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와디 샵
'와디(Wadi)'란 아랍어로 계곡을 뜻한다. 사막의 더위를 체감할 수 있는 오만이지만 곳곳에 와디들이 있어 살만하다. 여러 와디들 중 '와디 샵(Wadi shab 또는 Wadi ash shab)'이라는 계곡은 그 수정같은 물과 적당히 깊은 수심으로 수영하기 좋아서인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와디 샵에 가려면 삼사십분의 가벼운 하이킹을 먼저 하게 된다. 흙바닥이 아니라 바위를 밟으며 가야 하는데 이곳의 바위는 매우 미끌거려 낙상에 주의해야 한다. 카라치에서 이미 한번 미끄러져 다친 경험이 있었던 나는 발가락 끝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었다.
한여름은 아직 아닌데도 오만의 태양은 정수리가 뜨끈뜨끈해질만큼 강렬하다. 어서 저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질 즈음, 때 맞추어 수영을 할 수 있는 계곡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살짝 깊어졌다가 다시 얕아졌다가 하는 계곡물을 따라 수영을 하며 가야 한다. 계곡 옆으로 바위를 밟아가며 걸어갈 수도 있긴 한데 너무 미끄러워 그게 더 어렵다. 물은 아주 깊지 않고 조금씩 헤엄쳐 가면 쉴 수 있는 야트막한 곳들이 중간중간 나오기 때문에 나같은 수영 초보자도 가기 어렵지 않았다. 물살이 세지 않아 수영을 아예 못하더라도 튜브나 구명조끼를 끼고 살살 헤엄치며 충분히 갈 수 있다.
조심하면서 간다고 했는데도 도중에 바위에서 한번 미끄러져 넘어졌다.
"으악악!"
물에서 나와 바위를 디뎠는데 중심을 잃고 왼쪽 고관절로 꽈당하며 철푸덕 엎어지고 말았다.
"으으으.."
크게 다치지 않아 금방 일어섰지만 창피함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뒤쪽 바위에는 두명의 젊은 남성분들이 앉아서 동영상을 찍고 계셨는데 그 타이밍에 절묘하게도 내가 넘어져 그분들의 영상에 그 귀한 순간(?)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다가가서 이야기해보니 한국분들이셨다.
"혹시 괜찮으시면 저 넘어지는 영상 나중에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하하.."
"네네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SNS주소를 그분들께 알려드리고 다시 수영을 계속했다.
와디샵의 맨 끝에는 작은 동굴이 있다. 거기에 가려면 조금 먼 거리를 수영해서 간 다음 아주 좁은 틈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하이킹을 할 때부터 심해진 꼬리뼈 통증이 수영을 할수록 점점 심해져,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깝긴 하지만 마지막 관문은 포기하기로 했다. 수영 발차기를 할 때에 꼬리뼈에 그리 큰 자극이 가해지는 줄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난 여기서 쉬고 있을게. 잘 다녀와!"
그렇게 남편과 이스마일만 마지막 코스로 향했다. 앞서서 내가 넘어지는 순간을 우연히 포착해주셨던 한국인 두 분도 함께였다.
20여 분이 지나고 남편과 이스마일이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어땠어?"
"엄청 나! 여긴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 그래서 같이 가려고 데리러 왔어."
남편은 맨 끝에 있는 동굴이 그렇게 멋있다며 나를 데려가려고 했다.
"근데 나 엉덩이 진짜 너무 아픈데.. 수영할 수 있을까?"
"그럴 줄 알고 이걸 빌려 왔지."
남편이 손에 들고 있던 무엇을 나에게 건넸다.
"튜브?! 어디서 났어?"
"아까 그 한국분들이 빌려주셨어."
아까 만난 한국분들이 위팔에 끼는 튜브를 갖고 계셨는데 남편이 그걸 눈여겨 보았다가 빌려왔다는 것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분들은 기꺼이 빌려주셨고, 조금 뒤에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다시 만나 튜브를 돌려드리기로 했다.
와디샵 끝의 동굴은 남편 말마따나 안 봤으면 후회할 만 했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이듯이 사람 머리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좁은 바위 틈을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동굴이 나타난다. 이 비밀스러운 장소가 와디샵의 화룡점정이었다.
나는 튜브를 끼고도 저 틈을 통과하기가 어렵던데 남편은 동영상을 찍기 위해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서 다른 한손만으로 잘도 수영을 했다. 이만큼 수영을 잘 하는 줄 몰랐는데, 오늘 다시 봤다.
동굴 안의 작은 폭포에는 밧줄이 매달려 있어서 점프를 하고 싶은 사람은 줄을 잡고 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시원하게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나는 통증 때문에 저기 오르는 건 힘들었다. 그래도 남편 덕분에 동굴 안까지 들어와 보았으니 이미 만족스러웠다.
와디샵을 되돌아 나가는 길에 튜브를 돌려드리려 한국분들을 찾았는데, 처음 만났던 장소에도 안 계시고 입구까지 나가는 동안 어디서도 뵐 수가 없었다. 연락처를 드릴 때 그분들 것도 받아 두었어야 하는데 우리 것만 드리는 바람에 먼저 연락을 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넘어지는 동영상은 안 받아도 되지만, 튜브를 돌려드리고 감사 인사도 꼭 드리고 싶은데, 오만을 떠나온지 한참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직 소식을 받지 못했다.
혹여나 이 글을 보시게 된다면 어디 계시는지 꼭 알려주시길.. 튜브 감사히 정말 잘 썼습니다. 잘 씻어서 보관 중입니다.
오늘은 수르(Sur)라는 도시에서 1박을 한다. 등산과 수영 후에 먹는 이프타르(breakfast)는 평소보다 훨씬 달다. 든든히 밥을 먹고 수르의 해안 산책로를 셋이 걸어다녔다. 해변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평상에 물과 먹거리를 두고 야외 이프타르를 즐기는 가족들, 보드게임을 하시는 어른들을 지나쳐 천천히 걸으면 꼭 한두번은 "이것 좀 드시라"며 과일이나 물을 건네는 손길을 만난다. 걷기만 해도 두 손이 무거워지는 신기한 나라 오만에 오늘도 조금 더 정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