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로코 친구와 함께하는 오만 여행

오만- 무스카트

by 소울메이트

라마단 흘째. 라호르에서부터 금식을 한 채로 비행기를 타고 파키스탄 남부의 도시 '카라치'의 공항에 도착했 때가 오후 6시 경. 30분만 지나면 사를 할 수 있다(보통 라마단은 한달 간 매일 오전 5시부터 오후 6시나 6시반까지 금식을 한다). 문제는 입국심사가 끝나고 수하물을 찾을 때까지 30분은 족히 걸릴텐데 그동안 금식이 풀리면 당장 먹을 게 없다는 것이었다. 배고파 죽겠는데 입국장에서 나갈 때까지 언제 기다리나~ 하면서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승객들이 내리면서 상자를 하나씩 받아간다. 무엇인가 하고 우리도 받아보니 바로 이프타르(아랍어로 breakfast) 도시락이었다. 대부분 금식중일 승객들을 위해 항공사에서 준비한 것이었다. 파란 상자 속에는 대추야자, 주스, 샌드위치, 바나나, 사모사(튀긴 만두같은 중앙/남아시아의 간식) 등이 정성스레 포장되어 들어 있었다. 파키스탄의 Serene 항공, 그 섬세함에 감동했다!

Serene 항공에서 나눠 준 이프타르 도시락


파키스탄 카라치에 온 것은 '오만'으로 가기 전 경유를 위해서였다. 원래 파키스탄에서 와가보더를 통해 인도로 가고 싶었지만 인도 종이비자를 받는 것을 포기하는 육로 이동이 불가능해졌다(전자비자로는 인도 육로 입국 불가). 그래서 인도로 가는 항공편을 검색했더니 파키스탄과 인접국임에도 두 나라 간 관계 때문인지 너무도 비쌌다. 그렇게 파키스탄발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찾다가 인도가 아닌 오만행을 결정하였다. 카라치에서 무스카트로 가는 비행기였다.


이 때문에 계획에 없었던 카라치에 3일간 머물게 되었는데 이곳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만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카라치에서 우릴 받아 준 카우치서핑 친구네 집에는 가파른 계단이 있었는데 첫날 거길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꼬리뼈로 네다섯개의 계단을 통통통 엉덩방아 찧어버렸던 것이다. 태어나 꼬리뼈를 다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눈에서 불이 번쩍 나고 수도꼭지 튼 것처럼 자동으로 눈물이 나왔다. 다친 직후엔 일어 서지도 혼자 힘으로 걷지도 못하겠길래 빼도 박도 못하게 이건 골절이구나 싶었지만,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놀랍게도 뼈는 괜찮다고 하였다. 그 뒤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꼬박 쉬었더니 카라치를 떠나는 날엔 약간 어기적거리더라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카라치는 현지인들도 꺼릴 정도로 치안이 나쁜 도시이기에 꼬리뼈를 다쳐 집에만 있어야 했던 이 불행이 결과적으론 다행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만은 대다수의 여행객들에게 그리 익숙한 국가는 아닐 것이다. 정세가 안정적인 편이라 뉴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고, 관광으로도 아주 유명한 국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여행하기에 매우 좋은 나라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늘상 일어나는 소매치기로부터 방심할 수 없었고, 남미에서는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려 매순간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서 다녔고, 중앙아시아에서는 비교적 맘편히 다녔지만 아제르바이잔에서 신발을 도둑맞았고, 바로 전 나라였던 파키스탄에선 테러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랬던 우리가 오만에선 지금까지 다닌 어느 나라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지극한 편안함을 만끽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치안을 가진 나라들 중 하나인 오만은,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이곳과 닮아있으려나 싶을 정도로 평화롭고 고요하고 풍요로웠다.

무스카트의 해변


야자수 그늘 아래서 명상에 잠긴 사람


여유롭고 풍족한 아랍국가라고 하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등이 떠오른다. 카타르와 쿠웨이트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산유국의 유함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재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다. 사우디는 국고가 넉한 나라임에도 메카의 골목길에서 만난 구걸하는 아이들과 깡마른 노숙인들의 모습에서 빈부격차가 여실히 느껴졌.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눈이 부시게 화려했으나 개인적으로 도시라 하면 '활기참' 보다는 '혼잡함'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시골친화적(?) 인간으로서 그다지 정이 가는 곳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 오만은 달랐다. 주변의 다른 아랍국가들 비해 경제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국가재산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잘 아는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달까. 오만의 모든 구석을 다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행하는 동안에 걸인을 본 적이 없고, 도시부터 시골까지 관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된 땅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가지는 사치스럽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럽게 꾸며졌으며, 전형적 아랍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도 갖추어 '아라비안 나이트'를 상상하며 방문한 관광객들의 기대까지 만족시킨다.

