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일을 잠시 내려놓고 육아에 매진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당연히 가치로웠지만, 마음 한편에는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을지도 불안했고, 복직을 한다고 한 들 3년의 공백을 잘 메꿀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와 같은 시기를 겪은 언니들은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여 주었지만, 내 불안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와 동시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버거웠다. 엄마가 안고 있는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동생을 지나가가 찰싹 때리고 가는 첫째를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때리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기는 했지만, 첫째도 아직 아가였다. 말도 못 하는 아가에게 동생이 생겨 생긴 허전함을 내가 잘 메꾸고 있는 건가 싶었다. 내 욕심에 터울 짧게 두 아이를 낳아놓고 아이들에게 사랑의 결핍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욕심은 끝이 없다. 육아는 정도가 없다. 그래서 육아를 하는 모두가 힘들다. 비교를 하면 할수록 끝이 없고, 잘하고자 하는 것도 끝이 없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도 결국 부모 욕심이다. 내버려 두면 제 몫만큼 클 것이다.
욕심을 버리려 애썼다.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지우려고 애썼다. 아이는 스스로 잘 클 것이다. 그러니 나의 최선을 벗어난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 했다. 일도, 이미 휴직을 결심한 만큼 현재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기로 했다. 내 성격에 언제 또 이렇게 일을 내려놓고 살겠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내게 없는 것을 탐하지 않는 데 있었다. 대신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아이가 잘 크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아이와 깔깔대며 웃는 하루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지금은 또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중이다. 아이는 아이의 하루를 잘 보낼 것이고, 나는 일터에서 즐겁게(?) 업무를 배우고 있다. 배우는 것은 버겁지만 가슴 벅찬 일이다.
여전히 욕심을 버리려 애쓰는 중이다.
좋은 엄마, 좋은 직장 동료, 좋은 아내 등등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뿐이다. 그래도 상황은 그런대로 잘 굴러갈 것이다. 아마도.