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스카르두
라호르의 친구 아지르는 우리가 훈자보다도 스카르두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스카르두에선 일주일 지내면 얼추 다 둘러볼 수 있을 거야."
결국 추위에 지쳐 3박 4일만에 라호르로 도망쳤지만, 아지르의 말대로 우린 훈자 혹은 그보다 더 스카르두에 빠져들게 되었다.
훈자에서 스카르두로 가려면 미니버스를 타고 길깃발티스탄 주의 주도 길깃에 간 다음, 또 다른 미니버스를 타고 스카르두에 가야 한다.
길깃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숙소에서 훈자 버스터미널로 갈 때 우린 또 히치하이킹을 했다. 얼마 안 기다려 승용차 한 대가 멈춰섰다. 한 중년의 아저씨께서 운전하고 계셨다. 터미널까지 태워주시기로 하고 우린 감사히 얻어 탔다.
"버스타고 어디 가시게요?"
"길깃으로 갑니다."
"아, 그래요? 마침 저도 길깃에 가는데."
이런 우연이. 아저씨께선 길깃에 사는 큰딸과 사위에게 줄 것이 있어 가신다고 했다. 우린 기름값을 드리기로 하고 아저씨 차를 타고 길깃까지 가기로 했다. 미니버스랑 비슷한 값에 훨씬 흔들림도 적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저씨랑 말동무도 하면서 갈 수 있어 더 좋았다.
"훈자는 왜 장수마을이 된 거예요?" 내가 여쭈었다.
"여기 사람들은 여기서 나는 것들로만 음식을 해서 먹었거든요. 질 좋고 깨끗한 토종 것들만 먹으니 오래 살 밖에요. 근데 요즘엔 수입산이든 뭐든 다 들여와서 먹게 되면서 이젠 그다지 장수하지도 않아요."
"아~ 그렇군요."
남편은 평소 궁금했던 이슬람 관련한 것들을 이것저것 여쭤보았다. 이슬람 세계의 갈등은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갈등이라 불러도 될만큼 그 두 종파 간의 골이 깊다. 파키스탄 전체로 보면 수니파가 다수이나 훈자에선 시아파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우릴 태워주신 아저씨께서도 시아파 무슬림이셨다. 시아파라고 하면 미디어에서 보여지듯 매우 극단적으로 종교에 빠져 조금은 무서워 보이기까지 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남편은 종교나 종파에 상관없이 모두를 존중하는 사람이지만, 수니파 국가인 모로코에서 자라면서 아무래도 언론을 통해 시아파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자주 접하여 시아파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진 않았다고 한다.
"저는 시아파 사람들이 이렇게나 선량한 분들인 걸 파키스탄에 와 처음 알았어요." 남편이 말했다.
아저씨는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과거엔 우리도 수니파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싫어하고 봤는데, 요즘은 사람들 인식이 깨어나면서 다 같이 잘 지내고 있지요."
몇년 전만 해도 훈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칠라스'라는 어느 지역에 가면 입구에서 수니파 무장세력이 진을 치고 있다가 통행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수색했다고 한다.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여 시아파이면 총살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끔찍한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럴수가..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갖고 다니면요?"
"그래도 소용 없지요. 그들은 몸까지 확인했거든요. 우리 몸엔 흉터가 있으니까 그걸 보고 아는 거죠."
시아파 남성들은 '아셔라'라는 이슬람의 한 종교행사기간이 되면 칼을 들고 스스로 등을 내려치며 무리지어 걸어가는 의식을 한다. 이 때문에 등에 항상 흉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이고.. 아저씨께서도 아셔라 의식을 하세요?"
"네~ 그럼요."
"으악. 안 아프셔요?"
"아프긴 한데 그리 나쁘지도 않아요."
"저는 한번 보고 싶기도 해요." 남편이 말했다.
"윽. 저는 눈 뜨고는 못 봐요!" 나는 질색을 했다.
"허허허, 여자들은 직접 보면 우는 사람들도 많지요. 허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리시는 아저씨 얼굴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만 서로 이해하고 살면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걸. 인간은 참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저씨께선 길깃 버스정류장 안까지 우릴 태워주시고 스카르두행 티켓 값까지 확인해주신 다음 떠나셨다. 이제 스카르두로 가는 미니버스를 탈 차례다.
