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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식공룡 Jun 11. 2022

나는 구속됐다(4)

평범한 회사원이 겪은 감옥 생활을 기록하다

<각방 점검 준비>


 밤새 뒤적였다. 시계가 없으니 몇 시가 되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10분 남짓 자다 깨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도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건 불 켜진 감옥이다. 도합 1시간 정도 잤을까.      


 메인 전등이 켜지더니 기상 노래가 울려 퍼진다. 드라마 <슬기로운 깜빵생활>에 나오던 법무부 노래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DJ DOC의 ‘겨울이야기’가 모두의 아침을 깨운다.

      

 “남아있는 이 겨울이 따뜻하게! 아 따뜻하게!”     


 문에 붙어있는 ‘예시도’ 모양으로 모포를 개고 화장실에 쪼그려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온 몸을 씻었다. 심장마비가 올까 싶어 찬물을 상반신에 묻힌 뒤, 바가지로 머리에 끼얹으니 머리통이 깨지는 것 같다. 공간이 너무 좁아 어깨에 담이 걸린다. 이게 감옥이구나.


 ‘정신 차리자. 살아서 나간다. 나는 가장이다. 찬물 샤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3분 만에 후딱 몸을 씻고 다시 누런 수용복을 입었다.     


 사소 : “식수통!”     


 그러고 보니 방구석에 ‘바이*탱크’ 6리터 물병이 있다.


 ‘이게 식수통인가….’      


 맨 앞 1방부터 물 받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덧 내 방 앞. 사소가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드럼통에서 주전자로 물을 퍼서 ‘바이*탱크’ 물병으로 옮겨준다.     


 사소 : “아이고 형님, 찬물로 씻으셨네. 이거랑 찬물 섞으면 대충 미지근하게 씻을 수 있어요.”

 나 : “아.. 몰랐어요. 고마워요.”     


 ‘그럼 한 번 더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대야에 물을 옮겨 담았다. 옷을 벗고 따뜻한 물 한 바가지를 몸에 끼얹으니 순간 호텔 사우나가 부럽지 않다.      


 ‘역시 인간이란 소소한 것에 만족하는 존재구나.’      


 룰루랄라 따뜻함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복도 끝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교도관1: “각방~ 점검준비! 각방 차렷!”

 교도관2: “1방 1명, 2방 1명, 3방 2명, 4방 2명…. 8방? 8방 어딨어?”

 나 : “아... 저 샤워 중이었습니다.”

 교도관1 : “박훈민씨, 아침 6시 반에 점검 있으니까 다음부터는 옷 입고 앉아있어요. 또 이러면 옐로카드 발급합니다.”

 나 : “죄송합니다.”     


 ‘하아... 내 인생...’


 그렇게 나체 상태로 덜렁덜렁거리며 첫 ‘점검’을 마쳤다. 


 사소 : “배식!”     


 첫 식사다. 모닝빵 3개, 딸기잼, 200ml 우유 1개, 콘푸레이크 몇 숟갈을 사소가 식판에 담아 방 문 구멍으로 건네준다. 


 나 : “저는 유제품 못 먹어서. 우유는 안 주셔도 돼요.” 

 사소 : “오 개꿀, 내가 먹어야지. 형님 많이 드세요.”     


 ‘우리 가족은 나 때문에 식사도 못하고 있겠지….’


 또 눈물이 차올랐지만 그래도 정신은 차려야 하니 먹긴 먹어야겠다. 모닝빵에 딸기잼을 발라 입에 처넣었다. 콘푸레이크를 흡입하고 1분 만에 식사를 마쳤다. 생존을 위한 식사. 그 식사의 끝은 설거지다. 화장실 수도꼭지로 식판을 씻었다. 그렇게 첫 식사가 끝났다. 


 온기가 남아있는 바닥에 누워있으니 스피커로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조우종의 FM 대행진>이다. 몇 년간 라디오를 들을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젠 그저 사회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만으로 감동할 것 같다. 


 ‘그래 나는 사회에 있는 거야! 푸*지오에 있는 거야...’      


 조우종과 전화 연결된 청취자들이 퀴즈를 푸는데, ‘얘네들은 왜 이런 것도 못 맞추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가면 나도 전화 걸어서 상품이나 타야지!’ 그렇게 누워서 30분 정도 지났을까.


(인터폰 소리)

 교도관 : “2172 박훈민씨, 문 열어줄 테니 나오세요.”

 나 : “네? 저 나가요?”

 교도관 : “이 양반아 신체검사 가시자고. 오자마자 출소하는 줄 아셨어?”

 나 : “아....”     


 ‘빵 동기’인 양아치와 함께 교도관이 안내하는 공간으로 이동하니, 비슷한 시기 구속된 삼십여 명이 길쭉한 교회 의자에 앉아 대기 중이다. 20여 년 전 병무청보다 좀 더 낡은 시설.      


