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장 손 끝에 닿은 마음
눈이 폭폭 내리던 어느 날 덕철이 아저씨가 연순이 집에 찾아왔다. 전할 것이 있다며 연순이를 불러놓고는 위독한 아버지가 연순이를 계속 찾는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으며 연순이는 지척에 살건 만은 시집을 오니 친정과의 거리가 멀어져 버린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혹한 시집살이를 한 연순이였다. 친정을 오가는 것이 갈수록 더 어려웠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그럴수록 연순이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종복이었다. 지난 늦은 가을까지 종종 집을 비우던 종복이는 이제는 집과 가게를 비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에도 더 이상 연순이를 위한 것이 들리지 않았다. 그가 연순이를 바라보는 눈빛도 예전 같지 않았다. 한 번씩 달려들 때도 있었지만 허겁지겁 달려들던 지난날과는 달랐고 그래서 그들의 잠자리도 전보다 뜸해졌다.
‘우리 집 아저씨가 그럴 리가 없어.’
종복이의 사랑은 연순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명백한 진실이었다. 그걸 아는데도 왜인지 자꾸만 종복이의 눈빛이 차갑고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이유 모를 서늘함이 느껴지는 그의 눈빛 때문에 시댁의 모든 것이 감당할 수 없이 그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어머니, 저 아버지가 아프시다고 하셔서 친정에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요…”
연순이가 어렵게 시어머니에게 말을 꺼냈다.
“병든 사람 곁에 다니믄 부정탄다. 지금 그 집 귀신들이 들어 앉았는디 거길 간다고야? 뱃속에 복 들어올라믄 죽은 기운이랑은 안 섞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너무 암담해진 연순이는 눈물만 나왔다.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 일 수 있으니 물러설 수 없었다.
“아부지가… 저를 찾으신다하셔요. 얼마나 더 사실지도 모르는디…”
시어머니는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아픈 부모도 중요허지만 이제 너는 이집 사람이다. 여그서 낳을 자식이 니 앞가림이여. 그리 알고 부정 안타게 얼른 갔다 오니라. 갔다 와서는 그냥 들어오믄 안되는거 알지야? 소금 뿌리고 대문턱도 왼발로 넘어 들면 안 된다이. 부정한 기운 들이면 복 다 달아다니 명심하고”
연순이는 그렇게나 어렵게 허락을 받고서야 친정에 올 수 있었다.
“엄니- 연순이 왔어라.”
시집간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왠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친정에 들어서며 이제는 자신이 손님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연순이의 기척을 듣고 엄마가 안방에서 나왔다.
“오메메! 시부모님이랑 느이 신랑이나 챙길 것이지 여긴 왜 왔다냐!”
오랜만에 보는 딸이 반가우면서도 딸의 시집살이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결혼한 지 일 년이 되어가도록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그 시어머니가 애가 닳았다는 소문이 좁디좁은 바닥에서 엄마 귀에 안 들어가기가 더 어려웠다.
거기다가 그 노랭이 백 씨 할멈의 구박이 말도 못하다는 것도 함께 들었다. 연순이가 걱정돼 몇 번이나 찾아가고 싶었다. 그 집 앞까지 가서도 문을 두들기지 못했던 것은 딸 가진 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부지가 이렇게 안 좋으시믄 진작 말씀하셔야제! 왜 지가 덕철이 아저씨한테 그 소식을 들어야 한다요?”
서운해진 연순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지난번 창석이 일도 그렇고 집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연순이에게만 알리지 않은 것이 서운했다. 아버지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말을 안 했다니… 연순이가 이 집의 손님이 되어버린 것은 그녀 탓만은 아니었다.
“아그들은 다 어디 가고 엄니 혼자 집에 있소?”
연순이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서러움을 훔치며 고기며 김치며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꾸러미를 마루에 내려놓았다.
