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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탐 Jun 08. 2023

래퍼들의 래퍼, 빈지노(Beenzino) 이야기

양평 시골 꼬맹이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0. 인트로



빈지노가 처음 힙합을 접한 건 초등학생 때였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8살 때 뉴질랜드로 건너가는데,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이 추천해 준 투팍과 비기의 음악이 시작이었다.


뉴질랜드에서의 시간은 힙합 외에도 그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뉴질랜드의 초등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디제잉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어요. 저녁 7시쯤이면 학교 강당에 모여 선생님과 함께 춤을 추고 노는 파티였는데, 제 눈에는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 F.ound Magazine, 2012


그렇게 뉴질랜드의 모습에 매료돼, 여기서 평생 살 거라고 생각했던 빈지노였다. 하지만 상황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문제는 서울이 아니고 양평이었다는 것. 음악을 좋아했던 빈지노에게 양평이라는 시골은 너무 답답한 공간이었다.


저는 당시에 좀 힘들기도 했어요. 도시의 삶을 동경하기도 했으니까요.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듣고 싶은 음악 CD나 같이 힙합 음악을 듣는 친구들이 많은 도시가 좋았죠..(중략).. 물론 양평에 있었던 시간이 제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인 것만은 분명해요 - 중앙일보, 2015



또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새로운 양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형이 생긴다. 보통 이런 가정환경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은 그로 인한 상처가 더 크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빈지노한테는 가정환경의 변화가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가정환경의 변화가 저에게 안 좋은 영향과 상처가 됐을 거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전 그로 인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친아버지와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면서 아버지의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새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남자다운 면이나 ‘진짜 멋’을요. 남자로서의 믿음직스러운 모습과 책임감 같은 것도 배웠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선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책임감을 알려준 새아버지의 영향이었어요. - F.ound Magazine, 2012


나의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나의 새아버지에 대한 나의 존경 - <If I die tomorrow> 中




앞서 말했듯 양평은 힙합, 음악의 꿈을 펼치기에는 너무 시골인 곳이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은 빈지노는 초 6 때 아버지하고 딜을 친다. 평일에 정해진 공부 시간을 다 채우면, 주말 동안은 서울에 있는 누나의 집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말이다.


양평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학교에서 나오면 논밭하고 산밖에 없었거든요. 너무 외로우니까 초딩 주제에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나가서 랩 하고 그렇게 놀았어요. 그때부터 진지해진 것 같아요. - 힙합LE,  2012


그리고 이때부터 힙합 동호회에 가입해서 주말만 되면 서울로 나가기 시작한다. 심지어 중 2 때는 처음으로 클럽도 가봤다고 하는데... 역시 크게 될 사람은 떡잎부터 다른가 보다.


이렇게 놀았으면 인간적으로 공부는 못해야 하지만, 지노 형님은 역시 클라스가 다르다.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했으니 말이다. "뜬금없이 웬 미술이냐?" 싶어서 말하자면, 사실 빈지노는 힙합보다 미술을 먼저 시작했다. 어머니가 유명한 서양화가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어머니가 작가 시니까 자연스럽게 미술을 하게 됐어요. 부모님이 두 분 다 바쁘다 보니 혼자 그림을 그리고, 뭔가 표현을 하는 거에 빠져지냈습니다. 친구들이랑 장난감으로 노는 것보다는, 그림이나 캐릭터를 그리고 ‘내 세상’에 되게 빠져있었어요. - 힙합엘이, 2012


금동원 / 색채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는 서양화가로 1995년 '아트 앤 워즈 멜버른' 최고작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빈지노의 가사는 하나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처럼 장면이 확 펼쳐진다.” - 허클베리피


그리고 미술은 빈지노가 래퍼로서 성공하는 데에 엄청난 기여를 한다. 빈지노의 음악은 일상적인 주제를 일상적이지 않게 풀어내고, 한 편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듯한 느낌 때문에 큰 호평을 받아왔다. 이런 그의 음악적 특징은 미술의 영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무의식적으로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이 가사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요. ‘그림자까지 그린다’라든가 그런 표현들이 제가 만약 그림을 안 그렸다면 나올 수 없었겠죠. - 월디페 인터뷰, 2012
미술은 저랑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예요. 저는 음악 하기 전까진 미술 아니면 아무것도 없었어요. 미술을 안 하겠다고 생각하면 남는 게 없는 거예요. 기본적인 예술가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나 끼라든지 그런 기본적인 건 미술에 기초한 것들이죠. - 힙합엘이, 2012



