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 연탄

- 월동준비 끝 -

by 일 시 작
차곡차곡 추억


언제까지 연탄을 땠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11월 중순쯤이 되면 엄마와 아부지는 겨울을 날 연탄을 몇 장이나 사놓을지 의논하셨다. 아마도 몇 백 장이었을 것이다. 까만 연탄이 리어카에 실려 오는 날이면 두 분은 아주 흐뭇해하셨다. 뭔가 막중한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시꺼멓다는 단어를 쓰며 검은색을 싫어하는 우리 엄마도 이때만큼은 새까만 이것을 반겼다. 좁디좁은 집이었지만 우린 그렇게 연탄과 같은 공간을 공유했다. 이 녀석은 헌신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아궁이에서 하나씩 하나씩 제 할 일을 마치고 버글버글한 재로 바뀌어도 군말이 없었으며, 게다가 눈이 많이 내려 바닥이 미끄러운 날엔 차가운 눈길에 벌러덩 드러누워 우리 가족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었다.


그렇다고 연탄이 늘 고맙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할아버지 댁에 며칠씩 다녀오는 날이면 이 시꺼먼 녀석은 집 뒤켠의 자기 자리에 떡 허니 서 있기만 할 뿐 평소에 보여주던 온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도도하고 차가운 연탄의 태도에 반해 엄마의 몸과 마음은 늘 급했다. 평소 같으면 좀 더 달궈진 연탄을 밑에 넣고 새것을 위에 얹는 익숙한 기술을 간단하게 보여주는 엄마였지만 그때만큼은 달랐다. (간단하다 라고 썼지만 연탄을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 건 내가 어지간히 자라고 나서였다. 이미 연탄시절을 벗어난 어느 때. 엄마의 회상을 들으며.) 꽤 오랜 시간 집을 비운 터라 싸늘한 아궁이를 리셋시키기 위해 지원군까지 동원했다. 바로 번개탄. 까만 녀석들 위에 더 시커멓고(나의 주관적인 느낌이다) 편평한 이걸 올려놓고 불씨를 넣으면 불과 몇 시간 안에 방이 따뜻해져 경직되어 있던 몸과 마음이 풀리곤 했다. 하지만 삼 남매의 추위는 온기로 바뀐 대신 엄마의 손은 부르트기 일쑤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끔 이 녀석은 우리를 힘들게도 했다. 잘 자고 일어나 개운해야 할 아침. 가끔은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연탄가스가 집안을 무겁게 짓누른 날이면 우리 가족은 단체로 동치미국물이며 김치국물을 들이키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고 안도감에 엷게 미소 지었다. 추운 겨울 연탄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기도 했고 몇 시간씩 애를 태우게도 했으며 때론 시큼하면서도 매캐한 이산화황을 뿜어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넘어 위력을 과시(?) 하기도 했다.


이제는 버튼 하나로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는 편한 세상이 되었으나 가끔 의외의 상황과 물건에서 연탄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얼마 전 선물을 받았다. 둥그런 알루미늄통에 담긴 김이다. 대체론 소금과 기름이 가미되지 않은 맨 김을 먹지만 어떨 땐 적당히 조미료가 첨가된 그런 김이 땡길 때가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 그럴 때마다 김 선물이 들어온다. 이번 김은 그리 짜거나 기름지지 않고 바삭하고 맛있더라구~ 나도 모르게 쭈그리고 앉아 이것들을 쌓고 있었다. 몇 백 장도 몇 십 장도 아닌 딸랑 여섯 통이지만 어릴 적 집 한켠에 질서 정연하게 세로로 쌓여있던 그 자태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나 보다 내 마음속에.

가만, 뭔가 좀 빠진 것 같다. 냉장고를 뒤져 한 가지를 찾아냈다. 먹다 남은 김자반. 너는 번개탄으로 하자!



찍어놓고 보니 뿌듯하다. 양도 꽤 되고. 이만하면 (조금 과장하여) 월동준비 끝이다.

"쌓아놓으니 연탄 같지 않아?"

" 그냥 통에 든 김 같은데!"

남편과 아이의 반응이다.


아무렴 어떠냐.

그 시절 연탄은 내 마음에 추억을 부르고~

지금 김 연탄은 내 뱃속에 밥을 부르는구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것은 공깃돌인가? 고추꼭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