“창석이, 만석이는 인자 방학 끝나서 학교 갔제. 정순이랑 동석이는 그것들이 장사를 한다고 장에 갔어야.”
“창석이, 발은 좀 어쩐다요?”
“백 서방 덕분에 잘 나았제. 니 서방 아니었으면 절름발이 됐을 거라고 하드라. 뼈 맞추는 데를 그렇게 데리고 다니더니만 어깨랑 발목이랑도 딱 맞춰져서 인제는 학교 잘 다니고 있다. 느그 신랑 같은 사람 없은께 니가 잘 해라.”
“잘 하고 말고가 뭐가 있겄소? 애기가 안 생기고 있는디…”
연순이는 말끝을 흐렸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더 마음이 저릿했다. 지난봄 연순이 손을 잡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다, 잘될 것이다. 마음 편히 먹어라.”
엄마는 연순이의 등을 쓰다듬고 머리를 넘기며 쓰다듬었다. 단발로 잘랐던 연순이의 머리칼은 어느덧 어깨만큼이나 자라있었다. 엄마는 연순이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그 예쁘고 곱던 아이의 낯빛이 창백해진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아부지는 좀 어떠시오?”
“정신이 들었다가 나갔다가 한다.”
“덕철이 아저씨가… 아부지가 나를 자꾸 찾는다고 하시던디…”
“그러게나 말이다. 저 양반이 너한테 뭔 말이 하고 싶은가 너만 찾아 쌌더라. 왔은께 한번 들여다봐라.”
아버지가 저를 찾았다는 말에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수없이 원망하고 미워했던 아버지. 아버지가 당장에 사라져도 아무 감정도 못 느낄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을까.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반듯하게 누워 허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젊은 날의 그 윤이 다 사라졌다. 폭삭 늙어버려 노인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마주하자 말할 수 없는 먹먹함이 올라왔다.
“아부지, 연순이 왔어라. 아부지 큰 딸 연순이.”
아버지는 연순이의 목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연순이를 바라보았다.
“아따, 그렇게 연순이를 찾아 쌌드만. 큰 딸은 알아 보시겄소?”
따뜻한 물수건으로 얼굴이며 손을 닦아 주던 엄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힘겹게 손을 들어 연순이 쪽을 향해 까딱까딱 손짓했다. 연순이는 신호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 한 뼘 더 다가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여… 연순이. 내… 딸… 여…연순이…”
“네에, 연순이요. 아부지 닮아 이쁜 딸, 연순이. 왜 이러고 누워계시오. 얼른 인나서 장터 가서 노래도 부르고 하셔야제.”
아버지 손을 잡고 명랑하게 말한 연순이가 애써 웃었다.
“아비가 미… 미안하다. 그 집에 가면… 고생은 안 할것인께… 그…그랬던 건디, 니가… 그라고 운 것을 보니 모… 못 할 짓 했더라… 미… 미안하다. 여, 연순아… ”
저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던 한마디, 한마디가 아버지의 들숨과 날숨 사이로 쏟아졌다. 자꾸만 멀어지려는 정신을 붙잡으며 그는 온 힘을 짜내 딸에게 용서를 구했다.
애써 웃음 짓던 연순이는 아버지가 한숨, 한숨, 뱉어내는 말을 들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느새 그녀는 종복이와 결혼을 하던 그 결혼식장을 헤매고 있었다. 결혼식 내내 엉엉 울음을 쏟아버렸던 연순이. 그때, 자신을 바라봤던 여러 얼굴들 사이로 아버지의 얼굴이 지나갔다. 그때의 아버지 눈가가 붉어져 있던 것을 기어코 생각해 내고 말았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게 아버지라고 원망했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이렇게 용서를 구하며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게 했다. 연순이는 저 창자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슬픔을 멈추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이 따뜻했다. 손을 맞잡고 울다가 이내 그치고 아버지에게 웃어 보였다.
