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와디 바니 칼리드, 니즈와, 그리고 사막
남편과 둘이서만 다닐 때는 같이 사진을 찍고 싶을 땐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마음에 들 때도 있었지만 우리가 의도한 그대로 찍히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스마일은 신기하게도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구도를 정확히 알고 그대로 찍어내곤 했다. 그와 셋이 다니면서는 사진이 잘 찍혔을까 확인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 도로 위에 오만 스타일의 게이트가 있어 잠시 멈추었다. 지나는 차도 별로 없고 주위에 아무도 없어 이스마일이 아니었다면 아래와 같은 사진은 찍을 수 없었을 거다.
오만의 국토는 80% 가량이 사막이다. 이 때문에 사막에서 낙타 타기, 사막에서의 캠핑 등 투어가 보편적이다. 나는 태어나 사막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사하라의 일부가 있는 나라인 모로코 출신 남편과 이스마일에게 사막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스마일은 사하라가 고향이기까지 했다. 나 역시도 나중에 모로코 시댁 방문 겸 해서 언제든 사막을 보러가면 됐지, 오만에서 사막을 굳이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우린 투어 말고 그냥 우리끼리 살짝 맛보기 사막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오만에선 길가다가 모래언덕이 보인다 싶은 지점에 차를 대고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사막이다.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 너무 깊이는 들어가지 않고 도로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까지만 들어가도 사막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다. 아래 사진도 아무데나 정차하고 한 5분 쯤 걸어 들어간 어느 사막인데, 사진으로만 보면 마치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따라 오만의 태양은 더 극성이라 사막에서 몇분 걸어다녔더니 발바닥이 지글지글 구워지는 기분이었다.
"안 되겠다. 이 근처에 와디 없어?"
몸을 식히는 덴 역시 수영이 최고다. 우린 가까운 와디가 없나 지도에서 찾다가 '와디 바니 칼리드(Wadi bani khalid)'라는 곳을 발견하여 곧장 그리로 향했다.
와디 바니 칼리드는 어제 갔던 와디 샵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하이킹을 하지 않아도 금방 계곡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구불구불한 바위 사이 계곡에서 오늘도 이가 딱딱 부딪히게 한기를 느낄 때까지 수영을 하며 놀았다. 물 속엔 닥터피쉬들이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손발에 있는 각질을 간질간질 야금야금 뜯어 먹는다. 수영이 끝나고 진짜 발가락 사이사이도 깨끗해지고 발뒤꿈치도 조금 보드라워져 있었다. 이렇게 우리와 공생관계인 줄만 알았던 닥터피쉬가 이스마일에겐 천적이었다.
"악!"
외마디 비명에 돌아보니 이스마일이 "물고기가 깨물었어!"라며 우리에게 팔뚝을 보여줬다. 새끼손톱에 긁힌 것 같은 모양의 작은 상처에서 정말로 피가 고여 있었다.
"흐익. 닥터피쉬가 깨물기도 하는구나."
그 뒤로도 물에서 나오기 전까지 이스마일만 몇번을 더 물렸다.
수영을 마치고 우린 '니즈와(Nizwa)'라는 도시에 갔다. 와디 샵과 비마 싱크홀에서 오만의 자연을 만끽했다면 니즈와에서는 역사가 담긴 건축물들이 있는 올드시티를 감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옥마을과 같은 곳이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거리를 걸으며 아라비안나이트 속의 등장인물이 된 기분을 한껏 느껴보는 시간이다.
"오늘은 사막에서 이프타르(breakfast) 하는 거 어때?"
"그거 좋지!"
우린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준비해서 니즈와 근처의 사막을 찾아 나갔다. 조금 달리니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사막이 보여 주차를 하고 적당한 곳에 담요를 펴고 이프타르 상을 차렸다.
"으음 맛있겠다. 바닷가에서 이프타르는 해봤어도 사막에선 처음인데. 분위기 완전 최고야!"
때마침 사막에 석양이 비추어 황홀한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모래언덕에 걸린 해가 사라지기 전에 우린 이날의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해가 거의 저물고 이프타르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펴놓은 담요 위에서 음식을 먹으려고 보니 불어온 바람에 먹기도 전에 모래가 벌써 서걱서걱했다. 아쉽지만 모래 섞인 밥을 먹고 싶진 않았기에 우린 분위기를 포기하고 차 안으로 들어가 마음 편히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 찍어 준 사진들을 넘겨보는데 이스마일이 우릴 찍어준 한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태어나 처음 밟는 사막을 오만에서 살짝 맛보기로만 즐기려했다가 인생 사진을 건졌다.
"나 이거 프로필로 할래."
얼마간 건들지 않았던 메신저 배경을 아래의 사진으로 바꿨다. 아마 당분간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