01. 초신성 루키의 등장



빈지노가 대학을 진학한 이유는 부모님한테 당당하게 '음악을 하겠다'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선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도 새아버지의 영향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선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대학만 가봐라 난 음악만 할 거야.’ - Found Magazine, 2012


그렇게 최고존엄 서울대에 입학도 했겠다, 원하던 대로 음악에만 빠져 지내던 빈지노였다. 하루는 여자친구가 '음악을 만들었으면 혼자만 듣지 말고 인터넷에도 좀 올려봐'라고 말하더란다. 그렇게 여자친구의 권유로 작업물을 디씨트라이브*에 올리는데.. 여기서 잭팟이 터진다.


*디씨트라이브 : 한국 힙합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 한국 힙합 초창기 개설된 사이트로 지드래곤, 사이먼 도미닉, 허클베리피 등이 활동했었다. 사실상 힙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가입했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대학교를 합격하고 이제 내 세상이다 하면서 녹음하다가, 하루는 여자친구가 작업물을 사이트에 올려보라고 해서 올렸어요. 리플 달리는 거 보면서 신기하다 하고 있는데 딱 그때 쌈디 형한테 만나자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 힙합엘이, 2012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쌈디의 위상은 대단했다. 이센스, 스윙스, 제이통 같은 래퍼들이 소속돼 있던 IK(Illest Konfusion) 크루의 수장이었기 때문.


그렇게 쌈디와의 만남 이후 빈지노는 IK 크루에 들어간다. 스승과 제자처럼 빈지노가 쌈디에게 작업물을 들려주면, 쌈디는 이걸 다른 래퍼들에게 들려주면서 '빈지노'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8년 8월에는 스윙스의 두 번째 믹스테잎(#1)에 피처링으로 참여한다. 빈지노가 처음으로 힙합 씬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G_VvsGVj0c&ab_channel=%ED%9D%94%ED%95%9C%EC%84%BC%EC%B6%A9%EC%9D%B4




'A Milli'를 시작으로 여러 트랙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면서 인지도를 쌓아오던 빈지노는 2009년. P'Skool의 정규 2집 [Daily Apartment]에 메인 래퍼로 참여한다. 


P'Skool 2nd Album [Daily Apartment]


원래는 쌈디를 [Daily Apartment]의 메인 래퍼로 기용하려고 했던 프라이머리였다. 하지만 스케줄 때문에 쌈디는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대신 빈지노를 추천한다. 고민하던 프라이머리도 '차라리 쌩신인을 쓰는 게 더 신선한 그림이 나오겠다' 싶어 쌈디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


당시 프라이머리는 가리온, 다이나믹 듀오, 쌈디, 이센스, 딥플로우 같은 래퍼들을 피처링으로 사용하는 거물 프로듀서였다. 


그에 비해서 빈지노는 이제 막 알려지고 있는 신인이었고 말이다. 두 번 다시는 안 올 수도 있는 기회였기에, 빈지노는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만 했다. 당연히 부담감도 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래의 인터뷰를 보면 당시 빈지노가 얼마나 심한 부담감을 느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화려한 데뷔작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부담도 많이 느꼈어요.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던 것 같아요. 부담감이 너무 커서, 가사도 잘 안 나오고 나 때문에 작업이 지연되고 미뤄지니까 또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다 보니까 제 랩이 그렇게 만족스럽게는 못 나왔어요. - 힙합엘이, 2012


빈지노는 인터뷰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다'라고 말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동안 씬에서 보지 못했던 플로우와 그루브를 갖고 등장한 루키의 등장에 많은 리스너들이 환호했다. 한순간에 빈지노가 씬에서 가장 핫한 슈퍼 루키로 급부상하는 순간이었다.





02. 빈지노의 청춘, 그리고 우리의 청춘. HOTCLIP & Jazzyfact



빈지노의 포텐을 일찌감치 알아본 쌈디는 '얘를 좀 더 키우고 싶다'라는 생각을 계속해왔던 것 같다. 