“아부지, 저 우리 집 아저씨가 지한테 엄청나게 잘해줘라. 연순이는 잘 살고 있는 께 내 걱정은 하지 마쇼. 아부지가 이리 좋은 데로 시집보내놓고 아들딸 낳고 잘사는 거 볼라믄 얼른 털고 일어나셔야 할 것 아니오.”
“그… 그래. 그래…”
힘겹게 대답하고 눈을 감는 아버지. 연순이는 감기는 아버지의 눈꺼풀 아래로 눈물이 주르륵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연순이의 인생에도 행복을 빌어주었던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은 외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에게 한 줌의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 시각, 정순이는 동석이와 생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엄마 없이 하는 생선 장사가 처음엔 서툴렀지만 이젠 좀 장사꾼 모양새가 났다. 옆에서 도와주는 장터 아줌마들의 도움이 컸다.
“저기 이쁜 아주머니~ 여기 고등어 겁나 맛나요! 제가 이것 먹고 이라고 잘생겼어라!”
“여기 잘생긴 아자씨~ 여기 병어가 살이 엄청 실하요!”
어딜 가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냇동생 동석이는 누나를 따라 장에 다니면서 시장의 인기스타가 되었다. 이제는 연순이가 호객하지 않아도 동석이가 목청 높여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았다. 밤톨이 마냥 자그마한 아이가 고운 목청을 높여 웃기는 말을 해대니 장을 오가는 사람의 지갑이 생선 좌판 앞에서 안 열리기가 어려웠다.
“저 집 아그는 하는 짓이 보통내기가 아니여브네.”
“저 집 아들 하나는 공부를 그라고 잘 한다드만, 막내는 재간둥이네!”
지나가는 사람마다 칭찬을 해대니 신이 난 아이는 개다리 춤도 추고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진도아리랑도 간드러지게 불렀다. 옆에서 생선을 팔던 정순이는 사람들이 칭찬할수록 더욱 자제가 안 되는 막냇동생의 끼에 당황하다가 아버지의 그 피가 어디를 갈까 싶어 그만두고 생선이나 더 열심히 팔았다.
오후가 되면 학교를 마친 만석이와 창석이가 들러 장사를 거들었다. 그렇게 넷이서 힘을 합해 이렇게 저렇게 부모님이 안 계신 자리를 메꾸고 또 메꿨다.
정신없이 생선을 손질하는데 어디선가로부터 또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요즘 정순이는 그 시선을 자주 느꼈다. 고개를 들어보니 오늘도 그 학생이었다. 정순이는 또 바보처럼 서 있는 그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도 손님이니 생선 한 마리라도 더 팔려면 잘 해줘야겠지, 표정을 고쳐 짓고 말을 건넸다.
“오늘도 고등어 드려요?”
“네…”
얼빠진 얼굴로 정순이를 보고 있던 학생이 겨우 대답했다.
“오늘도 한 손이죠?”
“네…”
고등어를 손질해서 비닐에 담고 거스름돈을 챙겨 건넸다.
“오늘은 거스름돈 꼭 챙겨가요. 잊지 말고. 이 집은 딱 받을 만큼만 받는 집이어라…”
“…이름이 뭐에요?”
학생은 거스름을 하나씩 건네받다 말고 물었다.
“고등어지, 이름이 또 있어요?”
“아, 아니… 그쪽, 이름”
정순이의 물음 하나에도 귓등까지 빨개져 버린 학생.
“아하― 내 이름? 여그를 어따가 소개 할라고요? 저는 이정순이에요. 이. 정. 순!”
학생은 정순이의 이름까지 듣고 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정순이는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우리 집 고등어가 그리 맛난가, 생각했다. 고등어 귀신이 그 집에 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더욱 바빠진 시장 한복판의 어수선한 시간 속에서 그 생각은 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 31장 그 겨울의 끝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정순이는 새벽에 일어나서 장사를 시작했고 동생들과 오후 장사도 했다. 장사를 마치면 집에 와서 아버지 옆을 지켰다.
