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그 겨울, 장터에서

by 라라

제 29장 그 겨울 장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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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장에 다녀온 엄마는 정순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콩새 할머니집에 다녀오고 나서는 더 안색이 안 좋았다.


다음날, 고려당 침쟁이 할아버지가 와서 진맥하고 아버지가 넘어진 자리며 눈과 배를 들여다보았다. 눈길에서 미끄러진 아버지의 허약한 엉덩이는 골절되었다. 안 그래도 거동이 어렵던 아버지는 더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골절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간경화였다. 아버지의 간은 상할 대로 상해서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버지의 눈과 얼굴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노래졌다. 배는 더욱 부풀어가 숨을 쉬기 어려웠고 시도 때도 없이 요가 새어 나와 아버지가 누운 자리에는 헝겊을 두껍게 깔아 두어야 했다.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잠에 빠져있다가도 한 번씩 꿈을 꾸듯 언니를 찾았다.


“연순아… 미안하다… 아, 아비가 미안하다…”


“아버지, 저 정순이어라. 언니 아니고 정순이!”


“… 연순아, 다 내 잘못이다… 내, 내 잘못…”


아버지는 정신을 잃을 때가 많았다. 정순이 보고 연순이를 찾았고 또 내내 미안하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도 했다. 아버지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집으로 찾아왔다.


“연순이 아부지, 나 왔소! 나 누군지 알아봐?”


“…….”


아버지는 술과 노래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했다. 평소였다면 그 훤한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눌 아버지이건만 번번이 정신을 놓아버리는 아버지의 눈길은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정순아, 마음 준비 단단히 해라.”


아버지를 들여다본 덕철이 아저씨가 정순이에게 말했다. 정순이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에게 술을 사다 줬던, 그러고 나서 하고 말았던 그 생각이 저주처럼 아버지에게 닿아버린 것 같은 죄책감이 올라왔다.


‘하나님, 저희 아버지 좀 살려주세요. 제가 다 잘 못했어요. ’


정순이는 아버지에게 맞을 때도 학교에 가고 싶을 때도 안 했던 기도를 처음으로 했다. 야학을 갈 때 보았던 그 십자가를 생각하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밥을 먹을 때, 잠을 잘 때,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기도 하고 또 했다. 아버지를 다시 살게 해달라고, 그렇게만 해주시면, 다시는 그런 못된 마음을 먹지 않겠다고.


아버지의 건강이 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자 엄마는 장사를 나가지 않았다. 지지리 남편 복도 없는데 자식새끼들은 줄줄이 사탕이라 여태껏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남은 정도 없을 것 같은 엄마. 하지만 그런 남편이라도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게 지켜주고 싶었을까.


엄마는 아버지 곁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며 병수발을 들었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 정순이 마음이 좀 놓였다. 아버지가 더 오래 이 집에 머무를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정순이는 엄마를 대신해 장터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니, 오늘은 지가 나가서 개기 팔께라.”


정순이는 리어카에 짐을 싣고 엄마의 앞주머니를 차고 말했다. 그때, 엄마의 눈에는 아기를 봐야 했던 열한 살의 정순이가 겹쳐 보였다.


“뭐단디 너가 그 고생을 할라고 그라냐? 가서 팔믄 얼마나 판다고. 추운디 고생 말고 집에 있어라이.”


이 아이는 왜 이렇게 짐을 나누어지려고 할까. 한 편으로는 기특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지가 엄니 옆에서 생선 판 것만 해도 몇 년인디! 제대로 잘 팔란께 걱정마슈. 오늘은 자리만 살피고 올께라.”


정순이는 엄마의 걱정을 살짝이 물리치며 길을 나섰다. 정순이가 일어서자 그녀를 지키는 꼬마 병정 동석이도 누런 콧물을 들이키며 같이 일어났다. 한창 개구진 동석이는 설만 지나면 일곱 살이었다. 정순이 누나는 동석이의 여섯 살 인생에서 엄마보다 더 가까웠다. 무거운 공기만 흐르는 그 집에서 누나가 없이 남겨지는 것은 본능처럼 싫었다.


“누나! 내가 뒤에서 밀어줄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리어카를 미는 힘이 제법 셌다. 장터에 도착해서 포장 비닐을 열고 좌판을 정비했다. 며칠 엄마 손이 안 간 자리는 차가운 기운이 맴도는 것 같았다. 호호 입김을 불며 자리에 물을 뿌리는데 어느샌가 정순이 옆으로 상인 아줌마들이 몰려들었다.


“아부지는 좀 어떠신다냐?”


“정신이 들었다, 안 들었다 하셔요…”


“쯧쯧쯧… 아직도 젊은 양반인디, 어짜쓰끄나이. 엄니는?”


“엄니는 아부지 옆에서 계속 수발들고 있제라.”


“연순이도 부잣집으로 시집보냈고 느그들도 이라고 이쁘게 다 잘 크고 있는디. 인자 그 염병 같은 고생은 그만 해도 되것구만. 사람 일이 맘대로 안 되는 갑다야… 쯧쯧. 엄니도 집에서 잘 보살펴 드려라…”


“네…”


어머니의 생선 장사 세월만 이십여 년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은 온갖 풍파를 함께 버텨온 아주머니들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안타까워했다. 정순이는 담담하게 대답하고 좌판에 생선을 종류별로 올려 장사를 준비했다.


옆에는 기어코 따라나선 동석이가 꼬마 수족처럼 착 달라붙어 있었다. 설 대목이 다가오니 시장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많았다.


“여그 갈치가 겁나게 실하요!”

“여그 갈치가 겁나게 실하요!”


