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환경운동가

단식 투쟁은 힘들고요.

by 문는
채식주의자 선언

단번에 식습관을 바꾸기 위해선 주변에 선언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동물석 식품, 그중에서도 특히 육고기를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마음속으로는 육고기뿐만 아니라 동물성 식품도 끊는 비건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스스로 지쳐 포기하지 않도록 100일 동안만 참아보자며 '한시적' 비건을 목표로 했다.


사실을 밝히자면 나는 닭을 무지 사랑한다. 다양한 조리법의 달걀 요리가 가능하고, 운동 마니아에게 필수품인 닭가슴살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작은 발마저 훌륭한 안주가 된다. 나는 닭이 너무 좋아 다음 생애엔 닭으로 태어나 업보를 갚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다녔었다. 거기다 기력이 떨어지면 엄마에게 소고기를 사 먹자고 졸랐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며 스테이크를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건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큰 행복이었다.


그런 인간이 고기가 든 음식에는 손도 안 댄 채 샐러드를 메인으로 먹고, 미역국 속 쇠고기까지 건져내니 주변 사람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 변화가 언제까지 갈지 의심스러웠을 거다. 하지만 하루가 사흘이 되고, 사흘이 2주, 2주가 두 달이 되자 그들은 하루아침에 나를 바꾼 '기후 위기 공포' 신념을 수긍해야 했다.


한 식탁 위 두 밥상

환경을 위해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내 선언에 가장 당혹했던 이는 엄마였다. 매 끼니 가족을 위한 메뉴 고민을 하는 엄마에게 식탁 위 두 밥상이 존재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나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채식 식단을 공부하고 내 밥상을 차려냈다. 엄마의 밥상 앞에서 나는 고기가 든 반찬은 부모님 쪽으로 밀고 내 밥을 먹었다. 나의 신념을 드러내는 퍼포먼스였다. 딸아이의 단식 투쟁 버금가는 고기 금식에 엄마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리에 재능이 없어 간신히 생존 요리를 추구하는 내 밥상은 엄마의 눈엔 허술했다. 처음에는 우리 집에 환경운동가 납셨다며 조롱하던 엄마였지만 갈수록 육고기에 이어 생선, 계란 반찬에도 손을 안 대는 내 몸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걱정은 종종 다툼의 씨앗이 됐다.


아는 것이 힘? 병?

당시 나는 몸의 우울이 극에 치달은 때였다. 주저앉은 채로 다시 일어나기 싫단 생각이 나를 지배하는 밤들을 보내다 결국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무척이나 죄송하단 목소리로 예약이 가득 차 두 달 뒤에나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나처럼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나는 안심이 됐다. 그리고 당장 병원에 가서 약도 받지 못할 거라면 그저 이불속에서 울기보단 세상을 위한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채식이었다.


그러나 나를 채운 우울감이 삐쭉삐쭉 가족을 향한 날 선 칼이 되던 시기기도 했다. 고기를 끊고 가족과의 식사를 거부하는 나의 이상행동은 엄마의 우려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엄마는 채식만으로 어떻게 필수 영양분을 섭취하냐며 딴지를 걸었다. 나는 안티 비건들을 설득하기 위해 방구석 환경운동가가 됐다.


공장식 축산과 환경, 비건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책을 찾아보고 공부했다. 특히 채식으로도 충분히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는 증언에 밑줄을 빡빡 긋고 암기했다. 그리고 나의 신념에 의문을 던지는 자들에게 암기해둔 지식들을 척척 읊어댔다.


화해의 밥상

그러나 나의 신념 때문에 나이 든 부모님들까지 고기를 드시지 말라고 강요할 순 없었다. 나는 채식 영업사원이 됐다. 주방에서 덜그럭 덜그럭 거리며 열심히 샐러드와 채식 파스타를 만들어 부모님께 대접하고, 비건몰에서 산 각종 비건 제품을 선보였다. 함박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아빠에겐 콩고기 스테이크를 만들어줬다. 엄마에겐 비건 라면과 채식 만두 시식을 권하며 얼마나 기존 동물성 제품들과 차이가 안 나는지 신나서 떠들어댔다.


이윽고 마음속으로 정해둔 100일의 비건 기한이 지나자 붉은 고기를 제하고 달걀과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테리안'이 되었다. 나의 열정과 신념이 부모님을 감화시킨 걸까? 아니면 방에만 누워있던 딸내미가 활력을 얻은 덕이었을까? 엄마는 가족 식탁 위에 꿋꿋이 딴 세상 밥을 먹는 딸과 화해를 시도했다.


어느샌가 집 냉장고는 채식 반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단백질 섭취를 위한 두부와 버섯, 씻어서 잘라둔 야채 스틱은 항상 냉장고에 있었다. 요리를 싫어하던 엄마는 제철 나물을 활용한 각종 나물 반찬을 부지런히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특식으로 잡채와 감자 피자, 닭볶음탕 대신 버섯 볶음탕을 선보이기도 했다. 주말마다 몇 시간이고 가스불을 피우고, 각종 양념장을 만들고, 야채를 볶는 엄마의 노력 덕분에 채식에 가장 회의적이었던 아빠까지 합세해, 우리 가족은 가끔씩 고기를 먹는 '플렉시테리언'이 되었다.


2년 가까이 채식을 실천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서울이 아닌 제주에서 비건을 실천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고기가 안 든 음식을 찾기가 어려웠다. 감사히도 주말마다 채식 반찬을 만들어 준 엄마 덕분에 나는 도시락을 싸다닐 수 있었고, 덕분에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 채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채식을 통해 마음이 편한 식사를 하면서 나의 우울함도 사라져 갔다.


덤으로 엄마의 집밥 솜씨도 크게 늘었다. 그럼에도 가끔은 채식을 하느라 오히려 돈이 더 든다거나, 한식 반찬을 만드는 데 손이 너무 많이 가 힘들다는 생색도 낸다. 나는 엄마의 사기를 위해 매번 엄마가 시도하는 채식 반찬을 열심히 긁어먹고 어떤 점이 더 맛있는지 예찬을 늘어놨다. 닭고기보다 더 비싼 야채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부모님과 함께 텃밭을 가꿔야겠단 다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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