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열흘간 잘 쉬고 갑니다

오만- 제벨 샴스, 니즈와, 그리고 작별

by 소울메이트

*왜인지 동영상 업로드가 되지 않아 이번편에서 원래 동영상으로 올리려던 부분은 우선 영상캡쳐사진으로 올리고 끝에 '(동)'이라고 표시했습니다. 추후에 문제가 해결되면 동영상으로 재업로드 하겠습니다.


** 동영상 문제가 해결되어 업로드 정상적으로 하였습니다!




오만여행에서 우리의 렌트카는 제값 이상을 했다. 도로에서는 차의 역할을, 차박을 할 땐 숙소 역할을, 그리고 때로는 식사를 하는 공간으로도 쓰였으니 말이다. 또한 제벨 샴스(아랍어로 태양의 산이라는 뜻)에 오를 때에도 먼지 날리는 오르막 돌길을 웬만한 사륜구동차 못지 않게 잘 올라갔으니 아주 장하다.

때론 우리 셋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했던 만능 렌트카


제벨 샴스 가는 길에 본 산 위의 집들과 그 아래의 농지


제벨 샴스








이스마일은 쑥스럽게 꼭 이런 걸 시킨다.




제벨 샴스는 꽤 높아서 올라가면 기온이 서늘하게 변한다. 산의 가장자리에 서서 움푹움푹 패인 바위산의 깊은 협곡을 바라보고 있으면, 낭떠러지 사이로 빠르게 불어오는 공기의 시원한 흐름이 느껴진다. 고소공포가 약간 있는 나는 협곡을 보고 있자니 오금이 저려와 속으로 몇번이나 비명을 질렀는지 모른다. 그에 반해 남편은 바위 끝에 턱턱 잘도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다. 아마도 남편은 전생에 고공비행을 예사로 하던 독수리가 아니었을까.



산에서 내려가려는데 염소 몇 마리를 마주쳤다. 가지고 있던 대추야자의 씨를 빼서 몇개 줬더니 잘 받아 먹는다. 귀여워서 좀 쓰다듬어 보려고 했는데 내손에 대추야자가 더이상 없는 걸 보고는 홱 돌아 저쪽으로 가버린다. 똑똑한 녀석..






저녁에는 니즈와로 돌아왔다. 건물마다 환한 등이 밝혀진 니즈와의 올드타운 어느 루프탑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갑자기 골목이 소란스러워 루프탑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백명의 아이들이 목소리를 맞춰 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행진하고 있었다. 라마단을 맞아 어린 친구들을 위한 행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에게 하얀 선물상자도 나눠주고 있었다. 전통 꼬까옷을 차려입고 전통 모자를 쓰고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모두가 행복해보였다. 골목은 아이들이 장난치며 노는 웃음 소리로 가득찼다.





아이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 된 니즈와


우리도 나눠주는 선물상자를 받았다. 안에는 맛난 간식이 들어 있었다. 남편은 아이처럼 신이 났다.



오만을 여행하면서 마음 불편할 일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것이기도 했다. 누구 하나 불행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것. 이 넓은 세상에서 누군가는 웃을 일이 좀처럼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뻔히 알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만은 더럽고 치사한 현실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는 것. 이 때문에 오만은 마치 신기루처럼 눈 앞에 나타난 천국의 환상같아 보였다.


어떤 아이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명품매장을 누비는데 불과 몇미터 떨어진 빈촌에 사는 다른 아이는 빨개진 손으로 음식점 손님들이 먹고 난 그릇을 찬물에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이 여행 중 마주해야만 하는 괴로운 순간이었다. 또 즐겁게 여행을 하다가도 어떤 날은 폭격에 맞아 죄없는 어린 목숨들이 희생당했다는 뉴스를 접하고서 갑자기 우울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여행 중 '세상은 그래도 따뜻하구나. 아직 살만 하구나.' 하고 느꼈던 날들 만큼 무력감에 고개 숙였던 날들도 적지 않았다.

