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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가 손을 맞잡을 때

파키스탄- 와가보더

by 소울메이트

스카르두에서 라호르로 돌아갈 때에 탄 버스에서는 이제 구불길에 익숙할대로 익숙해졌는지 멀미도 나질 않았다. 편한 버스 좌석도 한몫했다. 외국인 대상 버스테러를 겪은 뒤로 외국인 승객은 받지 않는다고 들었던 파이잘무버(내가 아는 한 파키스탄 제일의 버스회사!)가 웬일인지 우리를 받아주었다. 게다가 승객도 우리 포함 총 여덟명 밖에 되지 않아 뽀송뽀송하고 널찍한 의자를 끝까지 눕혀 슬리핑 버스가 부럽지 않았다.


중간에 여러 번 인들을 태운 군용차가 보였다. 무슨 일이 있나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지만 라호르까지 별탈 없이 잘 갔다. 로부터 일주일쯤 뒤 우리가 파키스탄을 떠난 직후 발루치스탄 해방군의 열차납치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안타까운 뉴스 보았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라호르로 돌아가던 날부터 어떤 조짐이 보였기에 곳곳에 군력이 배치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호르 가는 길


치안과 관련하여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파키스탄이지만, 감사하게도 라호르에서의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이제 막 라마단이 시작되어 금식 중이던 어느 날, 친구 아지르가 우리를 부모님댁 가족식사 자리에 초대해주었다. 닭고기에 소고기에 샐러드에 비리야니(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주로 먹는 볶은 쌀 요리) 등등 한상이 가득 차려졌다.

"감사합니다. 다 너무 맛있어요. 특히 이건 정-말 맛있어요!"

내가 푹 빠져버린 음식은 다히 발라(Dahi ballah)였다. 야채, 콩류, 향신료 등을 달달한 요거트에 섞어 만들어 산뜻한 맛이 난다. 뇨끼나 수제비 비슷한 것도 들어가 씹는 맛도 있었다. 아지르의 누님이 만드셨다는 이 다히 발라에선 은은한 딸기향도 났다. 래 다히 발라 맛이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길거리에서 파는 걸 먹고는 아지르 누님의 요리실력이 대단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지르네 집에서 먹은 음식들


거하게 대접받은 식사엔 못 미치지만 우리도 아지르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한국의 소불고기 덮밥을 만들기 위해 정육점에 갔다. 고기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며 쿠당탕탕 하고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나가보니 비도 눈도 아닌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으악, 이 날씨에 우박이라니! 이거 자연재해 아니야?"

라호르는 북부 파키스탄과 달리 초여름의 날씨였기에 우박이 내리는 건 상도 못한 일이었다.

"아~ 원래 라호르에선 이때쯤 우박이 내려. 우박이 온다는 건 날씨가 아주 맑아질 거란 뜻이야."

아 그렇구나. 아지르의 말에 이제야 왜 사람들이 다들 놀라지도 않고 차분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지르의 친구가 하는 정육점


무섭게 쏟아지는 우박



정말이었다. 다음 날 거짓말처럼 라호르에 맑은 하늘이 열렸다. 세계적으로 공기질이 안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터라 매일 뿌연 하늘만 보다가 해가 반짝하고 얼굴을 내미니 반갑다. 날도 맑고 기분도 상쾌하게 오늘은 와가보더 국기하강식을 보러 간다. 친구 아지르, 나시르와 함께.


와가보더는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를 육로로 건너가는 메인 국경이자, 매일 국의 국기를 내리는 국기하강식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라호르 올드타운에 갈 때도 운전을 해주었던 나시르가 이번에도 고생해주기로 했다.

"나시르 진짜 너무너무 고마워. 근데 와가보더 가는 게 너희 둘 다 처음이라는 게 사실이야?"

"응 맞아."

"둘 다 라호르가 고향 아니야?"

"그렇지."

"근데 아직까지 한번도 거길 안 갔다고? 왜..?"