아버지는 정신이 더욱 오락가락했다. 간간이 정신이 깨었을 때는 아이들을 알아보았는데 하나씩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고도 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입에서 처음 들어본 그 말로 아버지의 사랑을 처음 느껴 본 것 같았다.
고단한 하루였다. 쌀쌀했던 그날도 장사를 마친 정순이가 동생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그날은 골목에서부터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당에 들어서니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철렁, 심장이 내려앉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고 있었고, 엄마는 붉어진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기댈 수 없던 남편이었으나 아비를 잃은 아이들을 보니 더 가슴이 미어졌다.
정순이는 엄마와 눈길만 주고 받았을 뿐인데 아버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그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떠났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은 녹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엔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듯 떠나버렸다.
책임감 없는 아버지 밑에서 그간 겪었던 설움을 생각하면 눈물조차 아깝다 싶기도 하건만, 동네의 이름난 한량 이씨댁 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장례를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아버지의 장례가 있던 날 연순이는 친정에 가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니가 친정에 발 들일 처지가 아니다! 니가 지켜야 할 집은 여그여. 부정 타는 데 따라가서 낳을 복도 쫓아낼 일 있냐? 종복이만 가믄 되제.”
시어머니의 불같은 말이 연순이에게 떨어졌다. 친정이 지척이니 보낼 만도 하건만 ‘개고기를 잘못 먹어 다리 저는 아이를 낳아버린’ 시어머니에게 사돈의 장례는 그녀의 오래된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백 씨 집안에 들어왔으믄 인자 너는 이 집 귀신이 되는 것이여. 니는 백 씨 대를 이을 마음이나 먹어야제 날마다 치성을 드려도 모자랄 판에 죽은 귀신이 들끓는 곳을 간다고야? 그런디 가믄 들어올 복덩이도 뒤돌아서는 것이다. 종복이도 가고, 느그 시애비도 갈 것인께 너는 집 지키고 물이나 떠 놓고 기도혀라.”
혼인을 하고 나면 정해진 듯 임신을 해야 했고 아이가 들어서지 않으면 여자의 탓이 되었다. 여자의 몸은 대를 잇기 위한 그릇이었다. 임신을 준비하는 여자는 먹는 것부터 생각하는 것까지 몸가짐을 단정하게 관리해야 했다.
연순이는 결혼한 지 일 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아이 소식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그것이 내내 못마땅했다. 사돈의 장례였지만 더욱 완강해져 물러서지 않고 며느리를 몰아세웠다. 종복이도 두 사람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연순이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부엌 한 켠에 쪼그려 앉았다. 몸 하나 일으켜 세울 수 없을 만큼 절망스러웠다.
“연순아, 내가 니 몫까지 더 잘하고 올란께. 걱정 말고 따뜻하게 좀 누워 있어. 난중에 나랑 같이 아버님 한티 가자이.”
종복이는 검정 양복으로 갈아입은 뒤 말끔히 닦은 구두에 발을 넣었다. 고요한 집안에 발소리만 또각또각 울렸다. 연순이는 종복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눈물을 흘렸다.
‘시집와서 지 부모 장례도 못 가는 것이 말이 된 단가?’
부엌 한 켠이 자신의 자리가 되어버린 연순이는 그 구석에서 아버지를 기리며 한참을 울었다. 연순이 나름의 아버지를 위한 장례였다.
“장모님, 사위 왔습니다.”
장인어른의 임종 소식을 듣자마자 종복이가 달려왔다. 빈소가 된 집안에는 장모님과 어린 처남과 처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장모는 사위 앞에서 눈물을 닦고는 딸이 왔나, 종복이 뒤를 살펴보는 눈치였다.
“연순이는…”
종복이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제. 연순이는 애기를 가져야 할 몸인디 이런 데 오면 부정 탄다이. 잘했네. 잘혔어.”
