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기간제 교사에게 새 학기라 함은 새로운 직장에 대한 적응을 뜻한다. 대개 해마다 새로운 학교와 계약하게 되는 입장으로서 당연한 이야기다.
처음 보는 교무실, 동료 교사, 학생, 새로운 업무.
새 학기는 처음 보는 얼굴들을 입에 붙지 않은 이름과 매치하려고 노력하는 시기이며,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친분을 도모하느라 바쁜 시기이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기간제 교사는 이 친분을 도모하는 장의 둘레에 서있게 된다. 학교에 자리가 없으면 나가야 할 사람이니까. 완전히 섞일 수 없는, 마치 하나의 물통에 담긴 물과 기름 같다.
한 조직의 구성원이지만 이 조직에 온전히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이 느껴질 때면 혀 끝이 쓰다.
그 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 초봄.
그때의 나는 새로운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전달받은 인수인계 사항은 없었다. 이는 학교에서 흔한 일이지만, 업무 특성상 업무 매뉴얼마저 없었기에 마치 스타트업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부장님, 이건 이렇게 처리할까요?”
이정표가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장과 협의하는 시간이 많았다.
부장은 전형적인 윗사람이었다. 일상에서도, 업무 처리 과정에서도. 그의 권위적인 말투와 기간제 교사에 대한 하대는 거부감을 일으켰으나 일은 일. 직장에서 사적인 감상은 뒤로 미뤄두어야 하지 않겠나.
개학으로부터 몇 주가 흘렀던 어느 날, 최악의 사건이 터졌다.
내일의 출근이 무서워
“선생님은 내가 일 시키면 그냥 네 하고 하면 돼, 알겠어? 자리로 가!”
누가 교직사회는 평등하다고 했던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듣고 있어야 했던 폭언과 무시.
나를 ‘무능하게 일 떠넘기는 사람’ 이라고 동료 교사들 앞에서 공언하는 부장에게 ‘그런 적 없다‘ 고 꼬집자 곧장 수십 개의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자리로 가라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와 퇴근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했던 그때의 심정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지만 어디로도 못 가게 족쇄에 붙들려있는 기분.
벌렁이는 가슴과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 버텼다. 이 지구상에 나만 혼자 남은 것 같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저릿하다.
난 저런 폭언을, 무시를 들을만한 행동을 한 적이 추호도 없다. 남에게 업무를 지시할 직위도 아닐뿐더러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업무를 누구에게 떠넘기겠는가.
나의 결백함을 구구절절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그렇다면 이 글은 나의 호소문에 불과할 테니 애써 그 마음을 덮어둔다. 자초지종을 물어온 다른 동료 교사들로부터 ‘선생님은 잘못이 없다’ 고 무죄 판결을 선고받은 것으로 결백을 증명해 본다.
저 사건 이후 부장은 나를 업무에서 배제하고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업무상 변동사항, 관리자로부터 내려온 지시사항 등 아무것도 전달받지 못했다. 부장은 내가 있으면 자리를 피했고, 재잘거리던 입을 꾹 다물었다.
관리자는 부장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 ‘선생님이 먼저 가서 사과해’ 라고 하였으며, 어떤 교사는 이러한 부장의 행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러고 싶었다. 전국 방방곡곡 ‘내 억울함 좀 알아줍소’ 읍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건 내 앞에 놓인 현실이었다.
이 좁은 교직사회에서 나에 대해 뭐라고 말이 전해질까? 말 많은 부장이 주변에 뭐라고 떠벌릴까? 한낱 계약직인 내가 다른 학교에 가서 일을 하려면 없었던 일처럼 덮어야겠지?•••
생각은 끝이 없었고, 걱정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나에게 이 일을 더 크게 만들 용기 따위는 없었다.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의 출근이 두려워진 나는 사직을 고심했다.
부장에게 내 지은 죄를 사해달라 간청하기엔 내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내 업무를 남에게 떠넘긴 적 없다고 말한 거?), 부장이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테니 앞으로도 숨 막히는 나날이 이어질 게 뻔했다.
이제 막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이 숨 막히는 상황을 내년까지 버틸 수 있는가? 자신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만둔다면 이미 새 학기가 시작된 시점에서 갈 곳이라곤 없었고, 꼼짝없는 백수행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항상 두 분이 떠올랐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불안정한 자격으로 일하는 나를 항상 걱정하는 두 분.
내 고민의 종착지는 항상 부모님이었다.
앉으나 서나 내 걱정뿐이신 분들.
나는 결국 현실에 순응했다.
부장에게 가서 업무 사항을 전달해 달라고 하였으며,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업무를 쏟아냈다. 그 과정에선 사과하는 사람도 사과받는 사람도 없었다.
한 동안은 힘들었다. 내 마음에 남은 상흔은 그대로이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구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나만 생각했다. ‘내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 일은 내 마음에만 남아있는 일이 되었다.
나는 이 일로 교직사회에 권위주의적 문화가 남아있으며, 상사의 상사도 상사 편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알았다.
물론 모든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겪은 일의 부당함을 알아주는 다른 교사들의 지지와 공감이 없었더라면 나 역시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이 나에게 아픔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지키는 것’ 임을 깨달았다.
만약 그 당시에 나를 ‘무능하고 일 떠넘기는 사람’ 으로 치부하는 부장의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폭언도, 무시도 듣지 않았을 것이고(저 말 자체가 무시지만) 이후에 업무에서 배제당하는 일 따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내 앞에서 나를 오인하는 것을 정정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 말에 동의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나는 나 자신이 노력했음을 알고, 그런 평가를 들을 이유가 없다고 확신하기에 다시 돌아가도 부정할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내 생각을 단호하게 표현했던 것은 결국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만약 자신이 속한 집단(직장, 학교, 어디든)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무조건 혼자 모든 것을 견딜 필요는 없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지 않더라도, 당신의 억울함을 알아주는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는 큰 힘이 된다. 혼자 견뎌온 당신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함과 동시에 혼자 견디지 말고 주변에 의지하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혹은 새로운 환경을 찾는 것도 용기 있는 선택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절대 자신을 깎아내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항상 스스로를 믿고, 지지해 주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