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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르두에서 발견한 5성급 화장실

파키스탄- 스카르두

by 소울메이트

오늘도 스카르두의 일상은 장대한 산맥의 울타리 안에서 시작된다. 활기차게 아침을 여는 주민들의 이야깃소리, 너른 경기장에서 뛰노는 아이들, 저마다 팔것들을 소복하게 이고지고 나선 상인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여든 시장을 지나, 바이크를 타고 상쾌한 시골 공기를 마시며 달렸다. 우리는 시가르 (shigar)는 마을의 Blind lake, 이른바 눈 먼 호수라 불리는 곳으로 가고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물이 들어오는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Shaheen 경기장. 때론 전국적 규모의 축구, 크리켓, 폴로 등의 경기가 열리기도 한다.


스카르두에 열린 시장


어느 음식점의 벽에 붙은 세계지도


시가르로 가는 길에 만나는 설산의 풍경은 어제보다 한층 더 희고 선명하다. 밤새 산 위에 눈이 더욱 두텁게 쌓여 온 산이 하얀데다 날씨마저 먼지 하나 안 보이게 청명한 덕에 굽이굽이 패고 솟은 산맥의 골격이 손끝에 닿을 듯 성큼 다가와 있었다.



절반 쯤 가면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그걸 건너기 전에 작은 검문소를 지난다. 현지인은 그냥 통과이고 외국인 출입자만 기록하고 있었다. 혹시 시가르에 테러 같은 위험이 있어 그러나 싶어 여쭤보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고 외국인 출입시엔 항상 기록을 남긴다고 하셨다.

"별일 있어서 그런 거 아니니 걱정 마세요. 여기 이 중국인은 시가르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거의 매일 드나들어요. 오늘도 아침에 입장한 기록이 있네요."

경찰 아저씨께서 우리보다 앞서 이곳을 지난 한 중국사람의 이름을 명단에서 가리키며 말씀해주셨다.

"그렇군요. 한국 사람들도 많이 오나요?"

"그럼요. 엄청 많이 와요,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K2를 등산하러 온 여행객들이지요. 지금은 겨울이라 등산객이 없지만요."

역시 등산 진심인 한국인들이다. 언젠간 우리도 가족들과 날 좋을 때 스카르두에 와서 K2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검문소 도착


검문소에서 일하시던 경찰관님들과 함께. 우리 SNS까지 팔로우해 주셨다.


친절한 경찰관님들의 설명 덕에 안심하고 다시 바이크에 올랐다. 시가르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일분일초도 눈을 뗄 수 없을만큼 름다움을 더해간다. 하늘을 녹여낸 것 같은 강물이 흐르고, 가장자리도 보이지 않게 펼쳐진 평원의 저 끝에는 요동치는 듯한 산맥이 이어진다. 그 한 굽이 너머로 들어가면 또 다른 산이, 그 다음 굽이 너머엔 또 한겹의 산이, 그렇게 나무도 없이 만들어내는 울창한 산들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K2의 땅 시가르


돌산 위에 그려진 파키스탄 국기





머지 않아 Blind lake에 다다랐다. 겨울이라 수량이 줄어, 호수라기 보다 지금은 늪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사진으로 보던 그 모습은 아닐거라 예상을 하고 갔기에 실망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는 길에 이미 차고도 넘치록 경취를 즐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Blind lake

호수를 지나 시가르 마을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동네시장도 있고 음식점들과 카페들, 숙박시설들, 가르 요새 등이 있다. 우리가 간 때는 비수기 중의 비수기라 문을 연 카페는 없고, 관광객은 당연히 없었다. 시가르 요새는 우리의 관심 밖이라 들어가진 않았으나, 호텔과 겸하여 운영하는 곳이라 역사적 건축물에 관심이 있으신 여행객들은 요새 안에서 숙박을 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린 작은 음식점에 들어가 탄두리 빵에 소고기 카라히 (파키스탄식 양념고기. 치킨, 소고기, 양고기 등 다양.) 시켜 먹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한 사진


시가르를 거의 다 빠져나올 즈음 갑자기 남편에게 신호가 왔다. 급한 용무의 신호..!

"안 되겠다. 화장실 가야겠다."

마침 검문소를 지나던 중이라 경찰관님께 물어서 옆에 있는 화장실로 달렸다. 나는 밖에서 다렸고 남편은 잠시 뒤 상쾌해진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근데 남편이 나오다가 말고 좋은 걸 보여주겠다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화장실에 엄청난 게 있어! 기다려 봐. 내가 찍어올게."


화장실에 있던 풀스크린 TV..가 아니고 액자..도 아닌 창문


"우와, 이런 뷰가 화장실에 있어?"

"응! 그것도 딱 변기 앞에."

"이거 보느라고 평소보다 오래 걸렸고만?"

급히 찾아온 신호 덕분에 우연히도 스카르두의 5성급 화장실을 찾아버린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사장님이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셨다.

"오늘은 제가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 이것도 저희 특.산.품 이거든요."

아까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돌아오면 제가 드릴 게 있다'면서 배웅해주시길래 특산품 녹차를 끓여주시려나 생각만 하고 다녀왔는데, 사장님의 손에는 쁘게도 포장된 상자가 들려있었다.

"세상에. 너무 감사해서 어떡해요. 저희는 드릴 게 하나도 없는데.."

잠만 자러 왔다가 선물까지 잔뜩 받아간다. 나중에 열어 보니 스카르두 특.산.품, 말린 살구가 상자 안에 한가득 들어 있었다.



우리는 스카르두에서의 마지막 밤을 사장님과의 수다로 보냈다. 장님은 가족 사업으로 이 숙소를 운영중이라고 했다. 위로는 형이 한명 있는데 일본에서 일하고 있고, 사장님은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물론 이 호스텔 사업이 잘 풀리면 이걸 확장시켜나가는 게 최고이겠지만요. 그게 안된다면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어요."

"저희가 잘 풀리시라고 열심히 응원할게요!"

"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두 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희 둘 다 서른하나예요."

"네에? 두분 다 엄청 어려보이시네요. 특히 한국인은 진짜 나이를 모르겠어요."

"하하, 사장님도 어려보이시는데."

"아~ 제가 열일곱이서요. "

헉. 어려보인 건 사실이지만 미성년자이실 줄이야.. 열일곱의 나이에 호스텔을 운영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벌써 미래 계획을 탄탄히 세워가고 있는 스카르두의 젊은 사장님을 응원한다.

맨 왼쪽이 숙소 사장님


스카르두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한 곳을 더 소개하려고 한다.

마수르 바위(Marsur rock). 마치 디즈니 만화 '라이온 킹'에서 아기심바의 탄생을 하하던 바위처럼 생겼다. 길게 돌출된 바위의 끝에 앉으면 스카르두의 산지를 배경으로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듣기로 이곳에 가려면 편도 3시간 정도의 하이킹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린 스카르두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나서야 이 장소의 존재를 알게 되어 가지 못했지만, 독자님들 중 스카르두에 가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들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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