집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논 것 같았다. 점심때가 훌쩍 지나버렸다. 오랜만에 아이가 되었던 시간은 잠깐만 놀려던 계획을 무참히도 무너뜨려 버렸다.
그제야 문득, 혼자 집에 계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더 놀고 싶다는 동석이를 다독거려 집으로 왔다.
그때였다. 무심코 대문을 열었다가 마당에 보이는 거뭇한 물체에 정순이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것은 아버지였다. 정순이와 동석이는 얼른 뛰어 들어갔다.
“아… 아부지!”
“… 으윽…”
정순이가 부축하자 아버지는 숨을 몰아쉬며 신음했다. 아버지의 머리칼은 눈발에 젖어 얼어붙어 있었고 그의 주먹은 눈을 가득 움켜쥐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쓰러져 있었을까? 몸이 찼다.
“동석아, 니는 아부지 다리 잡어! 누나가 위에 잡을 텐께!”
정순이와 동석이는 아버지를 방으로 옮겼다. 지난 가을까지만 해도 둘이서 아버지를 들 수 없었는데 몇 달 사이 아이들의 힘이 그리 세졌을 리가 없는데 아버지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아이들은 조심히 끌어 아랫목에 아버지를 눕혔다. 정순이는 눈물을 삼키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고 차가워진 아버지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아부지… 정신이 좀 들어요?”
아버지는 눈을 힘겹게 뜬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정신이 아득해지고 자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순이는 즐거웠던 지난 시간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마치 오누이에게 내려온 동아줄처럼 콩새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라면 알 것 같았다.
“동석아! 콩새 할머니 좀 불러와라.”
옆에서 아버지의 몸을 함께 주무르던 동석이는 누나의 말을 듣고는 작은 몸으로 부리나케 뛰어가 콩새 할머니를 불러왔다. 급히 들어온 할머니는 아버지를 보고 정순이와 함께 축축하게 젖은 옷을 갈아입혔다. 삼 년 동안 중풍 걸린 남편의 병수발을 해온 콩새 할머니는 웬만한 전문가보다 더 잘 알았다. 아버지의 증상만 봐도 척 알아차릴 만큼 손이 익숙해져 있었다.
“와따메, 이 추운 날 뭣 한다고 나가소? 걸음도 성치 않은 양반이. 눈 보고 자파나갔소? 쯧쯧”
콩새 할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느그 아부지도 애가 되고 싶었는갑다. 함박눈이 온께로 온 동네가 떠들썩하더니만… 느그 아부지는 옛날부터 저 혼자서 나이 안 먹는 사람처럼 살았은께…”
콩새 할머니의 그 말에 아버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지나갔다.
“정순아, 할미가 본께로 넘어짐시로 허리가 다친 것 같은디, 고려당에 침쟁이라도 불러서 봐 달라고 혀라. 일단 아랫목에 불 따뜻하게 넣어서 허리 좀 지지믄 더 나슬거여.”
그렇게 말하고서도 콩새 할머니는 아버지를 한참 이곳저곳 들여다봤다. 콩새 할머니가 집을 나설 때 정순이도 배웅하러 따라나섰다.
“할머니, 진짜로 고맙네요. 저 혼자서 아부지를 어찌케 해야 할지 몰라서 있었는디…”
콩새 할머니는 정순이를 잡아당겨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부르더니 누가 들을세라 조용히 속삭였다.
“느그 아부지, 아무래도 오래 사시긴 힘드시겄어야. 눈에 황달끼가 있고 배가 올챙이 만치로 부풀었고만.”
“그… 그게 뭔 말이 다요?”
“간이 썩은 거여, 간이. 쯧쯧… 아부지한테 잘해드려라. 엄니 오시믄 할미 집에 잔 들르라 혀. 알았지야?”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혀를 차며 돌아간 콩새 할머니.
정순이는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하얀 눈이 쌓인 마당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없으니 함박눈이 참 곱게도 내렸다. 이 마당을 드나든 사람은 여럿인데 눈은 이들의 발자국과 아버지가 쓰러졌던 자리마저도 벌써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일 년 중에서도 아주 잠깐 내리는 남쪽의 눈을 잠시 즐겨보려고 했던 것이 정순이에게 씻지 못할 죄가 되었다. 정순이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죄책감 때문에 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