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은 누구에게 밥 얻어먹나요?
사장님의 수행 비서
애초 병원의 계획보다 수술 범위가 적어져 회복이 빨랐던 엄마는 지루한 병원 생활을 청산하고 얼른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엄마의 병은 희귀병이기에 완치가 불가하다. 때문에 매년 문제 부위의 뼈가 얼마큼 자라는 지를 확인해야 하며 다시 수술을 할 여지도 있다. 엄마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한부 같은 두 번째 삶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살고 싶어 했다. 그런 엄마를 돕기 위해 제주로 내려온 나는 엄마의 비서였다.
제주에서 자영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발이 무척 넓어야 한다. 이 모임 저 모임을 다 들고 동네와 동문회의 일까지 맡아 가며 열심히 인망을 다져야 한다. 엄마는 아빠의 사고 후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일구고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해왔다. 나는 그런 엄마를 도와 엄마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출퇴근 길엔 사장님의 목이 아프지 않게 무진동으로 차를 안전 주행해야 했고, 손님들을 접대하며 엄마의 레이저 눈빛 속에서 장부를 정리해야 했고, 옆 사무실로 놀러 가 엄마의 친지들과 점심을 먹고, 엄마네 동문회 회장님이 종이에 써 온 내용들을 타이핑하고 인쇄하기도 했다.
내 도움으로 엄마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해 활력을 되찾아갔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바쁜 사람인 엄마에겐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바로 공적인 일이 아니면 웬만하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집에서 저녁 한 끼를 먹는 아빠의 저녁 밥상을 차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비자발적 삼식이 아빠
엄마가 아침 상을 차리지 않기로 선언한 이후로 우리 가족은 아침을 거르는 사람들이 됐다. 따라서 아빠가 집밥을 먹는 것은 저녁 한 끼뿐이다. 기이하게도 아빠는 나와 엄마에게 “밥 줘.”라고 말을 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기다리다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는 것에도 눈치를 봤다. 그래서 엄마의 두 번째 인생을 즐기면서 저녁에 약속을 잡게 되면 자연스레 엄마의 비서인 내가 아빠의 밥상을 차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바람을 눈치채면서도 매번 뭉을 부리며 아빠의 밥상 차리기를 피했다. 엄마는 대놓고 나에게 왜 아빠를 굶기냐며 핀잔을 줬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빠는 라면을 좋아하는 거 아니냐며, 라면이 싫으면 왜 스스로 밥상을 못 차리냐고 맞받아쳤다. 점점 모녀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 다툼의 주제가 엄마의 병에까지 이르면 좌불안석인 아빠는 끙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조용히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요리를 못하지만 자취를 하면서 스스로 밥상을 차리는 데 익숙하다. 그저 냉장고에 있는 반찬 몇 개를 꺼내고 밥통에서 밥을 푸면 되는 일이다. 그것마저 번거롭다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먹거나 식당에서 밥을 포장해오면 된다. 왜 내 아빠는 그 간단한 일을 못하는 걸까. 아니 왜 ‘안‘ 하는 걸까? 그즈음 나는 아빠가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데 굉장히 화가 나 있었다.
아빠가 남편으로서 엄마의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안’ 했고 투병 기간 동안 아내 간병도 ‘안’ 했다. 그래서 딸인 내가 제주에 와야 했다. 나는 아빠가 남편이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 ‘안’ 하는 데도 아빠의 밥상을 차려야 하는 것이 매우 싫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안’ 했다. 엄마는 아빠를 삼식이라고 욕하면서도 아빠의 밥을 안 차리는 나를 못된 딸로 매도했다. 정작 그 원인이 된 아빠는 밥 달라는 소리 한 번 ‘안’ 했지만 말이다.
아빠 밥은 누가 차리나?
잊을만하면 계속 생기는 ‘아빠 밥상 차리기 논란’에 지긋지긋해진 나는 주변의 딸들에게 물었다. 기혼인 직장 동료는 고생하며 일하다 퇴근하신 아버지의 밥상을 차리는데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고 했다. 친한 기혼 언니는 어차피 애기들 밥을 먹여야 해서 매 끼니 힘들게 요리를 하는데 숟가락 한 두 개 얹는 건 괜찮다고 했다. 다만 자기도 남이 차린 밥상을 먹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비혼인 모 친구는 당연하게 밥 달라는 아버지를 위해 퇴근하고 매일 부모님의 밥상을 차리는 게 힘들다고 했다. 또 다른 비혼 친구는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셔서 바깥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오시거나, 어머니가 없으면 알아서 배달을 시키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온다고 했다.
이 질문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떤 집은 아버지가 요리를 잘해서 주방 담당이 아버지기도 했다. 제주에 올 때마다 아버지가 장을 봐서 요리를 해 주고 오히려 어머니가 요리를 못 한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당연하게 밥을 차리는 딸들보다 아버지에게 밥을 얻어먹는 딸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아빠에게 밥을 얻어먹기란 힘든 일이다.
아빠가 가스불을 피워하는 요리는 단 두 가지다. 바로 라면과 된장 수육이다. 아빠가 라면을 끓여 먹는 걸 마뜩잖게 여기는 엄마와 달리 난 진심으로 아빠가 라면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라면과 컵라면을 종류별로 사서 쟁일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아빠가 라면을 끓여먹을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이런 음식을 먹냐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정작 딸인 내가 굶거나 라면을 끓여 먹을 땐 무던하다. 나는 이해 안 되는 엄마의 반응을 그저 ‘아빠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라고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