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해지지 마 -
오늘도 우리 동 주민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분들은 지난번 꼬마와 같은 층에 사신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친구보단 좀 더 자주 만나는 사이라는 것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친구(?)로 생각하신다는 것.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동시간은 대체로 일정하다.
오전 10시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아버지를 만난다.
"어르신 출근하세요?"
"내 이 나이에 내 가게가 있어 나갈 데가 있어 참 좋아."
해맑은 할아버지의 대답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동네 조그만 건물을 갖고 계신단다. (은근 부럽다.)
오후 6시 이번엔 할머니와 같이 들어오신다.
"이제 퇴근하세요?"
"응 우리 할마씨 걸음걸이가 느려서~."
어찌 보면 동문서답 같은 또 어찌 보면 나의 생각을 미리 앞서간 듯한 대답이다. 단순한 대화로 시작한 우린 어느 순간 서로의 안부가 궁금한 이웃이 되었다. 늘 말끔한 양복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다니시는 할아버지는 95세, 분홍 모자를 쓰고 미소를 띠시는 할머니는 92세, 합치면 187이다. 우리 세 식구 나이를 합친 것보다 48이나 더 많다. 그런데 이렇게 정정하실 수가 있다고?! 자랑 반, 덕담 반인 이 분들의 이야기는 요즘 나의 웃음 포인트이기도 하다. 할머니 손에는 늘 메모지가 쥐어져 있다. 하도 깜빡깜빡 잊어버려 필요한 걸 써서 갖고 다니신단다. 꼬깃꼬깃 접힌 할머니의 메모지엔 어디 생필품만 적혀 있겠나! 하나씩 기록하는 할머니의 정성과 즐거움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다.
위층 할머니를 볼 때마다 일본의 할머니 시인이 생각난다.
92세에 작가인 아들의 권유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해 98세에 첫 시집을 출간한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바로 주인공이다. 살아보니 이렇더라고 그녀만의 언어로 전하는 삶에 대한 통찰력에 절로 시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시바타 할머니와 (특히 마음에 와닿는) 시 몇 편을 소개하려 한다.
할머니는 1911년 도치기현에서 부유한 쌀가게 집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10대 말 가세가 기울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일터로 향했다. 료칸(일본의 전통적인 숙박시설)과 요릿집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20대에 한차례 결혼과 이혼을 겪은 후, 33세에 요리사 남편을 만나 외아들을 낳고 재봉일 등을 하며 살아온 분이다. 나이가 들고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취미였던 일본 무용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들인 작가 겐이치의 권유로 글을 쓰게 되었다. 이것이 그녀의 따듯한 작품이 탄생하게 된 계기이다.
남들보다 긴 인생을 살아온 시바타의 시는 아들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그 감동이 전해져 산케이신문 ‘아침의 노래’ 란에까지 실리게 되었다. 구십 평생 글 쓰는 법에 대해 공부한 적 없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솔직하고 순수하면서도 사람을 감동시키는 시바타의 시에 빠진 출판사 편집장의 권유로 마침내 시집을 출간했다.
시집이 나오자 98세 신인작가 시바타 할머니에 대해 일본 미디어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본에는 미라로 발견된 할아버지로 인해 노인 분들의 고독사가 큰 이슈가 되면서 사회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이때 인생이란 이런 거야~라고 밝고 유쾌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마음을 어루만져준 할머니의 등장이 일본인들에게 살아가는 용기와 힘을 불어넣은 것이다.
어디 일본 뿐이겠나. 길지도 않고 어려운 단어 하나 없는 할머니의 삶에 대한 통찰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바다 건너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깊은 감동과 삶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한다. 92세에 글을 쓰기 시작해 2010년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くじけないで 구지케나이데)'를, 이듬해 두 번째 시집 백세(百歳 햐쿠사이)를 출간한 후 101세에 영원한 언어를 남기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언젠가 시바타 할머니에게 장수비결을 묻자 왕성한 호기심이라 대답했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에 관심을 갖고 늘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닌다고~ 위층 할머니를 보며 시바타 할머니가 생각난 이유다.
< せんせいに > 센세~니
わたしを 와타시오
おばあちゃんと 오바~짱토
よばないで 요바나이데
きょうは なんようび? 쿄~와 낭요~비
9+9は いくつ? 큐~ 프라스 큐~와 이쿠츠?
そんな ばかな しつもんも 손나 바카나 시츠몽모
しないで ほしい 시나이데 호시이
しばたさん 시바타상
さいじょうやその しは すきですか 사이죠~야소노 시와 스키데스카
こいずみ ないかくを 고이즈미 나이카쿠오
どう おもいますか 도~ 오모이마스카
こんな しつもんなら 곤나 시츠몽나라
うれしいわ 우레시이와
< 선생님에게 >
저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오늘은 무슨 요일이에요?
9 + 9는 얼마예요?
그런 바보 같은 질문도
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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