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우울 vs 지구의 우울

내가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

by 문는
(((슬픔을 잴 수 있다면)))

내가 채식을 시작한 때는 2020년 여름이었다. 그때 제주도엔 연달아 슈퍼 태풍이 왔다. 평소 태풍에 면역이 된 나조차 그해에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얼마나 세찼던지 비가 수평으로 꽂히듯 내렸다. 결국 건물 입구 인터폰이 침수가 돼 고장이 났다. 수리 기사님은 유난히 이번 태풍으로 이런 인터폰 고장이 몇십 건이라 이상하다고 하셨다. 이후 슈퍼 태풍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현상이라는 기사를 읽고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태풍 '매미'로 가족이 무너졌었기에 앞으로 슈퍼 태풍이 더 자주 올 거란 미래를 예측하는 기사가 남일 같지 않았다.


당시 나는 코로나로 인해 고꾸라지던 자영업자라 저절로 몸의 우울 수치가 증가하고 있었다. 잘 안 풀리는 딸을 지켜보며 걱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눈치 보던 가족들. 나를 대하는 부모님의 표정과 몸짓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쉬이 갈려 나갔다.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라 근심거리가 되는 내 존재 자체가 매우 불편했다. 회사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방문을 닫고 누워있었다. 불확실한 미래의 희망을 좇으며 생을 사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지구의 위기 앞에서 내 슬픔은 너무 작게 느껴졌다. 개인은 하나의 우주라는데 나 하나 슬프고 우울한 것도 이렇게나 힘들다면, 개개인이 모여 살아가는 거대한 지구에서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고 결국 기후 재앙이 온다면 얼마나 많은 세계가 파괴될까? 얼마나 많은 고통이 생길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생을 포기할까?


내 편의를 위한 남의 고통

그러나 비건주의를 공부하면서 이미 지구상에 너무나 많은 고통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공장식 축산만 봐도 그랬다. 목축지를 늘리기 위해 파괴되는 산림, 육식용 가축을 기르기 위해 소비되는 많은 물과 곡식들. 그로 인한 온실 가스 배출과 수질 오염 등. 선진국 국민들을 배불리 먹일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지구촌 누군가는 오염된 물을 마시고 식량 부족으로 인한 기아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일어나는 기후 위기의 여파를 제일 먼저 직격으로 맞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었다. 나는 경제에 무지하단 이유로, 내 한 몸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 뒤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몰랐다.


거기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이상 기후를 체감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생존의 위기'로서 지구온난화나 기후 위기를 말하면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 국민인 나의 편의를 위해 지구 저 편 어딘가에선 고통받는 생(生)들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그걸 깨닫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달라지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