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와 함께 일한다는 것

by 혜달




학교에서 일하면 뭐가 제일 힘들어요?




학교란 어떤 곳인가?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물과 영양분을 듬뿍 주는 곳이자,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가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장소이다.


간혹 ‘요즘 학생들 지도하기 힘들다면서요?’ 라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물론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반짝이는 눈빛으로 귀를 쫑긋하는 학생들을 보노라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를 얻는다.


학교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행정업무도, 수업 부담도, 학생지도도 아닌 동료 교사였다.


일부 교사들의 횡포에 시달리다 교직 사회에 질린 적도 있다.

‘나는 교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교직을 떠나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스스로를 책망하고, 교직을 그만둘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몇 년 전 만났던 선배 교사의 ‘공헌’이 컸다.

그는 당시 내가 속한 부서의 장이었으며, 그의 나르시시스트 성향은 지독히도 나를 괴롭혔다.




나르시시스트




요즘의 미디어에서는 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나르시시스트란 아래와 같은 자기애적 성격 특징을 두드러지게 가지고 있는 인물을 칭한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특권의식을 가짐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함

끊임없는 관심과 인정을 갈구함

타인을 이용하거나 착취적 관계를 맺음

비판에 매우 민감하고 쉽게 분노함



내가 직접 겪어본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주변인들에게는 지독히도 냉정했다.

타인의 입장과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본인의 입맛대로 움직이기만을 바란다.


이러한 나르시시스트의 곁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아무리 노력한들, 명백한 을




내가 위에서 언급한, 당시의 부장은 나를 하대하고 온갖 잡일을 떠넘기는 인물이었다.

개인적인 잔심부름까지 나를 시키는 그를 볼 때면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한 사람 때문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고, 포기하기 싫었다.

좋은 선생님들과 나에게 잘 따르는 학생들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애써 억누르던 화가 터지는 일이 생겼다.

정신없는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나와 확인한 핸드폰에는 부장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부장님, 전화 주셨어요? 식사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을까요? “

“별 일 아니야. 선생님은 몰라도 돼.”

“아, 알겠습니다. 전화를 바로 받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런 식으로 일하면 안 돼.“

“네?”

“근무 태도가 안되었네.”




다시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용무를 여쭈니 부장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넌 몰라도 돼' 라는 무시였다. 사유를 설명하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왜 전화를 했는지 이해가 안 갔으나 ‘나 기분 상했소’ 티 내는 것이 분명했으므로 다시 한번 사과를 드렸다. 그러자 부장은 나의 근무태도에 대한 악평을 쏘아붙였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었을 뿐인데 근무 태도가 안 좋다니, 나도 사람인데 왜 화가 안 나겠는가?

존중이라곤 전혀 없는 부장의 무례한 태도에 몹시 화가 났다.



내가 아무리 공손히 대하더라도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구나.

맡은 업무를 열심히 처리하고, 하물며 그가 시키는 온갖 잔심부름을 해도 근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구나.



분노에 뒤이어 허탈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바뀌리라는 희망 한 조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부장의 ‘나는 갑, 너는 을’이라는 태도의 근간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바뀌지 않을 것이었다.

그에게 나는 학교 내에서 아무런 힘이 없으며, 잠시 있다 떠날 사람.

본인 내키는 대로 감정을 배설해도 되는 '을'이었다.



나 자신도 이미 알았을지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 봐야 의미 없다는 것을.

하지만 직접 무시와 악평을 맞닥뜨리는 것은 달랐다.

위태롭게 지켜오던 마음속 깊은 곳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나는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게 좋아서 교사가 되었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부장님, 저 왔습니다. 전화를 바로 받지 못해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전화로 말씀하시려고 했던 게 어떤 걸까요?”

“아, 그거. 진짜 별 거 아니었는데? 그냥 뭐 하나 물어보려다가 별 거 아니라 안 물어봤어. 신경 안 써도 돼.”



부장은 다시 사과하는 나를 보며 언제 쏘아붙였냐는 듯 인자하게 말했다.

내 마음속 희망 한 조각이 부서져 가루가 되고,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했던 그의 말들은 '별 거 아닌', '신경 안 써도 되는' 일이었다.




을의 반기




위와 같은 충격요법이 없었더라도, 부장과 잘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드러냈다.(아마 관리자는 빼고) 본인의 행동은 모두 타당한 것이며, 자신의 잘못은 남의 탓이었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틈만 나면 남의 꼬투리를 잡아 헐뜯고, 쉴 새 없이 자기 연민을 늘어놓았다.


부장의 습성을 먼저 겪어본 다른 교사들은 이미 질려있었고, 당연하게도 그에겐 가깝게 지내는 교사가 없었다. 이는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었다.


부장은 자신의 박한 인덕 탓에 정교사인 다른 부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못했고, 그 업무를 만만한 나에게 떠넘겼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다른 선생님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고생이다, 관리자한테 다 말할 것이다' 라며 다른 교사의 탓을 했다.


실제로 교내의 모든 교사가 업무에 협조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부장의 말들은 부장의 사견일 뿐임을 알아챘다.(훗날 다른 부원들과의 대화로 확인해 보니 부장의 사견이 맞았고, 다른 부원들에겐 내 험담을 했다고 한다.) 단지 부서 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관리자로부터 가장 싫은 소리를 들을 사람이 나일 것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처리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상사의 잘못된 업무 지시에 순순히 순응하는 것은 나 스스로 '을'을 자처하는 것이었다.


특히 부장과 같은 인물은 순응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이용하려 든다. 내가 군말 없이 부장이 떠넘긴 업무를 처리하자 부장은 더 많은 업무를 떠맡기기 시작했다.


파렴치한 부장은 나에게 짐을 지우면서도 미안해할 줄을 몰랐다. 나는 부장이 옆에 서있기만 해도 속에서 화가 끓어올랐고, 날이 갈수록 살이 빠져갔다. 같은 교무실에 있었기에 주변 선생님들 역시 이러한 상황을 모를 수가 없었고, 입을 모아 나를 ‘불쌍하다’고 했다.


그들 딴에는 위로였겠지만, 나르시시스트 상사에 시달리던 나는 그들의 ‘불쌍하다’는 말이 위로로 와닿지 않았다. 구덩이 밖에 서있는 사람이 구덩이에 빠진 나를 내려다보며 뱉는 말처럼 들렸다.



아,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내가 바뀌어야 하는구나.


나는 사회는 각자도생이며, 남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임을 알았다.

나의 어려움은 스스로 해결하고, 헤쳐나가야 했다.



"이거 제 업무 아닌데요?"



나는 더 이상 부장의 '업무 떠넘기기' 를 조용히 넘기지 않았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독한 부장은 개의치 않고 일을 시키려고 했지만, 나는 '더 이상 순순히 일을 다 떠맡는 을이 되지 말자' 라고 다짐하며 업무를 쳐냈다. 이후 부장도 나에게 업무를 지시할 근거가 없으니 다른 부원들에게 업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을이다.

어느 학교를 가든 완전히 소속될 수 없고, 의견을 피력할 수 없는 지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갑질에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르시시스트 부장에게 시달리는 경험을 통해 나는 때에 따라 예스맨이 아니라 노맨이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비겁한 상사의 업무 지시에 순응하고 있다면,

No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보길 바란다.


'을이 되지 말아라', '갑질을 해라' 가 아니다.

부당한 지시를 떠맡는 을이 되지 말자.

누구도 당신에게 갑질을 하고, 함부로 대할 자격은 없다.



당신이 No라고 말한들 잘못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가 불합리한 상황에서 편하게 No라고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