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엔 늘 아무것도 없었다

by 혜달




선생님 자리는 왜 이렇게 깨끗해요?



내가 6개월 계약으로 근무할 때였다.

나는 자리에 개인적인 물건을 두지 않았다.

내 책상에 올려져 있는 물건이라곤 오직 노트북, 교과서, 참고 교재, 유인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내 마음꺼풀 속엔 항상 ‘난 어차피 떠날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갑질하는 부장을 볼 때에도,

정규직끼리 통하는 대화에서 소외될 때에도,

학생들이 내 뜻처럼 따라와 주지 않을 때에도.


어찌 보면 편했다.

힘들 때마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의지를 다잡을 수 있었으니까. 상처를 덜어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랬나 보다.

내 자리에 내 마음이 담긴 물건은 없었다.



선생님, 선생님 자리는 왜 이렇게 깨끗해요? 물건이 없어요!



쉬는 시간마다 나를 찾아오는 예쁜 학생이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왜일까? 학생의 가벼운 그 말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당황하며 얼버무렸지만, 입 안에 맴도는 말은 따로 있었다.

나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까.

이렇게 대답할 순 없었다.



그랬다. 사실 계약직 교원인 나에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잊고 있다가 툭, 깨닫는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는 이 자리에서 비켜야 한다는 사실을.

학생의 말로, 누군가의 차별로, 내가 없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시금 깨닫는 것이다. 이는 누군가에겐 흔한 일이고, 감정일 것이다.



‘선생님, 내년에도 이 학교에 계세요?’

‘내년에도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어요!’

‘졸업하면 선생님 뵈러 학교 올게요!’



학생들의 악의 없는 질문, 다짐을 듣고 있자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그렇다고 차마 ‘나 기간제야‘ 라는 말을 뱉지는 못한다. 학생들이 기간제 교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렵다.


나의 개인적인 두려움과 별개로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아름답다. 아이들에게 건넨 관심이 더 큰 관심으로 나에게 돌아올 때면 한없이 마음이 충만해진다. 이 아이들은 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낼까?


순수한 그들에게 ‘당연하지! 너 그 말 꼭 지켜~’ 라고 약속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더 슬프고 미안하다. 나의 부족함으로 아이들에게 약속하지 못하는 것이, 그 웃음에 진실되게 마주 웃지 못하는 것이. 종종 자괴감에 빠진다. 정규직 타이틀을 거머쥐지 못해 학생들을 속이고 있는 내가 우스워서.



그들에게 아무 약속도 못하고, 떠나게 되던 날.

나는 깨달았다.


떠나는 나를 보며 우는 학생들,

고작 6개월을 함께 근무한 나에게 진심을 건네는 선생님들,

항상 휑 하던 내 책상을 비우니 나온 한 보따리의 짐.


아, 나 떠나기 싫구나.

가져갈 수 없는 이 소중한 것들을 두고 어떻게 떠나는가.


‘나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까.’라고 수없이 마음속으로 되뇐 것은, 떠나기 싫은 사람이 현실을 되새기는 거였다.

익숙한 교정, 나에게 달려오는 학생, 의지하는 선생님들. 이미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이것들은 곧 내 마음 한쪽에서 떼어내야 하는 것들이었다.





이별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고, 여전히 힘들다. 아쉽고, 붙잡고 싶고, 뭐 하나 빼먹은 것만 같다.


하지만 이별하기도 전에 이별을 되뇌던 전과 달리, 이제는 이 시간을 좀 더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오롯이 감사한다. 이렇게 하면 이별 후에도 그 시간들이 내 마음에 오랫동안 남는다.


나는 나에게 말한다.

소중한 건 마음껏 소중해하자.

애써 덜어내려고 하지 말자.

이 곳은 내가 머무는 동안 ‘나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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