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는 월말회고를 기록해두려고 한다. 1월은 한 해의 시작이라 그런지 새롭게 시작하는 일들이 많았다.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일하기 방식, 새로운 제안, 새로운 전환점까지.
12월부터 추진하던 <WHY WE LOVE SEONGSU>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먹고, 마시고, 소비하기 좋은 동네 성수동이 아닌 ─ 성수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문화와 고유한 이야기를 전하는 필로스토리의 오리지널 프로젝트다. 성수동에서 자기만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 로컬 브랜드 10팀과 성수동을 사랑하는 아티스트 4팀이 함께 한다.
행사는 2월 18일부터 2월 27일까지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 총 10일간 진행된다. 사전 7일간은 스토리 전시가, 마지막 3일간은 성수동의 10개 브랜드를 직접 만나는 스토리 마켓이 열린다. 필로스토리에서 그동안 꾸준히 이야기해왔던 '스토리의 철학과 가치'를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요소요소를 정성껏 기획하고 있다.
팀 빌딩부터, 성수동 브랜드 인터뷰, 스토리 개발, 공간 및 경험 기획까지 하루 하루가 숨가쁘게 지나갔다. <메이드 인 성수> 때와 달리, 이번엔 브랜드 섭외부터 마켓 기획까지 필로스토리에서 직접 진행하고 있다. 규모가 꽤 크다보니 초기부터 믿을만한 파트너들과 결합해 프로젝트 팀을 짰다. 동양가배관을 만들면서 합을 맞춘 미용실 박영국 실장님, 1년 전 성수동 매거진 작업부터 필로스토리 리브랜딩, 퍼스널 브랜딩 툴킷 디자인 작업까지 함께 하고 있는 굿퀘스쳔스튜디오 우유니 디자이너님, 오래 전 프린지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던 월리가 운영하는 한칸까지. 손발이 짝짝 맞는 파트너들과 일을 착착 만들어가는 감각을 너-무 좋아한다는 걸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정말 재밌어.
이 단계에서는 나의 역할이 '청사진 그리기'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일의 그림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제시하는 것.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공통의 비전을 그릴 수 있도록,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기획이 잘 되어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저도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어요."라고 했던 실장님의 말이 힌트가 되었다. "역시 일을 잘하는 팀과 만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네요."라던 월리의 말도 냉큼 줍줍.
실행 단계에 돌입하면 기획자는 늘 예민하게 날이 선다.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챙기고 또 챙긴다. 이럴 때마다 종종 떠오르는 대화.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운영기획안을 쓰다가 "도대체 어디까지 써야 해요?" 라고 묻자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 다." 라고 답했던 부장님. 그 말이 종종 떠오른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을 대충 하면 대충 생각한 그 영역에서 반드시 사고가 발생한다.
전체 기획과 실무를 같이 하는 상황이라, 가까이서 꼼꼼하게 챙기는 일과 멀리서 일의 의미와 맥락을 객관화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이걸 잘 하는 게 나의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올해는 일을 적당히 떼어내고 나누는 법, 혼자서 다 하지 않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법을 연습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이 프로젝트는 의미가 크다. <WHY WE LOVE SEONGSU>라는 프로젝트 타이틀도 그렇다. 지난 몇년간 성수동을 정말 좋아했고, 동네를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들을 해왔다. 나는 왜 그렇게 성수동을 사랑했을까. 그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성수동의 사람들을 만나고, 하나씩 풀어가는 기분이 벅차다. 성수동 가까이에서 살아가다 올해 동네를 떠나게 될 것 같아서 기분이 더 그렇다. 아쉽고, 고맙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청약이 덜컥 되는 바람에 '오잉? 이게 이렇게 된다고?' 하면서 얼떨결에 독립을 준비하는 마음이 되었다. 빠르면 상반기 안에 이사를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매일 이런저런 망상을 하게 된다. 벌써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에 'Home'이라는 이름의 보드가 생겼다. 혼자 떠난 여행을 제외하고는 가족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어서 나의 공간을 꾸미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한달간 주운 망상의 조각들.
