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혈당장애 진단을 받았다.
'맑은 피 (자)부심'이 와장창
채식을 실천하며 나는 실제로 몸이 변화한 것을 느꼈다. 아침에 화장실 가기가 수월해졌고 몸이 가벼워진 데다 체력도 늘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나를 괴롭혀왔던 염증성 질환이 줄었다. 혈액순환을 돕는 채식에 몸에 유해한 가공 식품을 끊은 덕분이다. 어느덧 '맑은 피부심'이 생긴 나는 2주만이라도 채식을 실천해보라고 주변인들에게 홍보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내가 오늘 아침 식사에 닭가슴살을 얹어 먹었다. 채식을 지향하며 주말에만 고기를 먹자고 다짐한 내 규칙과 어긋난다. 삶의 불확실성을 좇으면서도 규칙을 중요시하는 인간인 나는 이런 자그마한 식단의 변화에도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오늘의 불편한 식단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서에 공복혈당장애가 떴기 때문이다.
가족력이 없고 정상체중인 만 33세 나이. 당뇨를 걱정하기엔 이르다 생각했는데 덜컥 몇 년 안에 당뇨병 환자가 될 수도 있다니 머리를 댕 얻어맞은 것 같다. 그동안의 일상 습관과 내가 먹은 것을 뒤돌아보니, 채식이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굶고 제대로 밥을 챙겨 먹지 않는 내 몸의 우울 탓이다.
자본주의는 우릴 비참하게 해.
가족과 함께 채식을 실천하며 지구의 위기를 줄이는 데 헌신한다는 뿌듯함 속에서도 나는 종종 몸의 우울을 느꼈다.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달리는 것처럼 코로나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점점 더 좋아질 거란 희망을 품었다가도 그 희망이 한순간에 꺾이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빈 통장의 적은 돈을 반복해서 세고, 친구와의 만남을 줄이고, 써야 하는 돈조차 아끼기 위해 아예 소비를 안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각종 공과금을 내는 날이 다가올 때마다 등골이 쭈뼛 섰다. 희망을 품고 시작한 사업이 족쇄가 되어 발목을 죄였다.
남들은 부동산이며 코인, 주식 등의 재테크로 배를 불려 가고 있었다. 한적한 여행지를 찾아 제주로 온 관광객들이 탄 렌터카를 볼 때마다 속이 쓰렸다. 잔잔한 백사장을 덮치는 파도처럼 몸의 우울이 나를 압도할 때면 곡기를 끊었다. '밥값'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단죄였다. 그러다 우울함이 잦아들면 기분전환을 위해 단 것을 찾았다.
밥을 씹어 목으로 넘기기가 어려운 날은 빵을 먹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는 카페로 달려가 달고 폭신폭신한 케이크를 사 먹었다. 일하다가 밥 먹을 시간을 놓치면 과자로 배를 채웠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몸이 됐다. 내가 나의 몸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은 탓이다. 억울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쓴 진실이다.
그럼에도 내 밥에 고기가 올라가는 일은 아직 불편하다. 앞으로 적절한 대체 식단을 찾아내고 조리법을 배울 계획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공복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득이하게 눈앞에 있는 닭가슴살을 선택했다. 나의 '당장의 편의'를 위해 선택한 닭가슴살이 지구의 우울을 앞당긴다는 사실은 여전히 불편하다.
숫자가 불러일으키는 불안
'기후 우울'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최근 들어 체감하는 기후 변화에 무력감과 절망감을 호소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평소 환경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주변에서 기후 위기로 인해 몇 년 후 지구에게 이런저런 불행이 닥친다는 말을 듣는 것은 충격과 공포일 것이다. 채식을 시작할 즈음에 나도 그랬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몸의 우울을 느끼면서도 기후 우울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체감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터의 수치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미래가 가진 불확실성을 줄여주지만 그만큼 불안을 몰고 오기도 한다. 오늘 아침의 내 공복혈당 수치가 그렇듯이 말이다.
주저앉기보단 조금씩 나아갈 것
하지만 불안과 슬픔에 빠지기보다 내가 내게 닥친 식사를 충실히 해결하기로 다짐한 것처럼, 기후 변화를 체감하는 우리 모두가 바뀌기로 다짐하는 것이 먼저다. 지구의 우울을 내 몸의 우울로 가져오면 안 된다. 그러면 더더욱 바뀌기 어렵다. 변화를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의 자그마한 변화도, 개인과 개인이 모여 집단이 되고 사회가 된다면 지금의 나쁜 수치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걱정하며 변하지 않고 떨기보단,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덜 틀고, 고기를 덜 먹는 것이 낫다. 이미 실천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다. 실천하고 변화하는 나를 더 격려하고 아껴 주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더 사랑하자. 조금의 우울도 끼어들지 못하게 나를 꽉 안아주자.
그러면 나를 둘러싼 세상에도 너그러워진다. 정체돼있고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가득 찬 세상이 아니라,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세상을 보며 그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오늘의 우울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게 몸의 우울이든 지구의 우울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