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삼식이 아빠

함께 잘 먹고 잘 살자.

by 문는
너한테 밥 안 얻어먹으마

우리 가족은 입이 짧아 세 식구가 치킨 한 마리를 시켜도 다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맛있는 밥에 관심이 없지는 않다. 아빠는 TV에 맛집이 나올 때면 눈에 불을 켜고 보며 자기도 먹으러 가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나와 엄마가 맛집에 가자고 하면 한사코 거절하며 집에만 있는다.


스타 요리사의 등장과 함께 여러 요리 예능에서 남성 출연자들이 서투르게 요리를 하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아빠는 요리를 못해 고생하는 그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정작 자신도 그 모습일 거라는 의식은 하지 못하는 듯하다. 엄마가 있는 한 아빠는 요리를 할 필요가 없다. 엄마가 다 해주니까 말이다.


엄마 주변 사장님들은 밥을 하러 저녁마다 집에 들어가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마누라에게 밥을 얻어먹냐는 것이다. 돈 잘 버는 사장님조차 아내에게 당당하게 "밥 줘!"라고 하긴 어려운 시대다. 그런데 아빠는 그 어려운 일에서 벗어나 있다. 만약 엄마가 없어진다면 아빠는 스스로 밥을 차려먹을 수 있을까?


나이 들고 혼자가 된 아빠를 떠올려본다. 요리 하나 제대로 할 줄 몰라 라면만 끓여 먹어 영양소 결핍이 온다. 아니면 아빠를 불쌍히 여긴 남이 와서 밥을 해주기까지 그저 TV만 보며 기다린다. 생존을 위해 제 밥 하나 차리지 못하고 남의 도움을 기다리는 모양새가 퍽이나 측은하다. 이런 나의 우려와 지적에도 아빠는 자기도 요리를 할 줄 안다며 너한테 밥 안 얻어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 소리를 친다.


아가리 요리사

요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요리를 잘하는 엄마와 요리를 하지만 맛이 없는 나. 그리고 요리를 안 하는 아빠. 그래서 우리 집 밥상의 주도권은 엄마에게 있다. 나는 밥을 잘 얻어먹기 위해 엄마 밥을 얻어먹을 때마다 엄마의 요리를 극찬하며 추켜세우는 생존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빠는 꼬박꼬박 엄마가 한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엄마에게 감사함을 표하기보단 음식의 간이 어떻다 저떻다, 조리법이 어쩌고 하는 망언을 내뱉는다. 나는 그런 아빠에게 '아가리 요리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입으로만 요리를 한다는 뜻이다. 아빠의 요리를 평가할 만큼 요리를 한 걸 본 적이 없기에, 아빠의 주장대로 요리 실력을 확인하기란 어렵다.


엄마가 있는 날이면 요리뿐만 아니라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를 할 때도 아빠는 그저 소파와 합체된 채로 소파에 누워있다. 남이 다 차려준 밥상을 받아먹기만 하려는 아빠가 괘씸한 나는 그럴 때마다 아빠에게 이거 들어라 저거 해라 하고 시킨다. 한 번은 나의 잔소리에 지친 아빠가 냉장고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폼 안 나게. 으이씨."


결혼을 앞둔 남동생은 나와 엄마로부터 자신이 아빠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은 여자 친구와 함께 만두도 빚고 요리를 한다는 점이었다. 아빠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밥을 받아먹는 데에 자식들의 불만이 큰 것은 그동안 엄마가 힘들게 제사를 해왔고 그래서 엄마가 아팠다는 게 크다. 엄마가 아빠 조상님들이 드실 제사 음식을 준비할 때마다 아빠는 꼭 출근을 했다. 명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들과 함께 부엌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아이고 폼 안 난다." 싶긴 하다.


엄마들의 요리 노동

한국 사회는 여성의 요리 노동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당연하게 보기에 그 가치도 하시 생각한다. 엄마의 요리를 눈여겨보며 한식을 배울 때마다 한식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지를 깨닫는다. 우리는 당연하게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고 자랐고 엄마의 집밥이 그리우면 회사 근처 식당에서 반찬이 한가득 차려진 정식을 사 먹을 수 있다. 요리를 직접 해보기 전까진 나도 정식집을 무척 좋아했다. 한 끼 식사에 다양한 반찬과 조기, 제육볶음에 찌개까지 즐길 수 있으니 입이 매우 즐겁다.


그러나 그 즐거움을 만 원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새삼 놀랍다. 이 많은 반찬들을 만들기 위해 야채를 다듬고 썰고, 온갖 양념장의 뚜껑을 열며 간을 하고 프라이팬에 볶았을 그 수고스러움이 만 원도 안 한다니 터무니없다. 3천 원이 넘는 배달팁을 내고 음식 배달을 시키는 요즘. 유가가 올라 배달팁을 인상해야 한다는 배달 기사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왜 정식 가격은 물가가 오를 때마다 꼬박꼬박 오르지 않는가 의구심이 든다.


언젠가 엄마는 오랜만에 제주에 오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은 나가서 먹자고 했다. 동생은 '비싼 돈 쓰지 말고 집에서 간단히 먹자.'라고 했다. 전화를 끊은 엄마는 지 돈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유난이라며 혀를 찼다. 나는 엄마의 지갑 사정을 걱정하는 동생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게 웃겼다.


아가리 요리사는 이제 그만!

집밥의 번거로움을 아는 나는 엄마가 밥을 해 주는 것이 참 고맙다. 그래서 내가 자신 있는 양식 요리만큼은 엄마가 맛있게 먹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찾은 맛집을 엄마에게 소개해주는 일이 즐겁다. 그러나 식당에서 내가 맛있다고 하는 반찬마다 엄마는 자기가 집에서 똑같이 해줄 수 있다고 요리 부심을 부린다. 참 엄마답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일은 즐겁다. 내가 한 음식을 남이 맛있게 먹어주는 건 더 기쁜 일이다. 나는 아빠도 그 즐거움과 기쁨을 알았으면 한다. 부모님이 모두 은퇴한 후 삼식이가 된 아빠를 엄마가 삼시 세끼 먹이는 일을 상상하면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은퇴 후 같이 요리 학원을 다니자고 한다. 과연 아빠가 같이 가줄지 모르겠지만 딸의 고집에 못 이긴 척 요리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내가 제주에 온 뒤로 아빠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명절엔 엄마들 대신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배불뚝이 아빠가 부엌 바닥에서 전을 지지는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 가족 단톡방에 올라왔다. 큰 키를 접어 엉거주춤 앉은 모양새로 뒤집개를 들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실소를 자아냈다. 시작이 어렵지. 그 후부턴 당연하게 아빠도 전을 부치는 멤버로 여겨지고 있다.


주말에는 반찬 준비를 하는 엄마를 도와 TV를 보면서 콩나물이나 마늘을 함께 다듬는다. 어느새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는 아빠 담당이 됐다. 아빠의 변화를 보며 나는 조만간 아빠에게 밥 얻어먹을 날이 올 거라는 괘씸한 기대를 품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 아빠도 폼 안 나는 요리 노동의 번거로움보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준비해 가족들을 대접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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