 ‘아, 깜빵에 내 DNA 정보가 등록되겠구나….’     


 당연한 것이겠지만 모인 사람들 대부분의 표정이 썩어있다. 여기가 영화 ‘무간도’에서 말하던 ‘무간지옥(*불교에서 말하는 여러 지옥 중 고통이 가장 극심한 지옥)’인가 싶다. 평소 사주나 관상에 관심 없었지만 ‘이런 얼굴이 감옥에 오는구나’하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대기자 서른 명 중 열댓 명 남짓은 불안한 몸짓으로, 열 명 정도는 여러번 경험한 듯 익숙한 듯 당연하게 절차를 기다렸다. 서너 명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지적 능력으로 보였다.      


 ‘아 여기 리얼 감옥 맞구나. 별 희한한 놈들 다 있네.’     


 안경 쓰고 풀 죽은 듯한 얼굴을 한 사람들은 ‘화이트칼라’ 범죄로 보였고, 몇 번 와본 듯 표정이 밝은 프로 사기꾼 외모도 더러 보였다. 용·호랑이·물고기 등 각종 문신을 새긴 친구들도 있었다.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온 듯한 외국인, 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흑인들도 있었다. 파란 명찰(마약사범)을 단 맑은 얼굴의 흑인 남성은 마찬가지로 파란 명찰의 한국 청년에게 “유? 마리화나? 미? 메탐페타민”하면서 인사를 했다. 역시 ‘향정 애들이 사교성이 좋다’더니 약효는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혈액 검사를 마쳤냐’는 교도관의 물음에 “기억 안 나. 여기가 어디야”를 반복하는 노인도 있었다. 역시 ‘무간지옥’이다.     


 교도관 : “아따! 오늘 인간들은 왜 이러냐, 돌아 불겄네”      


 키, 몸무게를 재고 피를 뽑는다. 수용자 피를 뽑는 의사는 거짓말 거의 안 보태어 팔순은 되어 보이는데 혈관을 좀처럼 못 찾았다. 양팔에 ‘쌍 긴 팔 문신’을 한 어린 친구는 “피가 안 멈춘다”고 걱정하는데, 다행히 내 팔뚝은 분수를 뿜지는 않았다. 다만 나의 비루한 건강 정보가 감옥에 고스란히 등록된다 생각하니 착잡했다.      

 영화를 보면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 감옥에 가던데, 신체 검사장에서 본 사람들은 대다수가 20~30대로 보였다. 나 정도면 상위 35%는 되겠다. 20대 중반 정도 됐을 청년이 내게 말을 건네 온다.      


 청년 : “저는 보피로 왔는데, 사장님은 뭐로 오셨어요?”

 나 : “아, 보피가 뭔가요? 나는 그...”

 청년 : “보이스피싱으로 법정 구속됐어요.”

 나 : “아, 보이스피싱. 잡히긴 잡히나 보네” 

 청년 : “여기 보이스피싱 엄청 많을걸요? 다 저 같은 조무래기지만.”     


 서민 가정을 망가뜨리고 국가 경제를 좀 먹는 보이스피싱범, 악마치고는 너무 평범하게 생겼다.


 나 : “난 정말 억울하거든?”

 청년 : “‘성’으로 들어오셨나 보네요. 교도소 가면 성범죄자는 싫어한대요.”     


 내가 잘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이스피싱범한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싶다. 하긴 남들은 날 ‘성범죄자’로 보겠지.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까.


 신체검사를 마치고 2열 종대로 줄을 맞춰 다시 6상 독방으로 돌아왔다. 좁디좁은 독방이지만 다른 범죄자 놈들하고 분리된 공간, 나 혼자만의 공간이어서 그런지 이제는 심리적 안정감이 들 정도다. 


 사소 : “형님, 오늘 물품 구입 있으니까 4시까지 써서 주세요. 볼펜으로 시험 OMR카드 마킹하듯 종이에 써서 주시면 돼요.” 


 벽을 바라보니 물품별 번호와 가격이 적혀 있다. 필수적으로 살 게 너무 많다. 자본주의의 완성은 감옥이었다. ‘전기면도기’, ‘시계’, ‘안대’, ‘운동화’, ‘샴푸’, ‘러닝’, ‘팬티’… 생필품을 사고 ‘커피’, ‘과자’, ‘컵라면’ 몇 개를 샀더니 어느덧 8만 원이 넘었다. 구속될 때 지갑에 있던 돈이 영치금으로 자동으로 넘어간다고 하는데, 지갑에 현금이 없었으면 팬티도 못 갈아입을 뻔했다. 


(인터폰 소리)

 교도관 : "박훈민씨, 내일 아침 10시에 조현영씨 접견 있습니다."

 나 : "네. 알겠습니다."


 '아내가 온다. 두렵다. 무슨 얘기를 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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