애써 서운함을 감추며 사위의 등을 토닥거렸다.
장례 둘째 날 더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가는 길을 위로하고자 몰려들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한참을 울다가도 손님을 받아내며 그 사이에서 울기도, 웃기도 했다.
“이성철, 그 사람이 술이 원수라 그렇제, 원체 사람은 좋았제.”
“그라믄. 그 양반이 젊을 적, 우리 집이 불났을 때도 도와주고 그렸어.”
“소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했는디. 동네 잔칫집에서 창을 한번 시작하면 다들 모여서 목을 빼놓고는 듣고 그렸어.”
“아그들도 잘 크고 있으니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좋겄구만. 뭣이 급하다고 그리 서둘러 갔는가 몰러.”
음식 앞에 둘러앉아 고인의 생전을 추억하며 함께 울기도, 웃기도 하니 그 슬픔이 절반에서 그 절반으로 쪼개지고 나뉘었다.
“금옥아, 나 왔다. 장에 갔는디 옆에 사람들이 느그 집에 초상이 났다고 해서 와봤어야. 좋은 일로 왔으믄 더 좋았을 것인디 늘 찾아 와본다는 것이 어째 오늘이다.”
그때 누군가 연순이 엄마의 이름, 금옥이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 또래의 여자와 그의 아들로 보이는 학생이 인사했다. 그녀는 엄마의 어릴 적 친구, 한 동네에서 살붙이처럼 커온 동기, 귀녀였다. 엄마는 눈이 크게 떠져 이들을 반겼다.
“오메메! 귀녀야, 니가 뭔 일이냐! 니도 혼자서 아들 키우느라 고생 많았을 것인디 뭔 소리를 그라고 하냐.”
“우리가 어떤 사인디 금옥이 니가 참 궁금하고 보고자팠는디 나도 광주에서 여태껏 사느라고 볼일이 없었다야. 우리 집 아자씨 돌아가시고 유치 시댁에서 지내다 읍내로 나온 지는 얼마 안 되았어.”
여자는 그간의 세월을 간단하게 회고했다.
“나도 니 소식은 시장 나오는 느그 엄니 통해서 간간이 들었는디… 주렁주렁 달린 애새끼들 데리고 먹고 사니라 니를 들여다 보들 못했고만. 그간 고생 많았제? 옆에 총각은 아들이여? 그것이 벌써 이라고 커브렀냐?”
엄마는 귀녀의 옆에 선 학생을 보고 물었다.
“근께, 가는 시간은 잡을 수 없다고 벌써 시간이 그라고 되아 브렀다. 늙었제, 우리도. 여그가 내 아들이여. 김영호. 올해 열여덟 먹었으야. 딸도 하나 있었는디 젖먹이 일 때 죽어 브렀고… 복이 없어서 그런가 남은 것은 아들 하나뿐이다이. 인제 고등학교 2학년이여. 영호가 너다섯 정도 때 장에서 너 봤잖애. 많이 커브렀지?”
“그라네. 그때도 어린것이 여간 선비 같이로 점잖더만 의젓하게 잘 컸네.”
“영호야, 인사드려라. 알제? 엄니 어릴 적부터 친 형제간처럼 커온 금옥이 이모.”
여자는 아들을 앞세우며 인사시켰다.
“이모님, 안녕하세요.”
반듯하게 인사하는 앳된 소년은 홀어머니 밑에서도 반듯하게 자란 태가 났다.
“오냐. 영호가 느그 남편 눈을 닮았는가 겁나 영특해 보인다이.”
“그러냐? 공부도 제법 하긴 해. 목표는 서울대 법대여. 즈그 아부지가 일하다가 억울하게 돌아가신 것이 한이 되었는가 법관이 되고 싶다드라.”
귀녀는 겸손하게 말하며 아들을 대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참, 기특하구만. 너는 열 아들 안 부럽겄다. 가만있어봐. 우리 집 아그들도 인사 시켜야제. 야들아, 이리들 와봐라.”