길깃에서 스카르두까지는 서너시간이 걸린다. 미니버스라 큰 버스보다는 흔들림이 적긴 했지만 오늘도 옆자리의 어린 남매가 부모님 품에 안겨 구토를 몇차례 하였다. 파키스탄 산지에서 토하지 않고 버스를 타기란 쉽지 않다..
스카르두는 훈자보다도 기온이 체감상 2~3도는 더 낮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크를 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경치에 우리는 이번에도 숙소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바이크를 3일간 빌렸다. 오늘 갈 곳은 '카추라' 라는 마을이다. 그곳에 있다는 두 개의 호수와 쏙 밸리(Sok Valley)라는 계곡을 보러 간다.
먼저 도착한 로우어(Lower) 카추라 호수는 가서 보니 '샹그릴라 리조트'에 속한 사유 호수로 들어가서 보려면 돈을 내야 했다. 그래서 그냥 옆의 언덕에 올라 내려다만 보았다.
언덕을 그대로 더 올라가면 Sok valley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은 여름이면 녹음이 지고 푸른 계곡물이 흘러 낙원같은 모습으로 변모한다. 지금은 한겨울이라 다소 무미건조한 풍경이었으나 그곳에 살고 있는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 시간이 즐거웠다.
바이크로 좀더 멀리 달리면 어퍼(Upper) 카추라 호수가 나온다. 평화로이 정박되어 있는 보트들, 잔잔한 물에 흰 꼬리를 만들며 달리는 제트스키, 호수 저편의 첩첩 산중에서 불어오는 춥지만 신선한 바람. 여름이었다면 저 수정같은 물에 단숨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호수 옆의 의자에 앉아 계신 현지인 아저씨께 호수물이 빙하에서 내려오냐고 여쭤봤더니 저 아래에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고 하셔서 놀라웠다. 지금은 호수의 수위가 낮지만 계절이 바뀌면 몇미터 위로도 껑충 올라온다고 한다.
어퍼 카추라 호수를 다 보고 계단을 올라 돌아가는데 계단의 한켠에 서 있는 의자가 눈에 띄었다. 한쪽 다리가 없는 의자이지만 내다 버리지 않고 계단과 돌로 괴어 오히려 특별한 의자로 탄생시킨 것이 누구의 생각인지 참 따뜻해서 찍어왔다. 내가 만약 사진작가라면 여기에 뭐라고 이름을 붙일까..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문득 떠오른 브런치북이 있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작가님의 깨알프로젝트였다.
https://brunch.co.kr/magazine/saseme2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것도 별것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작품이 되곤 한다. 아래 사진의 의자도 나름 내가 찾아낸 깨알같아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작명도 깨알같이 잘 하면 좋을텐데 쉽지 않아 공란으로 해둔다.
스카르두도 훈자처럼 살구가 유명하여 어딜가나 'apricot(살구), 맛좋은 apricot!'하면서 살구주스나 말린 살구 등을 파는 매점들이 자주 보인다. 호수를 보고 나오는 길에 작은 카페에서 살구주스 두 잔을 시켜 마셨다.
"으음~ 달다 달아."
살구 맛이야 먹은진 오래라도 기억하고 있긴 한데 이 주스는 유독 더 달다. 카페 사장님께 주스가 매우 진하고 달다고 말씀드리니, "생살구가 아니라 말린살구를 잼처럼 진하게 끓여내 그걸로 주스를 만들거든요."하셨다.
스카르두는 어딜가나 그림이다. 훈자보다 스카르두라는 아지르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했다. 두 곳 모두 숨막히게 아름답고, 설산의 풍경이 서로 닮아 있기도 하다. 차이점이라면 훈자보다 스카르두에서 조금 더 히말라야 산맥의 광활함이 피부에 와 닿았다고 할까.
훈자나 스카르두나 사람 좋은 걸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마을들이다. 분명 처음 본 얼굴들인데 마치 오랜 친구처럼, 그리웠던 가족처럼 반갑게 맞아준다.