알리 무사 모스크. 오만의 건물들은 대체로 이런 색감과 형태를 띤다.


16세기 포르투갈에 점령 당했을 당시 지어진 알 잘라리 요새


오만의 전통 검이 가운데에 그려진 오만 국가의 문장


무트라 해변. 무스카트에서 산책하기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항구가 있는 바다를 감상하며 걷다가 줄지어 선 음식점에서 식사도 하고 시장에서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다.


무트라 해변의 산을 비추는 노을

나라 관리 한번 똑부러지게 한다는 감탄이 나오게 하는 오만에서 한 가지 단점을 찾자면 아마 대중교통 이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다니지 않는 것만 못하게 드문드문 정차하곤 해서, 사서 고생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무스카트 시내를 버스로 다니는 사람은 없다. 스 외에 다른 대중교통 대안이 없기에 택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통 10분쯤 타면 2~3 오만리얄이 나오는데 1오만리얄은 3달러에 가까운 큰 돈이다.

그렇기에 오만 여행자들에게 렌트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할 수 있다. 싸게 잘 빌리면 1일 8리얄 정도로 대여가 가능하다. 우리도 일주일간 렌트카를 타고 다녔는데 오만은 산유국이라 그런지 기름값이 비교적 저렴하여 차 빌린 값이 아깝지 않았다.

무스카트에 온 첫날 공항에서 '이스마일'이라는 모로코 청년을 우연히 만났다. 이스마일은 혼자 6개월 간 아시아 곳곳을 여행중이었고 오만을 끝으로 모로코에 돌아가 가족들과 라마단을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럼 무스카트에만 있다가 바로 모로코로 가는 거야?"

"응. 내일 모레 비행기표 끊어 놨어."

"그렇구나. 더 같이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네."

이스마일도 우리처럼 카우치서핑을 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저녁에 카우치서핑으로 알게 된 오만 현지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이스마일까지 다 같이 만났다. 대화 중 이스마일이 내일 모레 오만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무스카트에만 잠깐 있다 가기엔 오만에 온 시간이 아깝다'며 모두가 입을 모아 했다.

이스마일은 이에 솔깃하였는지 정말로 마음을 바꿨다. 수수료도 마다않고 단번에 항공권 날짜까지 변경한 그는 우리와 동행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물론 환영이지!"

서로에 대해 특별한 기대 없이 즉흥적이고 담백하게도 우린 한팀이 되었다. 긍정 에너지 가득한 그와의 동행이 우리의 오만 여행에 한층 더 활기를 불어넣어 주리란 걸 알지 못했을 때다.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금세 어깨동무하는 사이가 된 남편과 이스마일


이스마일과 함께 무트라 해변에 앉아


해 넘어가는 방파제


곳곳이 정원처럼 꾸며진 무스카트의 도로 풍경


다음 날, 본격 오만 탐방을 위해 우리와 이스마일은 렌트카에 올랐다. 운전을 도맡아 줄 남편과 조수석에서 말동무 역할을 맡은 이스마일, 그리고 뒷좌석에서 아픈 꼬리뼈를 달래가며 도넛방석에 앉아 탱자탱자 노는 나. 세 사람 오만의 동부 해변을 따라 달리며 만들어갈 5일 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무스카트를 벗어나기 전에 먼저 '술탄 카부스 대 모스크'를 방문했다. 2001년에 완공된 젊은 나이의 모스크는 오만 최대의 규모이며 아색으로 빛나는 우아한 멋을 자랑한다. 내부엔 궁전을 방불케하는 샹들리에가 정교한 문양이 그려진 돔의 가운데에 매달려 천장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술탄 카부스 대 모스크 들어가는 길


모스크 내부


이제 고속도로를 타고 무스카트를 나와 첫 목적지인 '비마 싱크홀'로 향한다. 굴처럼 안으로 파인 지형 속에 물이 들어찬 모습의 이곳은 오만 사람들 사이에선 순전 우스갯소리로 오래 전 운석이 충돌하여 형성된 대형 구멍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물이 맑고 잔잔하여 수영하기에 좋다. 우리도 이 무더위를 좀 날려보고자 싱크홀을 향해 더욱 속도를 올렸다. 천국 같은 오만도 푹푹 찌는 더위만 보면 천국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물 한모금도 못 마시는 라마단 금식시간에는 더위만한 적도 없다.


오만의 흔한 도로변


비마 싱크홀로 가는 길에 있던 sira 해변. 싱크홀에 비해 유명하진 않지만 잠깐 들러보았다.


