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아름다워지고 있는 우리의 현장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 누군가는 이미 집을 나선다.
누군가를 깨우기 위해, 누군가의 하루를 시작해 주기 위해.
장애인활동지원사.
이들은 제도 속 직업명이기 전에, 현장을 지키는 파수꾼에 가깝다.
글을 모르는 이에게 글을 알려주고
숟가락을 쥐기 어려운 손에 밥을 떠 먹여 주고
굳은 다리를 붙잡고 함께 걷고
병원 문을 대신 열어 주고
주민센터에서 서류를 대신 설명해 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당연한 일들이
누군가에겐 누군가의 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손이 바로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손이다.
더워도 춥지도 않은 사람들
영하의 날씨에도, 폭염 속에서도
그들은 “오늘은 힘들겠다”보다
“기다리겠지”를 먼저 떠올린다.
눈이 많이 온 날, 차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면
동구 밖에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걸어 들어간다.
그 길이 외길이고, 얼어 있고, 미끄러워도
그들은 돌아서지 않는다.
그 끝에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야, 선생님 왔어.”
이 한마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어쩌면 그 사람 하루의 첫 번째 햇살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이 엄마였던 사람들
지금 우리나라에는 10만 명이 넘는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있다.
그중 많은 이들이 50대, 60대, 70대 여성이다.
자식을 다 키워낸 사람들.
누군가의 엄마로 살았던 시간들이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를 돌보는 힘이 된다.
1주일 교육을 받고 현장에 나선다고 말은 하지만
사람 한 명의 하루, 감정, 몸의 상태, 마음의 결을
교재로 다 배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해낸다.
이유는 단 하나다.
기술보다 먼저 가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말 대신 웃음으로 받는 상
나는 올해로 4년째 이 길을 걷고 있다.
연풍 산 아래, 슬레이트 지붕의 작은 집.
지적 엄마와 함께 사는 기종이를 만난 지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기종아, 선생님 왔어.”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들고,
비시시 웃는다.
그 웃음.
그 1초 남짓한 표정이
내가 지난 시간 받은 가장 큰 상이다.
세상에는 상장이 많지만
사람의 웃음만큼 정확한 평가는 없다.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함께 살아주는 사람이다.
분을 나누고
초를 나누고
하루를 나누면서
그 사람의 오늘을 가능하게 해 준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세상이 왜 이렇게 각박해졌을까.”
하지만 나는 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신발을 신겨 주고
밥을 먹여 주고
손을 잡아 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아직 괜찮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왔어.”
그 한마디가 들리는 곳에서
세상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아름다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