여기 오기 전에 파키스탄 여행정보를 찾아보다가 파키스탄 전역을 여행한 한 외국인 여성이 만든 비디오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자국에서의 외로운 일상, 매마른 인간관계, 차가운 도시에서 매일같이 느끼는 경쟁의 압박감 등에 지쳐 파키스탄으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녀는 긴 시간 수없이 많은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고 파키스탄의 자연과 교감하였다. 영상은 말미에서 파키스탄을 떠나와 다시 어두운 집 안에 홀로 남았을 때 서럽게도 우는 그녀의 모습으로 마무리 되었다.
영상을 보고 마지막 파트에서 '그래, 파키스탄 사람들의 정이 그립다는 건 알겠지만 저 정도로 울다니 솔직히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직접 파키스탄을 경험해 본 후에는 그녀가 영상에서 보여준 감정들이 영 부풀려진 연기는 아니겠구나 깨달았다. 와서 지낸지 며칠 안된 우리도 이곳 사람들의 환한 미소를 마주하면 가슴 깊은 곳이 징하고 울리는데. 수개월을 이곳에서 살다가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무엇보다 그것이 내편 하나 없이 고독했던 일상이라면 오열을 할만큼 이곳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파키스탄은, 특히 파키스탄 북쪽의 산골마을은 인정에 고픈 현대인들이 마음을 든든하게 살찌워갈 쉼터라 하겠다. 기다리며 마시라고 작은 토기잔에 내어주는 차이 한잔, 사과 한봉지 위에 살짝 하나 더 얹어주는 과일장수 아저씨의 투박한 손, 여행자라 고단할텐데 오늘 우리집에 와서 저녁식사나 하고 가라는 호의, 길에서 만난 꼬마가 '웰컴'하고 웃으며 건네는 환영인사.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은 나의 손님' 이라는 한마디로 마치 당연한 듯 설명되어 버리는,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나라. 경치로 보아도 그 어느나라에 뒤지지 않게 뛰어났던 파키스탄 여행을 회상할 때, 정서적으로 느꼈던 행복감이 우선으로 떠오르고, 그 대단했던 자연경관은 '그래, 그것도 참 좋았지.'하며 덤처럼 딸려오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그네들의 넘치는 사랑이었다.
카추라 호수에서 숙소에 돌아와 꽁꽁 언 몸을 녹였다. 숙소 사장님이 주신 가스 히터 위에서 발바닥이 보들보들 풀어진다. 어느새 훈훈해진 방 안에 똑똑똑 노크 소리가 울리더니 사장님이 문을 빼꼼 여시고는 주전자 하나와 함께 들어오신다.
"어머, 이게 뭐예요?"
"이거 저희 지역의 특.산.품. 녹차예요. 가스불 위에 올리고 끓어오르면 컵에 담아 드셔보세요."
"아유.. 잘 마실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특산품'이라고 두세번 더 강조해 말씀하시며 뿌듯한 표정으로 방을 나가신 뒤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내일 어떻게 할까. 숙소 옮길거야?"
사실 여기 온 첫날, 방은 너무 춥고, 그에 비해 사장님이 주신 히터는 턱없이 작고, 욕실 온수는 사장님한테 말씀드리면 틀어주시지만 데워지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려서 '와 여기서는 못 지내겠다. 좀 비싸도 내일은 어디 다른 호텔 찾아보자.' 하고 남편에게 투덜댔었다. 근데 하루만에 그 마음이 사라졌다.
"아니 난 이 방 너무 마음에 들어. 여기서 쭉 있자."
"허허 갑자기?"
"응. 사장님이 좋으시잖아. 방도 이만하면 얼어 죽진 않겠고, 온수도 이 겨울에 이 시골에서, 나오는 것만도 감사하지."
신기한 일이었다. 수시로 방은 괜찮은지 물어봐주시고, 아침 저녁으로 녹차를 챙겨주시고, 온수는 이 계절엔 이게 최선이라 미안하다며 필요할 때마다 말만 하라는 사장님의 친절에, 어제와 똑같은 방이 오늘은 별 다섯개 호텔방으로 보이다니.
내일은 카추라 호수의 반대 방향으로 바이크를 달릴 예정이다. 스카르두 특.산.품. 녹차의 향긋함에 취해 주전자를 바닥까지 비우고서 우리는 내일의 라이딩을 위해 또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