나시르와 아지르 모두 와가보더 국기하강식을 오늘 처음 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국기하강식을 진행하는 군대를 보는 것이 싫어서라고 한다. 키스탄 사람들이 정치에 별 관심 없이 군부독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도 깊은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나시르와 아지르처럼 군대를 쳐다보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까지 있는 것을 보면 조용히 쌓여가는 파키스탄 국민들의 분노가 느껴진다. 자유로이 목소리를 낼 수 없기에 지금은 다들 숨죽이고 있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국민들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꼭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오직 우리를 위해 국기하강식에 함께 가 주었다. 와가보더까지는 라호르에서 그리 멀지 않아 차로 30분을 달려 도착했다.


거대한 인도 국기


국기하강식 열리는 행사장에는 대형 인도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파키스탄 국기는 왜 없나 두리번거렸는데 지금이 하필 파키스탄측 행사장 보수공사 중이라 대형국기 게양을 못하고 있었다. 좌석도 흙먼지에 뒤덮여 인도측에 비해 당장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파키스탄 사람도 아닌데 괜한 오기가 피어올랐다.

"몇달 안에 보수가 끝나면 그때 보자 그래. 누구쪽이 더 멋진가!"

누가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파키스탄 편을 열성적으로 들고 있었다.

인도 국기만 있어 아쉽지만, 얼굴에 그린 파키스탄 국기라도 가리키며..


행사 시작 전 파키스탄 국기를 열심히 흔들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분이 있었다. 한 다리로 서 계셔서 부상당한 퇴역 군인이신가 했다. 친구에게 물으니 그건 아니고 무슨 사정인진 모르나 다리가 불편하신 일반 시민이신데 정부 허락으로 매일 행사장에서 국기를 흔들고 계신다고 한다.




검은 복장을 한 군인들이 모여 대열을 갖출 준비를 한다. 곧 행사가 시작될 모양이다. 인도쪽 군인들도 갈색의 비슷한 복장을 하고 준비중이다. 국기하강식에선 두 나라 경계선에 설치된 문이 열리는데 그 전에 두 나라 관객들의 기싸움이 벌어진다. 누가누가 더 큰 목소리로 응원소리를 내는지 심판도 없고 점수판도 없지만 은근한 대결이 벌어진다.

우리쪽 관객은 인도에 비해 쪽수가 매우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목청으로라도 이겨보려고 다함께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파키스탄! 진다바드(만세)!"

양국 군인들끼리도 경쟁이 붙는다. 양쪽 모두 큼직한 보폭으로 힘차게 행진하며 팔다리를 크게 저어 용맹한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드디어 문이 열렸다. 양국 관객들 사이에서 큰 함성이 터져나왔다.

열린 문으로 인도쪽과 파키스탄쪽에서 각각 한분씩의 군인이 대표로 나왔다. 두 사람은 대칭을 이루며 서로 겨루는 듯한 동작을 얼마간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다가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크게 흔들며 악수를 했다. 그 순간 관객들의 함성은 최고조를 찍었다.

"우와아아아!"

악수를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가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하며 곧 마음이 찡해졌다. 지금은 굳은 철문으로 갈려 있지만 한때는 두 나라가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왠지 남과 북으로 갈린 우리땅이 떠올라 눈도 살짝 붉어졌 것 같다. 국기하강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는데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촬영을 못해두어 아쉽다.



식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경계선에 게양된 두 나라의 국기를 천천히 하강시키는 퍼포먼스를 한다. 양쪽의 군대가 서서히 국기를 내린 다음 각자의 국기를 들고 서로 반대편으로 돌아 들어갈 때까지 관객들은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식은 일찍 끝났지만 이 짧은 시간을 위해 와가보더까지 온 것은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국기하강 퍼포먼스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흔치 않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한 두 나라의 국경이 하루에 30분, 비록 잠깐일지라도 개방되는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념의 차이를 빙자하여 타의로 갈라진 남북한처럼, 키스탄과 인도도 제 3국의 계략으로 인해 종교 갈이 싹트면서 갈라서게 된 것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현재 공식적으로 두 나라의 사이는 적대적인 상태이지만, 이런 사소한 행사일지라도 꾸준히 함께해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본다.

파키스탄과 인도 모두, 진다바드(만세)!

행사 후, 파키스탄 만세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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