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다치지 않는 밥상을 원합니다.

가족 식사에 얽힌 권력

by 문는
'프로 혼밥러'

나는 대부분의 끼니를 혼자 먹는다. 가족끼리도 식사 시간이 제각기라 다 같이 밥을 먹는 건 주말에나 가능하다. 요즘 혼자 먹는 밥인 '혼밥'이 하나의 문화로 떠오르면서 인터넷에서 '혼밥' 레벨 테스트 게시글을 본 적이 있다. 댓글들을 보며 뜻밖에도 혼밥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혼밥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 먹기', '고깃집에서 밥 먹기', '술집에서 술 혼자 먹기'가 있었다. 나는 그 모두를 해본 최상위 혼밥러다. 퇴근 후 술이 당길 땐 고깃집에 가 "사장님! 삼겹살 2인분에 맥주 한 병이요!" 한다. 한 번은 뷔페에 혼자 가서 사람 구경을 하며 밥을 먹고 있는데, 내가 혼자 온 것에 신기해하며 쑥덕대는 커플도 있었다. 그때는 나도 혼밥 경력이 차지 않아 잔뜩 멋을 부리고 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맛집에 가서도 당당하게 음식 두 개를 시키고 자리를 차지한다.


불편한 식사보단 다이어트를


요즘 사람들이 '혼밥'을 선호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길 때마다 남과 식사 약속을 잡는 데 인내심이 부족하다. 바쁜 현대인들이 밥시간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음식 욕구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혼밥을 한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혼밥을 갈구하는 직장인들의 울분을 알 수 있다. 한 친구는 상사의 입맛에 따라 매일 원하지도 않는 메뉴를 점심으로 먹느라 힘들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 업무 이야기와 알지도 못하는 상사 주변 사람들의 tmi(너무 사적인 이야기들)를 듣는 것도 고역이다. 어떤 친구는 불편한 점심 식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다이어트 중이라 거짓말을 하고 혼밥을 한다고 했다.


같이 밥 먹기 싫은 데엔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쩝쩝 소리를 내며 먹거나 반찬을 젓가락으로 헤집는 등의 비위생적인 식사 예절, 제 돈 쓰면서도 원하는 메뉴를 못 먹는 서러움, 휴식 시간이나 마찬가지인 점심시간에도 밥을 먹으며 업무 이야기를 해야 하는 불편함은 상상만 해도 입맛이 떨어진다. 그중에서도 직장 상사와의 식사가 특히 싫은 이유는 위계질서를 지키며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과의 식사가 불편하고 싫은 데도 식사에 얽힌 위계질서와 권력 구도가 있는 탓이라고 느꼈다.


마음이 편한 식사

제사에 얽힌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위계질서, 가정 내에서 여성만의 의무로 여겨지는 요리 노동,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여/남성의 밥상 차별, 자본주의로 인한 공장식 축산과 그로 인한 기후 위기. 한국인은 밥심을 중요시 여기면서도 매 끼니 아래 반복되는 차별과 부당함에 대해선 눈을 감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고 차별에 가담하는 행위가 불편하다. 빚진 마음을 품고 온전히 그 맛을 즐길 수 없는 불편한 식사를 한 뒤엔 소화불량이 따른다. '잘 먹고 잘 살자'를 실천하기 위해 내 맘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덜어내고 고칠 필요가 있다. 빚을 진 채무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행동했다. 밥을 놓고 벌어지는 싸움은 추잡한 면이 있다. 밥 때문에 가족과 싸우는 건 정 없어 보이고 인색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내가 변하자 같이 식탁을 공유하는 가족들도 달라졌다. 마음이 편한 식사 횟수가 늘자 가족과의 식사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가족과 나눠먹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색다른 디저트를 발견하면 3인분을 사 오느라 통장이 가벼워졌다. 나의 먹는 즐거움을 가족과 공유하는 기쁨이 크다는 걸 깨닫는 날들이 늘어났다.


나는 세상 사람 모두가 마음이 편한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 밥상에 앉는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편한 마음, 빚지는 마음 없이 함께 둘러 앉은 모두가 식사하는 즐거움과 거기에 존재하는 감사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함께 식사를 나누는 서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 밥상을 원한다.



끝.

이전 13화밥값 못하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