2월 중에는 집에 직접 가볼 수 있다고 한다. 가서 보고, 공간에 맞춰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봐야지. 집을 꾸리기 전에 기록상점과 동양가배관 공간을 만들어본 게 신의 한수일지도...
1월 초에 '니터' 세금이 나왔다. 올해는 필로스토리 운영에 몰두해볼 생각이라, '니터'로 장기 프로젝트를 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없애야 하나? 생각하다가 '니터'를 콘텐츠 브랜드로 키워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현장', '오프라인' 베이스로 사고하는 것이 습관인 기획자이지만 그 생각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렇다고 당장 어떤 성과를 만들 생각이나 여유는 없고 예술, 문화, 기획에 대해서 평소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들을 천천히 기록하고 발신하는 기반으로 삼아볼까 한다. 내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어떤 것들에 관심 갖는지를 한번 리스트로 정리해 봤다.
적어도 이 주제에서만큼은 수다쟁이가 될 자신이 있다. 특별히 품은 더 들이지 않고 평소에 하는 생각, 찾아보는 것들을 그저 '콘텐츠'의 형태로 뭉쳐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별도의 계정을 파고 흐지부지된 것이 너무 많아서 T_T 개인 계정에 가볍게 올리기 시작. 지금까지 3개를 올렸는데 나도 재밌고, 봐주시는 분들의 반응도 좋았다. 사실 이 작업은, 내가 머리로만 읽어내고 구체적으로 정리하지 않는 것 같아서 스스로 공부할 겸 시작하게 된 것이다. 꾸준함을 잃지 않기를.
방의 구조를 바꿨다. 나의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읽어주고, 그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느낀다. 예전에 불면증을 앓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방의 환경이 정말 잠 안오게 생겨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프로그램에서의 처방도 잠이 잘 올 수 있는 보다 아늑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으니. 오피스 공간을 널찍하게 만들어주고 스탠드도 가져다 두었다. 내가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하고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렇게 1월은 내내 방을 정리했고, 그러면서 구석구석 넣어두었던 수집품을 꺼내어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주었다. 다시 꺼내어 봤을 때 설레지 않는(!) 물건은 과감하게 나누거나 판매 중.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몰두하는 '취미'를 다시 살려 보고 싶어서 시동을 걸고 있다. 독립하면 '플레이룸(Playroom)'을 따로 만들고 싶다. 그 방에 들어가면 무조건 노는거다. (ㅋㅋㅋ)
연말에 이런저런 대화와 워크숍을 거치며 사업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몇 가지 업무 루틴도 만들었는데 앞으로 지켜 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지난 몇 년간은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찾아온 기회들로 일을 만들어 왔던 것 같다. 올해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정리해서 선보이고, 더 적극적인 일하기를 해보려 한다. 월초에 전략 워크숍도 하고 나름 열심.
주말마다 한 번씩이라도 배다리는 꾸준히 가고 있다. 연말부터 브랜드 디자인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다. 정말 오랫동안 품어온 염원인데... 이제 정말로 정리가 되어간다(고 믿고 싶다.) 또다시 자르고 붙이고 종이공작 시작.
어느덧 동양가배관도 6개월차다. 시간이 참 빠르다. 계속 뉴비일 것만 같았는데 어느덧 6개월. 문득 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들을 잘 기록하고 싶은데, 막상 가면 소홀해지게 된다. 갈 때마다 작은 것 하나씩은 꼭 매만지고 오는데, 워낙 미미한 변화이다 보니, 공간의 흐름을 스스로도 알아채기가 어렵다. 2월에는 의도적으로라도 기록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감사하게도, 좋은 제안을 받아서 원고를 한 편 쓰게 되었다. 다행히(!) 창작자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틈이 날 때마다 글을 쓰거나, 글을 쓰려고 고민하거나, 스스로의 재능없음을 꾸짖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휴우...
정리하고 보니 여러 2022년에도 여러 정체성이 공존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1월 초에는 연속으로 두번이나 입술이 부르트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도 오르락 내리락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것대로 마감하고 지난 시간들을 잘 보내주려 한다. 2월에는 더 잘 쉬고, 즐거운 취미생활 하면서, 신나게 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