슈프림팀이 오버로 데뷔를 하면서 기념 콘서트를 열게 됐고, 쌈디는 빈지노를 게스트로 넣고 싶어 했다. 하지만 빈지노를 홀로 무대 위로 올리기엔, 빈지노는 너무 신인이었다. 무대 경험도 적었고 말이다. 


고민을 하던 쌈디는 당시 IK 크루원이었던 비트박스DG와 빈지노에게 '팀을 결성하면 어떻겠냐' 물어보곤, 둘을 무대에 올린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핫클립(HOTCLIP)'이다.


사이먼 형이 둘이 팀을 짜서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 DG형과 저는 스타일이 너무 달랐어요. 그땐 ‘아 해야 되나’ 좀 의심하면서 시작을 했어요. 근데 같이 준비하고, 공연하면서 서로 더 알게 되다 보니까 재밌어지고 그 뒤부터 같이 팀을 하게 됐죠. - 힙합엘이, 2012



그리고 2010년 6월 4일. 핫클립의 첫 음원 [HOTCLIP MIXTAPE VOL.1]이 발매된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빈지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었다. 핫클립에서의 느낀 점을 토대로 결성한 게 재지팩트였기 때문이다.




핫클립 결성 이후 무대에 오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빈지노는 생각했다. '더 잘하고 싶다', '더 인정받고 싶다', '내 색과 감성이 짙게 배어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빈지노 혼자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같이 해왔던 친구인 시미 트와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시미 트와이스(Shimmy Twice) : 재지팩트의 프로듀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어요. 저는 시미 옆 학교였는데, 시미가 회장으로 있던 힙합 동아리에 꼽사리 끼면서 친해졌죠 - 힙합플레이야, 2010



당시 한국에는 거의 전무했던 재즈힙합을 좋아했던 둘은, 시미가 비트를 보내주면 빈지노가 그 위에 랩을 얹는 식으로 작업을 같이 해왔었다. 그리고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똑같이 작업을 하던 어느 날, 'Sunday Move', 'Addicted 2' 같은 노래가 나왔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한 건 아니고. 그냥 친구라서 만든 비트 보내주고 그 위에 랩 하고 하다 보니까 ‘addicted 2’ 같은 곡이 나왔어요. 이런 스타일로 앨범을 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힙플, 2010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던 둘은 그렇게 재지팩트(Jazzyfact)를 결성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8HJTErUmU&ab_channel=%EA%B3%A0%EB%A7%89%EC%B0%B0%EC%B9%B5shutterear

Sunday Move


https://www.youtube.com/watch?v=N8emy8tfwlg&ab_channel=fridaymove

Addicted 2





그리고 2010년 10월. 정규 1집 [Lifes Like]를 발매한다.



우리만의 진정성이나 신선함에 초점을 맞췄어요. 우리만의 ‘영(Young)한 느낌’ 바이브를 주고 싶었어요. - Found magazine, 2012
그리고 저희가 고등학교 때 가졌던 꿈을 이룬 것에 대한 의미도 큰 것 같아요. 시미의 비트도 그렇고 제 랩이나 가사도 다른 래퍼들과는 확실히 차별화가 된 앨범이라 생각해요. 신선함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는 앨범입니다. 누구나 겪었던, 겪어봤을 만한 일에 대해 썼어요. - 힙합엘이, 2012

https://www.youtube.com/watch?v=bpW4M5f3_00&ab_channel=%EC%B9%99%EC%B4%89ChicChoc


20대의 청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Lifes Like]는 정말 신선했고, 차별화된 앨범이었다. 


HIPHOPPLAYA Awards
ROOKIE OF THE YEAR 2010 : Jazzyfact
FEATURING OF THE YEAR 2010 : Beenzino
FEATURING OF THE YEAR 2011 : Beenzino


발매와 동시에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낸 건 물론이고, 나온 지 10년도 더 지난 현시점에서도 [Lifes Like] 같은 앨범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Lifes Like]를 기점으로 빈지노는 더 이상 루키가 아닌, 씬에서 가장 핫한 래퍼로 자리 잡는다.