니즈와의 밤골목을 채운 아이들의 환한 웃음꽃을 보며 지구 곳곳에서 신음하는 어린 생명들에게도 같은 풍요와 행복이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돗자리를 펴고 다과를 즐기는 사람들





다 마신 커피잔에 비행기가 둥실 떠올랐다. 내일이면 이스마일도 비행기를 타고 모로코로 떠난다.


니즈와의 한밤을 비추던 달빛


이스마일과의 오만 탐방기를 마치고 무스카트로 돌아왔다. 서로가 진심으로 만족스러웠던 동행이었다. 이스마일은 이 다음에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싶다는 우리의 말에 괜찮으면 본인도 따라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 역시 대환영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다시 만나기로 하고서 이스마일은 가족들과 라마단을 보내기 위해 모로코로 돌아갔다. 며칠 뒤에 그에게서 연락이 오길, 어젯밤에 꿈속에서 우리가 오만에서처럼 또 한번 셋이 여행을 하고 있었더란다. 꿈에도 나올 정도면 정말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우리도 종종 그가 보고싶다. 빠른 시일 안에 모로코에서 다시 만나길.


제벨 샴스에서 셋이 함께



무스카트에서 우릴 재워주었던 카우치서핑 친구 WJ는 오만에 수년째 거주 중인 중국사람이었다.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다시 무스카트로 돌아왔을 때에도 그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시 갔을 땐 다른 카우치서퍼들도 있었는데 모두 이란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모르타자와 키미아는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신혼부부였고, 무스타파는 독일에서 의사가 되려고 준비중이라 독일어 시험을 치르러 무스카트에 왔다고 한다.

왼쪽부터 나, 남편, 모르타자와 키미아, 무스타파, 그리고 WJ


우린 여섯이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졌다. 들어보니 이란 친구들은 세명 다 아직 오만을 둘러보지 않았다고 했다. 마침 렌트카 대여기간이 하루 더 남았던 우리는, 원한다면 다른 도시에 데려가줄테니 함께 여행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친구들은 매우 반가워하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시간이 넉넉하진 않아서 다 갈 수는 없고, 니즈와랑 와디 샵 중에 한 군데만 골라서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디가 더 좋아?"
우린 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이스마일과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친구들은 두 군데 다 멋있다며 고민하다가 자연을 볼 수 있는 와디 샵으로 결정했다. 또한 차 렌트비용을 본인들이 부담할테니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해서 무스카트도 함께 여행하자고 했다. 그리하여 어쩌다가 두번째로 와디 샵에 가게 되었다. 가는 길에는 비마 싱크홀에도 들르기로 했다.


다음날엔 무스카트 먼저 같이 다녔다. 이미 갔던 곳들도 있었고 친구들이 찾은 새로운 장소들도 있었다. 두번째 가는 곳들도 여럿이서 다시 찾으니 더 재미있었고, 여러명이 각자 가고 싶었던 곳들을 찾아 다니느라 지루한 줄을 몰랐다. 모르타자와 키미아가 찾은 어느 바닷가는 리조트에 속한 프라이빗 비치여서 원래는 입장이 안되는데, 어느 직원분께 바다만 잠시 보고 나올 수 있겠냐고 부탁드렸더니 선선히 문을 열어 주셨다. 그밖에 있는 줄도 몰랐던 수산시장에도 구들 덕에 들어가보고, 야시장이 열린 밤거리를 같이 산책하기도 했다. 이프타르(breakfast)로는 친구들이 WJ의 집에서 이란 음식도 만들어주어 맛있게 먹었다.

술탄 카부스 대 모스크의 회랑


술탄 카부스 대 모스크 안에서 기도 시간에 맞춰 아단을 부르는 모아띤. 모아띤은 모스크에서 아단을 노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무스카트의 어느 리조트 안에서


리조트에 딸린 해변


Qantab beach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모르타자와 키미아의 뒷모습


위의 사진이 마음에 든다며 키미아가 우리도 찍어 주었다.