오만의 도로는 잘 포장되어 요철이나 끊긴 곳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도로변의 산들 역시 낮은 고도와 부드러운 능선이 오만이라는 나라의 기복없이 둥글둥글한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닦인 도로는 우리를 금방 비마 싱크홀에 데려다 주었다.

"와아 물이다!"

사실 싱크홀을 보자 마자 멋지다는 생각 보다는 '시원하겠다. 얼른 뛰어 들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 셋은 말그대로 허겁지겁 수영복으로 갈아입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풍덩 물에 들어갔다.

"으아 시원해. 살 것 같드아아.."

차가운 물에 화채 속 얼음마냥 동동 떠 있으니 식과 더위로 누적된 갈증이 날아가버렸다.

저 계단을 따라 싱크홀로 내려간다.


비마 싱크홀


수영이 끝나고 곧 금식시간이 종료될 참이었지만 주변에 음식점은 보이지 않고 간식거리도 깜빡 챙겨오질 못해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일단 가장 가까운 마을인 '티위(Tiwi)'로 이동해서 음식점이든 마트든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차를 달리다가 한 작은 모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오? 저기 들어가서 한번 여쭤볼까?"

모스크 중에는 라마단 기간에 방문자들이 요청하면 음식을 나눠주는 곳도 있다. 당장 너무 배가 고팠기에 급한대로 우린 모스크에 들어갔다. 이제 막 이프타르(breakfast) 상차림을 펴고 계시던 모스크 관계자분들은 리낌 없이 우릴 맞아주셨다. 대추야자, 우유, 과일, 참치샐러드 등을 나누어 먹고 나갈 땐 생수까지 챙겨주셔서 가지고 나왔다. 처음 만난 행인일지라도 귀하게 대접하는 것은 이슬람의 문화이지만 이곳 오만은 이슬람국들 중에서도 성심을 다하는 손님맞이 문화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다.

모스크에서의 이프타르


아무런 연고 없는 외딴 모스크에서 급한 허기를 해결한 우리는 30분 즈음을 더 달려 티위에 도착했다. 은 항구 밖에는 이렇다 할 관광요소가 없는 티위이지만 의외로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이 꽤 있었다. 나중에 보니 바로 이곳이 '와디 샵(Wadi shab 또는 Wadi ash shab)'이라는 계곡으로 가는 길목이라 관광객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늦은 밤 부랴부랴 우리도 숙소를 구하러 이곳저곳 검색해서 방값을 물어보았다. 오만은 앞서 다녀온 나라들에 비해 숙소가 비싸다. 이스마일도 물가가 저렴한 인도에 있다가 오만으로 와서 비싸진 생활비에 아직 적응이 덜 된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에누리를 시도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 부담스러운 가격은 또 아니라 그냥 아무데나 묵을까 싶었다. 그 때 남편이 제안했다.

"우리 차박할까?"

맞다. 우리에겐 차가 있었지. 게다가 오만은 아무데나 널브러져 자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걱정되어 도움을 주려고 한다면 모를까 누가 해코지할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안전한 나라였다. 이런데서 차박을 해보지 또 어디서 해보겠는가. 돈도 굳고 일석이조다.

"좋아. 난 찬성."

그럼 이스마일은? 사실 그의 의견이 중요했다. 나와 남편이야 서로 예의 차릴 것 없는 사이지만 이스마일은 무리 친구라도 우리식대로 따를 것을 강요해선 안되니까. 그때 이스마일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도 찬성!"

이땐 그의 눈이 왜 반짝이며 빛났는지 몰랐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알게 된 건데, 이스마일은 이런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격식 안 차리고, 아무데서나 자고, 아무데서나 먹고, 자유인처럼. 6개월 동안 혼자 여행하면서 여러 동행들을 만나왔지만 이렇게 취향이 잘 맞는 동행은 우리가 처음이었다며, 나중에 헤어질 때는 이 다음에 꼭 다시 만나 어딘가 함께 여행을 하자고도 했다. 우리의 가끔은 남루하고 조금은 고생스럽기도 한 여행 스타일이 그와 잘 맞았다니 기쁘면서도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진짜 있구나."

"쟤는 우리보다 더해."

이스마일과 다니는 동안 세 번의 차박을 했다. 그 중 세 번 모두 이스마일은 의자에 머리를 대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어디다 던져 고 거적대기 하나만 덮어줘도 얘는 잘 자겠다 싶었다. 어쩜 이렇게나 수더분할까 싶었던 우리의 새 친구 이스마일. 그 덕에 우리도 마음이 편했고 셋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티위 항구의 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