03. 2011 - 2012 : [24:26]



제대로 떡상한 빈지노를 붙잡기 위해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지는데... 밝혀진 것만 해도 저스트뮤직, 하이라이트 레코즈, 일리네어가 있다. 하나같이 다 어마어마한데, 더 놀라운 건 방탄소년단에서도 영입 제의가 왔었다는 것이다.


사실 재지팩트 활동하면서 이 분위기로 대중가요 시장에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내 노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좀 더 메인스트림화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가장 인상적인 곳이 있었어요. 유명한 작곡가 한 분이 그러더라고요. “턱 좀 깎으면 되겠네.” 그 말이 너무 징그러웠어요 - Found Magazine, 2012


언더 시절 어떤 프로듀서가 내게 그런 말했네
그와 함께 하면 어떤 일을 해도 모두 다 된대
마지막이 punch line
날더러 턱 좀 깎고 하면 되겠대
I don't need ur bullet proof *(bullet proof = 방탄)
그렇게 난 그의 소년이 되기를 거부했구 - <할렐루야> 中



최종적으로 빈지노가 선택한 곳은 일리네어였다. '일리네어가 가장 멋있게 느껴져서 선택했다'라고 밝혔는데, 도끼와 더콰이엇을 보면 사자처럼 혼자 다녀도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가? 빈지노는 그 멋을 본 것 같다.


콰이엇이나 도끼는 주관 있게 움직이는 게 가장 본받을 만한 점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섞이는 거를 되게 좋아하는데 이 사람들은 섞이는 걸 안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점이 전 되게 멋있는 것 같아요 - 힙합엘이, 2012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거였죠. - Found Magazine, 2012


더콰이엇, 도끼에 이어서 빈지노까지 추가된다? 이건 못 참지. 리스너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그 기대에 보답하듯 얼마 뒤에는 싱글 'Illionaire Way'를 발매하는데.. 역시. 일리네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7aNpILNcct4&ab_channel=Mokinopi





그렇게 든든한 레이블까지 얻은 빈지노는 2012년 7월 3일. 대망의 EP 1집 [24:26]를 발매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_5yBtVTvz-A&ab_channel=%EC%B9%99%EC%B4%89ChicChoc


바로 이 앨범을 기점으로 빈지노가 대중적으로도 떡상한다.


리드머 4/5 점
2013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 후보


앨범명인 24:26는 빈지노 자신의 24살부터 26살까지의 인생사를 의미한다.


첫 번째 솔로 앨범을 EP로 낸 건 아직 분명한 내 색깔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힙합은 미국에서 온 문화고 음악인데 전 아직 그걸 마스터 못했어요. 나만의 것을 계속해서 찾고 있는 중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서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이 어떤 건진 고민 안 하고 부담 없이 스물넷부터 스물여섯까지 느낀 감성들을 담았어요.  - Found Magazine, 2012


그래서일까? 대한민국의 20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노래가 많다.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새우는 대학생들을 위한 'Always Awake*',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어떨까? 상상한 'If I die tomorrow',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Aqua Man'처럼 말이다.


*그 노래를 쓰면서 많은 상상을 했었어. ‘미술 하는 애들은 밤에 과제하면서 들을 수 있겠구나’도 생각하고, 누구든 들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대학생을 염두하고 쓴 거 거든. 사실 밤을 많이 새우잖아 우리 애들. - 네이트, 2012



특히 온스테이지와 협업해서 촬영한 'Aqua Man - Onstage Live'는 빈지노 팬덤 형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일단 빈지노가 잘생기지 않았는가? 혹해서 들어왔다가, 빈지노의 음악에 그대로 빠지는 팬들이 많이 생겼었다. 


