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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는 Feb 16. 2023

비혼주의자가 된 이유 #1

이게 궁금하다고?

브런치에서 알림을 보내왔다.


유리몸이라 유독 운동에만은 습관을 붙이지 못하는 나에게, 글쓰기를 근육 기르기에 비유한 것은 꾸짖는 한 마디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똑똑하네 브런치. 그래서 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작가 소개에 ‘제주에서 생존중인 30대 비혼 여성’이라고 써놓고 정작 비혼을 선택한 이유를 말한 적이 없다. 최근 학생에게서 왜 결혼을 하지 않냐는 질문을 들은 김에 이야기를 풀어 본다.



21살 비혼주의자

‘비혼’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건 내가 대학생 2학년 때였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다.’라는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대학 바깥에선 경찰버스와 콘크리트로 쌓은 벽과 대치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었고, 학교 안에선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매일밤 중앙도서관 유리창에 비치는 많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나는 안팎의 다른 분위기에서 다가올 취업난보다 ‘밥그릇 걱정으로 민주주의를 외면하게 하는 정부’에 더 반발심을 느꼈다. 세상에 널린 불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여성주의를 접했고 당연하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비혼’이란 단어는 그때 처음 알았다. ‘未(아닐 미)’자를 써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뜻을 가진 ’미혼‘ 대신 ‘비혼’은 ’非(아닐 비)‘를 써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비혼은 결혼을 당연한 의무로, 아직 이루지 못한 시급한 과제로 보지 않으므로 가치중립적 표현이다.*


*그래서 비혼이라고 밝혔다가 선입견이 가득한 상대의 라떼 본능을 일으켜 ‘초저출생 사회를 만드는 국가에 도움 안 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며 비난받을 때는 그저 황당하다.


지금이야 대중에도 흔하지만 2009년 즈음엔 ‘비혼’이란 단어가 낯선 시대였다. 나는 미혼에서 ‘아직’을 바꿈으로써 결혼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단 사실과, 비혼주의자가 되면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며 나이와 외모로 여자를 조롱하는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비껴 설 수 있음을 깨닫고 ‘비혼주의’에 깊이 감화됐다.


그리하여 스물한 살 때부터 가족을 포함해 당당하게 주변에 나를 비혼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런 애들이 제일 먼저 결혼하더라!”라고 농담을 했지만, 14년이 지나 나는 그렇게 말한 사람들을 다 앞세워 기혼의 강으로 건네 보냈고, “누나는 결혼을 안 한다 하니 나라도 해야지.”라던 동생마저 몇 달 전 기혼이 됐으니 여태껏 21살 때의 비혼주의자 선언을 성공적으로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요즘은 비혼이란 말이 흔해져 결혼을 당연한 의무가 아닌 선택에 동조하는 시선들이 많아졌다. 비혼주의자라고 말하기만 해도 ‘꼴페미’냐며 욕을 듣던 2009년과 비교해 시대가 크게 변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대한 감개무량보다는 단순히 앞으로 함께 늙어갈 비혼 친구들의 수가 많아져 기쁜 게 더 크다.



비혼주의자가 흔히 듣는 말

동생을 먼저 장가보내는 모지리 누나로 보였던 걸까? 동생의 결혼식장에서 엄마 친구는 내 손을 꼭 붙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진짜로! 이는 과장이 아니며 그때 난 내가 이모의 사정상 십 년은 멀리 떨어져 지낸 숨겨둔 딸인가 싶었다. 아님 친조카라든지. 왓에버~.


“문는아. 이모는 네가 초등학생 때부터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해서~ 그 말이 이모 가슴에 얼마나 콕! 박혔었는지 몰라. 이모가 늦게 결혼했잖아~ 그 고독감을 알아서 하는 소리야. 그러니 지금이라도 눈을 낮춰야 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구해. 한 번 갔다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결혼은 해야 해.“


“어머 이모가 젊을 때 많이 외로웠었나 보다~^^.“고 웃으며 손을 빼려는 내 시도에도 이모는 장장 10분 가까이 설교를 했고, 심지어 내가 식이 끝나고 한가득 많은 짐을 챙겨 택시에 올라탈 때에도 창문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또 당부하고선, 본인의 오늘 임무를 다했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Q. 저 말을 듣고 화가 났냐 묻는다면?

-전혀. 이렇게 훅 들어오는구나 싶어 당황스럽고 새로웠다.* 사실 시집갔다가라도 돌아오라는 소리는 이미 여러 번 들었다. 심지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병신, 모지리로 본다는 협박도 익히 들어와서 나는 ‘모자라고 성격 이상한 여성’을 자처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 내심 소재로 쓸 해프닝이 생겼다며 좋아한 것도 맞다.


다만 새로웠던 사실은 놀랍게도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결혼을 안 할 거란 소리를 하고 다녔다는 거였다.



별 거 없는 이야기가 길어-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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