정신없이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나르는데 엄마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인사드려라. 엄마 어릴적 친구, 귀녀 이모여. 엄마가 어릴 때 친 형제간처럼 지냈다는 이모. 기억나지야? 여그는 귀녀 이모 아들인디, 공부를 겁나 잘 한단다. 지금 열여덟이라네.”
엄마는 아이들에게 차분히 일러주었다. 심부름하느라 정신이 없던 아이들이 습관처럼 인사했다.
“어? 쩌 형아, 맨날 우리한테 고등어 사 간 그 형안디?”
동석이가 영호를 보고 아는 체했다. 그 소리에 정순이도 고개를 들어보았다가 장터에서 고등어를 거의 날마다 사러 왔던 단골을 알아보았다.
“어? 어어!”
그도 정순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정순이는 바본가 생각했던 단골과의 신기한 인연에 웃음이 났다. 영호도 정순이를 보고는 당황했는지 빨개진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했다.
“먹고 사느라 내가 바쁜께, 영호가 대신 장을 보거든. 요즘에 고등어를 자주 사왔는데 다행히 느그집서 사왔는갑다야. 말도 안 해줬는디 금옥이 이모를 알았구만! 영호야, 앞으로 여기 동생들 보면 니가 잘 챙겨야 쓴다. 알았지야?”
영호의 어머니는 아들의 옆구리를 툭 치며 일렀다.
“네, 네에…”
정순이는 그가 엄마의 단짝 친구, 귀녀 이모의 아들이라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언니는 있어도 오빠는 없었는데 덤으로 오빠가 생긴 기분이었다. 앞으로는 좀 어리숙해도 깐깐하게 굴지 말고 덤으로 오징어라도 넣어줘야겠네, 생각까지 하고서는 영호를 보고 생긋 웃었다.
영호는 정순이의 생긋거리는 얼굴을 멍하니 보다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종복이는 장인어른의 장례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상주 자리를 지켰다. 장례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고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정신을 마냥 놓고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종복이는 입관부터 시작하여 조문까지 차분하고 정성스럽게 예를 다해 치러냈다.
“연순이 엄마는 참말로 사위 하나는 잘 봐 브렀네. 어느 집 아들이라고 아부지한테 저라고 한단가. 사위가 아주 든든하고마이”
빈소 자리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묵묵히 장인어른의 마지막을 지키는 종복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다.
종복이는 주변 지인들을 동원하여 발인까지 부족함 없이 처리했다. 연순이가 시집갈 때만 해도 절름발이에게 팔려 간다고 수군댔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종복이를 두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래서였는지 큰 딸 연순이의 빈자리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던 장례였다.
삼일장이 모두 끝났다. 사람들과 함께 장지로 이동했다. ‘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 나오게 했던 사람과의 이별인데 그 모든 절차가 물 흐르듯 너무나 자연스러운 게 오히려 이상 했다. 마치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듯이, 그랬다. 그것이 정순이는 코끝이 시큰해질 만큼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언니라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삽으로 흙을 퍼 관 위로 뿌렸다. 뿌리면서 다시 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면서 그 옛날 아장아장 걷던 정순이가 아버지의 검지손가락을 쥐고 걷던 것이 한편의 그림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아버지는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정순이를 보고 분명 웃고 있었다. 아버지의 검지손가락이 꽉 찰 만큼 그때의 정순이 손은 작았는데 지금 정순이는 벌써 이렇게 컸고 아버지는 저 땅속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다시는 못 만날 존재가 된 아버지와 이별했다.
사람들과 함께 묘에 비석을 세우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 바람에는 먹먹한 수분이 흙냄새와 함께 담겨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아릿한 봄 냄새였다. 정순이 인생의 커다란 존재가 겨울과 함께 지나가고 어느덧 인생은 새로운 봄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정순이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