매우 깨끗했던 무트라 수산시장


오만 술탄의 궁전 중 하나인 '알 알람 궁전'


어느 뷰 포인트에서 본 무스카트 해변


Ghubrah beach park


밤에 두개의 달처럼 둥글게 빛나던 두개의 돔이 인상적이었던 무함마드 알 아민 모스크


무트라 비치의 '라마단 무바락('복된 라마단 되세요'라는 의미)'


Al Mouj 해변가의 번화가를 걷는 사람들


멋진 거리 공연


이란에서 먹는 음식. 향신료로 요리한 쌀밥에 감자튀김과 구운 토마토와 캔참치를 곁들여 먹는다. 평범하지 않은 조합인데 맛이 있었다.


그 다음날엔 아침 일찍 서둘러 비마 싱크홀과 와디 샵을 보러 갔다. 한번 다녀온 곳이라 우리가 가이드가 된 듯이 친구들을 순조롭게 이끌어 줄 수 있었다. 두번째 갔을 땐 날씨가 더욱 맑아서 물도 더 깨끗해보였다. 수영을 좋아하는 무스타파가 특히 즐거워했다.

비마 싱크홀


싱크홀에서 수영 중인 남편과 무스타파


남편과 무스타파는 둘 다 물을 좋아해 죽이 척척 맞았다.


와디 샵의 동굴로 이어지는 작은 틈. 어떻게 딱 저만한 틈이 생겼는지 다시 보아도 경이롭다.


무스카트로 돌아오는 길의 해넘이


WJ은 영어 스피치 모임에서 활동중이었다. 괜찮다면 저녁에 모임에 놀러오라고 WJ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우리는 와디샵에서 돌아와 스피치 모임 장소에 갔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할 WJ을 응원해주러 간 거였는데 알고보니 WJ은 수년간 활동한 시니어 참가자라 다른 참가자들의 발표를 듣고 평가를 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모임 중간에 즉석 주제로 자유롭게 스피치를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구경꾼으로 간 거라 남들이 하는 거만 조용히 보고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자기도 해보겠다며 손을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인데 남편은 천연덕스럽게 떨지도 않고 스피치를 했다.
"그 다음으로 해보고 싶으신 분 계실까요?"
진행자의 물음에 이번엔 남편이 나의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남편의 돌발행동에 속으로 경악했지만 이미 모두들 기대에 찬 눈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앞에 나갔다. 덜덜 떨면서 스피치를 마친 나는 이따 집에 가면 남편의 등짝부터 한대 갈겨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근데 모임의 끝에 오늘의 베스트 발표자를 뽑는 시간에 내 이름이 불린 것이 아닌가! 고맙게도 같이 간 이란 친구들과 남편이 모두 투표지에 내 이름을 적어 내준 덕분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앞에 나가 트로피를 들고 사진도 찍었다. 별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져서 남편의 등짝은 때리지 않기로 했다.


WJ의 스피치 모임에서


WJ이 그날 저녁식사로 만들어 준 중국식 국수


오만에서는 렌트카를 반납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친절을 경험했다. 반납 장소에서 렌트카 주인분과 만났는데 이제 어디로 가냐고 물으시기에 공항에 간다고 말씀드리자 직접 태워다 주겠다고 하시는 거다. 렌트카도 저렴하게 빌린데다 공항 배웅까지 받다니 너무 감사했다. 이러면 자꾸만 더 머물고 싶어지는데..

렌트카 주인분과 함께 공항에서


오만은 이제껏 다닌 나라들 중 가장 떠나기 힘들었던 나라다. 몸과 마음이 완전하게 이완된 상태로 보낸 지난 열흘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완벽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눌러앉아서 몇 주 더 푹 쉬고 싶다'는 마음이 진심으로 들었다.

그러나 항상 쉽고 편하기만 하면 그게 어디 여행이던가. 돌아보면 여행의 묘미는 언제나 역경에서 나오고, 가장 힘들었던 날들이 가장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곤 하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떠나는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날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또 다른 세계에 발도장을 찍으러 가보기로 한다.


다음 나라는 다녀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지 않은 여행 난이도에 혀를 내두르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기묘한 매력을 가졌다는 나라. 바로 인도다.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단전에 기를 모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우린 지금 마치 자석의 한 극단에서 저 반대편의 다른 극단으로 동하는 기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