“여그 고등어가 엄청 싸요, 싸!”

“여그 고등어가 엄청 싸요, 싸!”


동석이는 누나 옆에 나란히 앉아 누나가 하는 소리를 고대로 따라 했다. 줄줄 흐르는 콧물을 훌쩍이며 저도 돕는다고 부산스러운 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았다. 그곳에서 왕방울만 한 눈을 굴리면서 귀티가 흐르는 동석이는 인기 만점이었다.


“정순아, 이리 와서 밥 묵자!”


시장이 좀 한산해진 오후가 되자 상인 아줌마들이 보리밥을 비비면서 한쪽으로 자리를 만들어 정순이와 동석이를 불렀다. 어른들도 만만치 않은 것이 장사였다. 생선 장사 경력직이었던 정순이임에도 엄마 없이 해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어려울 때일수록 더 따뜻해지는 이곳의 인심은 정순이를 혼자 있게 하지 않았다.


갖은 나물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비빈 보리밥에서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한 입씩 떠먹는 것이 밥인지, 정인지 모르겠다. 시장 아줌마들과 비빔밥을 나눠 먹으며 웃을 일이 없던 정순이의 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 장흥시장에 생선이란 생선은 동석이가 다 팔아븐 것 같다야!”


“애기가 벌써 목청이 좋은 것을 본께 영락없이 즈그 아부지 판박이구만.”


같이 밥을 먹던 아줌마들이 좀 전까지 보여주었던 동석이의 잔망스러운 호객 행위를 두고 한마디씩 했다. 어딜 가서든 제 밥그릇은 챙겨 먹을 아이 동석이. 그 말을 들은 동석이는 저가 뭐라도 제대로 해낸 듯 한지 기가 살아 밥을 먹다 말고 통통 뛰어다녔다.


“아유, 저 귀연것! 느그 엄니가 너를 안 낳았으면 어짜쓸뻔 했냐이. 그제?”


사람들은 동석이를 귀여워했고 그 모습에 정순이 마음도 푸근해졌다. 동석이의 대단한 활약으로 생선은 접시 위에 올려두기 무섭게 동이 났다. 생선을 팔면서 정순이는 혹한 추위에 손등이 부르트고 볼이 얼얼해지고 허리가 아팠지만 그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엄마가 저 대신 아버지 곁을 오랫동안 지키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양심이 있다면 여태껏 남편 잘못 만나 고생만 엄마에게 미안해서라도 힘을 내고 일어나길 바랐다.


나무 상자에 들어있는 생선을 접시 위로 올려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정순이는 어딘가로부터 쏘여오는 눈길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 눈길은 검정 교복을 입은 소년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뭣이 필요하믄 말을 하제, 뭔 말을 안 하고 쳐다 보고만 있을까?’


정순이는 어디에서 본 듯도 하다 생각했다가 물끄러미 보고만 있는 소년이 답답했다.


“저기요! 뭣이 필요 하단가요? 갈치요? 고등어요?”


“… 아, 아니…”


갑자기 쏘듯 묻자 당황한 소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뭣이 필요한지도 모르믄 바보 아닌가? 어찌케 학교는 다닌단가?’


정순이는 동네 바보도 다니는 게 고등학교구나, 마음대로 생각해 버렸다. 신경 끄고 생선 한 마리라도 더 팔아야지 싶어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저어…”


소년은 그제야 필요한 것을 말해 볼 모양이었다.


“네? 얼른 말해요. 여그 다들 바쁜 사람들 인께”


“… 저, 혹시 별빛 야학 다니지 않아요?”


‘야학’이라는 말에 정순이는 그를 올려다봤다. 아버지가 넘어지고 야학에 못 나가게 된 지가 한 달이 넘어가던 중이었다. 벌써 그곳 사람들을 잊어버렸을 리는 없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야학이 왜요?”


“아, 내… 내가 본 것 같아서요.”


정순이는 다시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하다 갑자기 답답해졌다.


‘나를 본 게 어쨌단 말이여. 답답하네이. 안 살거면 그냥 얼른 가제이.’


할 일이 태산인데 무턱대고 야학에서 본 것 같다고 말하고는 어물쩍거리는 소년에게 정순이는 짜증이 밀려왔다.


“근디, 나는 그쪽을 잘 모르겠고 여기는 생선 파는 곳이거든요? 살 거 없으면 그냥 지나가 주세요.”


그 짜증은 정순이 입에서 퉁명스러움으로 나왔다. 그 말에 그제야 소년은 정순이 주변에 펼쳐져 있는 생선을 훑어보았다.


“아하… 고등어, 고등어 한 손만 주세요.”


진작에 저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아, 생각하며 비닐봉지에 고등어를 담아 건넸다. 거스름돈까지 챙겨주려는 찰나, 소년은 그것을 받지도 않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 버렸다. 정순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소년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곧 바보 같은 소년은 싹, 지워 버렸다.


한 편, 살 생각도 없었던 고등어를 사서 잰걸음으로 걷던 영호는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귓등까지 빨개졌다. 누가 봤다면 이 겨울에 단풍을 그의 얼굴에서 구경해야겠다고 했을 것이다.


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던 그녀는 골목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던 이상하게 자꾸 눈길을 갔던 소녀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 이끌린 듯 별빛 야학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게 되었다. 하굣길을 늘 기대하게 했던 그 길목에서 요 얼마간 마주칠 수 없었다. 길이 엇갈렸을까 싶어 그곳을 돌고 또 돌았었는데 시장에서 만날 줄이야.


소년은 쿵, 쿵, 더욱 요동치는 심장을 달래며 오늘은 참 운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