Aqua Man 뿐만 아니라 더콰이엇, 도끼가 참여한 'Profile'도 라이브 무대를 촬영했다.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 삼대장 같지 않은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빈지노의 실력에, 도끼와 더콰이엇이 더해진 'Profile'은 다가올 일리네어 시대를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2013 힙합플레이야 어워즈 올해의 곡 

1년 뒤인 2013년에는 선공개 싱글 'Dali, Van, Picasso'로 클라스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04. 2014 : [11:11] & [Up All Night]



그리고 2014년 5월 21일. 대망의 앨범. 일리네어의 처음이자 마지막 컴필 앨범 [11:11]이 발매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nA8V-Icj7c&ab_channel=1llionaireRecordsBrazil


한국 힙합의 판을 바꿨다고 말할 수 있는 앨범이지만, 사실 발매 당시에는 평이 좋지 않았다. 도끼와 더콰이엇의 표현력 부족, 본토 플로우 카피, 의미 없는 한영혼용 같은 것들이 주된 이유였다.


앨범 내내 반복되는 무분별한 한영혼용은 이들의 콘텐츠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고, 미국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과 한국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 사이에서 어떠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인지에 의문을 품게 한다. 평점 2.5/5- 리드머, 2012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빈지노만은 달랐으니...


빈지노가 이제는 레이블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희망이자 자산으로까지 보인다. 도끼와 콰이엇이 보여주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수준의 라이밍을 들려준다 - 리드머, 2014


평이 어땠든 간에, 이 앨범이 한국 힙합에 미친 파급효과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이전까지 붐뱁, 진정성, 성찰이 중심이었던 한국 힙합을 트랩, 머니스웩으로 바꿔놓았고 '연결고리'는 어딜 가던 흘러나오는 히트송이 되었다. 


또한 메이저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똥*쇼 하지 않고, 오로지 랩 하나만으로 성공을 거둔 일리네어는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현세대의 수많은 래퍼들이 이러한 일리네어의 모습을 보고 래퍼의 꿈을 키웠을 정도로 말이다.


[11:11] 발매 약 한 달 뒤에 방영된 쇼미 3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일리네어는 한국 힙합을 대표하는 레이블로 성장한다.


2014 힙합플레이야 어워즈 올해의 앨범 2위 [11:11]


여기에 힘입어 2014년에는 힙합플레이야 어워즈에서 [11:11]이 올해의 앨범 2위에 등극한다. 그와 동시에 빈지노는 언터처블 래퍼로 자리 잡는다.






[Lifes Like], [24:26] 그리고 [11:11]까지. 발매하는 족족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빈지노였기에,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치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대 속에서 발매된 게 EP 2집 [Up All Night]이다.


2nd EP, [Up All Night], 2014.07.16


https://www.youtube.com/watch?v=g36jM8DafvE&ab_channel=MichaelleBang


[11:11] 발매 후 약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에서 나온 [Up All Night]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대부분 '실망'이었다. 트랙도 다섯 곡밖에 안 됐고, [24:26]나 [11:11]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리드머 3/5
IZM 3/5


하지만 평론가나 헤비리스너들에게는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이는 [Up All Night]의 제작 배경, 그리고 컨셉과 연관 있다. [Up All Night]은 디자이너 브랜드 WOOYOUNGMI의 2014 파리 컬렉션 런웨이를 위한 노래였고, 컬렉션의 컨셉은 '자신감 넘치고 예술을 사랑하는 남자'였다.


앨범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빈지노는 컬렉션의 컨셉을 모티브 삼아 앨범을 제작했다. 자신감 넘치여 예술을 사랑하는 남자의 하루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완성도 있는 서사는, 그가 분명 이번 앨범의 컨셉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또한 긴장감을 점점 고조시키는, 기승전결 구조로 구성된 앨범의 사운드는 '런웨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음악 관계자들에게는 준수한 평가를 받은 것.



한편으로는 '빈지노가 자신의 색을 어느 정도 찾은 앨범이다'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솔로 앨범을 EP로 낸 건 아직 분명한 내 색깔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힙합은 미국에서 온 문화고 음악인데 전 아직 그걸 마스터 못했어요. 나만의 것을 계속해서 찾고 있는 중이죠. - Found Magazine, 2012


EP 1집 [24:26] 때만 해도 '나만의 색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하던 빈지노였다. [24:26]과 비교했을 때 [Up All Night]은 힙합이라고 보기에는 좀 더 미술적이다, 예술적이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가? 바로 이게 빈지노가 그토록 찾아왔던 자기만의 색인 것 같다. [Up All Night] 이후 발매한 첫 정규앨범 [12]까지 들어보면 말이다.



05. '2016 : [12]


1st Album, [12], 2016.05.31


https://www.youtube.com/watch?v=P9HLv8t97J4&ab_channel=Tiness


[Up All Night] 발매 2년 뒤인 2016년에 발매된 첫 정규앨범 [12]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과거의 [Lifes Like]나 [24:26], [11:11]과는 다르게 스타일이 확실하게 바뀌었다.


당연하게도 재지팩트 시절이나, [24:26] 시절의 랩이 더 좋았다는 반응도 많이 나왔다. 빈지노도 이런 반응들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인터뷰에 나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음악에 있어서 주는 ‘나’에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건 포기했습니다. 저는 계속 변합니다. 항상 새로운 제 모습에 감탄하고 그 재미로 음악을 하는 거예요. 예전과 같은 것이 나오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 IZM, 2016
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예술가로서 갈증이 너무 커요. 속박받으며 살아야 되고, 저를 구속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 셀레브, 2016


[12]를 발매했을 당시 빈지노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30대에 들어서는 순간 차원이 다른 압박을 받지 않는가? '번듯한 직장을 들어가야 한다', '슬슬 결혼 준비를 해야 된다' 같은 것들 말이다. 마찬가지로 빈지노도 큰 압박감을 느꼈다고 한다. 더욱이 빈지노는 이때까지도 '미필'이었기 때문에 압박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앨범명이 [12]인 이유이기도 하다.


‘12’라는 숫자는 시간과 연관이 깊은 숫자인 것 같아요. 시간의 단위로써 12시간, 1년이 12 달이고 낮과 밤이 각각 12시간이거든요. 앨범을 들어보니 시간에 대한 내용이 많았고, 실제로 군대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있기도 해서 12를 앨범명으로 정했습니다. - IZM, 2016


결국 압박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아닌 타인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간에 나는 서른 살이 젊은 나이라고 생각하면 문제 될 게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걸 깨달은 빈지노는 이제 기준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둬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이건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빈지노가 원하는 음악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Profile'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Art. how fun is it?
and I'm so good at it
내 창의력은 틀이 없어서 전공이 두 개지 - <Profile> 中



빈지노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힙합 말고도 미술이 있다. 그리고 빈지노가 미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주변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봤던 것처럼 이런 미술에 대한 관심과 빈지노의 음악이 합쳐져서 나온 게 [Up All Night]이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빈지노가 만들 음악들은 [Up All Night]처럼 대중성보다는 좀 더 예술을 추구한 음악이지 않을까?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12]도 그중 하나이고 말이다.



이런 설명을 듣고 [12]를 다시 들어보면, 빈지노가 그간 얼마나 고민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날아가기 전엔 thought I could catch up 따라가기 전에 난 벌써 지쳤네 - <Imagine Time> 中
내가 살리고 싶은 건 내 개성 똑같은 새끼들은 지구에 세고 셌어 - <Break> 中
진부한 새끼들 틈에서 난 늘 flexin 똑같은 거 하려면 굳이 밤을 왜 새? - <Flexin> 中




06. '2017 : [Waves Like] 그리고 빈지노도 피할 수 없는 군대..


Jazztfact's 1st EP, [Waves Like], 2017.05.29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17년. 재지팩트가 무려 7년 만에 EP [Waves Like]로 돌아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wTILU7utLCk&t=128s&ab_channel=1llionaireRecordsBrazil


많은 팬들이 기대했던 건 [Lifes Like] 시절의 재지팩트였지만, 앞서 빈지노가 밝혔듯이 그의 음악은 이제 변했다. 


Q. 이번 앨범이 기존의 재지팩트가 가지고 있던 색깔과는 좀 다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부담이 있으시다는 거죠?
A. 그렇죠. 그런 걸 의식하긴 했는데, 결국 둘이 내린 결론은 그렇게 하면 발전이 없다는 거였어요. - 엘이,2017,[7interview]


[Lifes Like]는 그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음악이었던 것.


하지만 빈지노 자신도 [Waves Like]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입대 날짜가 정해진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에 쫓겼고, 쫓기다 보니 자기가 진짜 원해서 만들었다기보다는 억지로 만드는 느낌이었기 때문.

*[Waves Like] 발매일인 2017년 5월 29일에 입대했다.



앨범 얘기로 돌아오자면, 빈지노는 우리의 인생이 마치 파도를 극복하는 서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시련과 문제는 언제나 우리 인생에 파도처럼 밀려오니까 말이다. 동시에 파도는 예술가의 영감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파도와 똑같어 영감은 날짜를 못 맞춰 - <On My Wave> 中


이렇게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파도. 즉 'Wave'이기 때문에 앨범명을 [Waves Like]로 지었다고 한다.


놀라운 건 이런 컨셉을 멕시코에 놀러 갔을 때 즉흥적으로 짰다는 것.

멕시코에 갔다 와서 물놀이를 되게 좋아하게 됐는데요. 서퍼들 인터뷰라든가 그런 걸 찾아봤어요. 거기에 그 사람들이 왜 항상 바다 근처에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있었는데, 자기네들이 타기 좋은 파도가 언제 올지 모르는 거기 때문에 항상 근처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많이 공감했습니다. - 힙합엘이, 2017, [7인터뷰]



07. '2019 ~ 



그렇게 [Waves Like] 발매와 동시에 입대했던 빈지노는 2019년 2월 17일에 전역한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군대에서 오랜 시간 생각했다는 빈지노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왜 증명해야 하느냐 이거예요. 내 음악을 사고 싶으면 사고, 사기 싫으면 안 사도 되고. 나를 좋아해 달라고 구걸하고 싶지 않아요. 그 구걸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불행해지더라고요. 그래야지 삶이 재미있지 않겠어요? 우리가 계속 부모님 기대만 맞춰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봐요. 모든 순간, 모든 선택을 거기에 따라서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봐요. 전 답이 정해져 있는 게 너무 싫거든요.
저는 에이셉라키가 되고 싶고, 드레이크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벡(Beck) 같은 아티스트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죠. ‘내가 과연 그냥 힙합 아티스트인가?’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그것만을 추구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힙합 아티스트로는… 이제 그냥 분류를 하지 맙시다. - 힙합엘이, 2019


정리하자면 이제는 내 꼴리는 대로 할 거고, 그건 힙합이라는 틀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것. 전역 후에 발매한 싱글들*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면 무슨 말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


*<OKGO>, <Fashion Hoarder>, <Blurry>




BANA : Beasts And Natives Alike / XXX, 250, 마스타우, 이센스(탈퇴) 등이 소속된 음반사


전역과 동시에 발매한 싱글 세 개를 제외하면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빈지노가 2021년 3월 25일. 바나에 입단한다.



동시에 정규 2집 [NOWITZKI]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다.


정규 2집 준비 소식을 알리기 시작한 게 2021년인데, 2023년 5월까지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중간중간 냈던 데모곡*이나, 'Trippy'를 제외하면 말이다.

*<Monet>, <Soda>, <Put It Down>


(좌) Monet (중) SODA (우) Put It Down


문제는 중간중간 냈던 곡들이 너무 좋았다는 것. 그렇게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빈지노는 2023년 5월 23일. W Korea와의 인터뷰에서 '드디어' 앨범이 곧 나온다고 밝혔다.


출시일이 임박했다고만 말할게요. <더블유>가 나오고 오래 안 가 발매될 거예요. 지금은 꽤 많은 과정이 이미 제 손을 떠났어요 - W Korea, 2023


동시에 앨범명이 [NOWITZKI]인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노비츠키는) 독일 출신의 NBA 슈퍼스타인데, 한 팀에서 우직하게 뛰었어요. 언더독이었다가 역경을 이겨내고 파이널 우승까지 한 역사로 유명하죠. 제가 그의 스토리를 좋아해요. 저도 또다시 무언가를 쟁취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 W Korea, 2023


참고로 2021년 BANA 입단과 동시에 발매했던 데모곡 'Monet'의 커버가 바로 노비츠키 선수다.


소식에 따르면 '진짜 덥다' 할 때쯤에는 나온다고 하니.. 아무리 늦어도 8월이지 않을까 싶다. 제발 그러길 바란다.


과연 군대까지 다녀온 30대의 빈지노가, 이번엔 어떤 음악을 보여줄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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